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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과나 Oct 27. 2024

검도에 미친 자의 이야기가 궁금해?

춤에 빠진 사람들이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손으로 발로 소심하게 안무 연습하는 모습을 가끔 본다. 골프 스윙을 하는 사람도. 그런 모습을 볼 때 ‘왜 저래?’ 하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뜨거운 마음을 그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로 들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검도에 빠진 자들이 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눈앞에 가상의 상대가 있어 움찔하는 틈에 먼저 칼을 내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곤 한다. 그러려면 상대의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 스타트 총 소리에 달려나가는 육상선수처럼.      


건널목 앞에서 신호등을 노려본다.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초록불로 바뀌면 누구보다 빠르게 오른발을 내딛으려고. 왼발은 이때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상태다. 시위를 놓는 순간 발사되는 화살처럼 왼발은 오른발을 내보낼 수 있도록 뒤꿈치를 살짝 든 채 상대의 움직임(=신호등)을 지켜보고 있다.     


잔발질은 금물이다. 검도의 득점 장면을 검도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것 좀 봐봐.’ 하며 자신만만하게 보여주면 ‘그래서 뭘 봐야 돼? 누가 득점한 건데? 어딜 공격한 건데?’ 물음표 가득한 질문 혹은 눈빛이 돌아온다. 그만큼 공격의 성공과 실패는 찰나에 결정된다 그 찰나의 차이는 바로 잔발질을 한 번 해야 나갈 수 있는지 왼발로 버티고 있다가 바로 오른발을 내딛을 수 있는지에서 갈린다.      


언젠가 유튜브 쇼츠에서 안정환 선수가 어린 선수들에게 축구 원포인트레슨을 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디딤발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굳이 유사성을 찾자면 검도에서 밀어주는 발(=왼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알려주면 알려주는 대로 결과물이 바뀌는 게 신기해서 알고리즘이 권하는 대로 봤더니 이번에는 이대호 선수가 나오는 야구 예능도 같이 뜨기 시작했다.     


후배인 야구팀 지도자가 학생들과 함께 훈련하는 곳에 간 이대호 선수가 나왔다. 공을 잡아서 던지기 전에 잔발질을 많이 하는 선수는 지금 잘한다고 해도 재능있는 없는 거라고 하는 말을 듣고 또 한 번 무릎을 쳤다. 나는 이런 문 안쪽의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나 재미있다. 그러니 알고리즘이 권하는 영상을 계속 보게 되었고.     

그렇게 내 취향을 잘 알게 된 유튜브가 요즘 보여준 것들 중에 ‘000 사범님의 머리 잘 치는 법’에 대한 영상이 있었다. 상대와 마주한 상태에서 앞에 있는 오른발이 먼저 출발하고 머리는 마지막에 친다는 얘기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검도에서 공격의 성패는 아주 찰나의 차이에 달려있다. 검도를 할 때 죽도로 상대의 중심을 겨누면서 눈으로는 상대의 눈을 보되 몸 전체를 보고 있는 상태다. 일반적인 공격이 공격을 결심한 순간 발과 칼이 함께 나가는 거라면 공격이 시작될 때 칼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발이 출발한 순간 상대가 알 수 있다.     


반면에 칼을 겨눈 상태에서 왼발이 먼저 출발하고 중단세에는 변화가 없다가 칼은 마지막 순간에 나간다면? 고속도로를 달릴 때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상태로 속도를 줄이거나 아주 천천히 가고 있다면 이 차가 달리고 있는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상태가 된다. 즉, 상대는 내가 공격을 시작했다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아채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찰나의 차이가 머리 공격의 성공 확률을 높인다.   

  

문제는 발이 출발했으니 도착할 때까지 칼이 나갈 시간이 더 줄어들기 때문에 내가 그만큼 빠르고 강하게 칼을 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령을 아는 것은 아는 건인데 내가 그걸 해낼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인 것.     


현재로서는 내 팔은 그걸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간절히 해내고 싶다. 서로를 무너뜨리기 위해 팽팽하게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 그렇게 상대를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나는 이미 출발했는데 상대는 그걸 몰라. 그리고 뻥 하고 머리공격이 성공하는 순간을 상상하면 움찔 몸에 힘이 들어간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쓰으윽 오른발을 먼저 내밀고 그 발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머리를 ‘팡’하고 치는 모션을 해보고는 혼자 머쓱해하곤 한다. ‘단단히 미쳤구나, 나 녀석.’ 하면서.     


뿐만 아니다. 매일 운동을 할 때 삼각대에 핸드폰을 거치해 놓고 영상을 찍는다. 찍은 영상은 비공개로 url을 가진 사람들만 볼 수 있도록 같이 운동한 도장분들에게 공유한다. 그리고 올리면서 나도 자기 전에 그날의 연습 모습을 돌려본다. 그럭저럭 잘 들어간 공격이 있으면 몇 번이고 돌려보고 나의 나쁜 습관 같은 건 고쳐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러다가 검도일지도 쓸 태세다.     


여기까지 얘기한 건 검도 연습 외적인 것만 언급한 것이다. 기본은 검도를 수련하는 것. 주 3회, 월 10회는 운동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운동은 마음이 아니라 몸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육훈련과 심폐활량을 키우는 훈련을 꾸준히 하려고 한다.     


죽도를 들고 머리를 크고 빠르고 강하게 치기 위해서는 광배근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푸시업과 풀업 훈련을 한다. 푸시업은 무릎을 대고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무릎을 대고 스무번 이상 할 수 있게 되자 정자세로도 세 번쯤은 할 수 있게 되었다. 풀업은 아직 하나도 하지 못하는 상태인데 연습을 시작한지 한 달쯤 되니 매달리는 악력이 처음보다 훨씬 좋아졌다. 턱걸이 자세에서 버티는 것도 처음엔 1초도 못 버텼는데 이제는 10초 정도는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턱걸이를 내 힘으로 해내는 날이 오면 뛸 뜻이 즐거울 것 같다. 아들방에 들여놓은 풀업머신으로 연습중인데 엄마의 올해 목표는 푸시업과 풀업을 정자세로 한 번씩 하는 거라고 했더니 그 기구를 이용해서 본인도 했으니 엄마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 주었다.


이제 푸시업은 할 수 있게 되었으니 풀업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풀업을 할 수 있는 근육이 되면 발 먼저 출발하고 마지막에 팡! 꽂히는 머리를 칠 수 있게 되겠지? 달걀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팔러 가면서 온갖 몽상을 키우는 아가씨 같이 붕 뜨는 기분이다. 그러다 걸려 넘어져 이고 있던 달걀을 깨지 않도록 무리하지 말고, 몸관리 하면서 꾸준히 검도에 미친 자로 쭉 꿈꾸듯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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