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시도하길 겁냈던 그 시절의 나
나는 운전에 트라우마가 있다. 사고를 내서 그런 건 아니고 대학을 졸업하고 방황하던 시절에 배우느라 잔뜩 움츠러들어서 잘못된 판단을 했던 내가 기억나기 때문이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인데도 운전면허 실기 시험에 엄청 많이 떨어졌다. 나중에는 인지를 붙일 곳이 없을 지경으로 실패가 쌓였다.
남들은 수능 끝나면 바로 한다는 귀뚫기, 운전면허 따기를 나는 늦게 했다. 귀뚫기는 거의 20년 늦게해서 지금 귀 뚫은 후의 염증 때문에 귀에서 진물이 질질 흐르는 고생을 하고 있다. 가끔 생각한다. 젊어서 귀를 뚫었으면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운전면허는 귀뚫기에 비하면 비교적 일찍 딴 편이지만 실전운전으로 말하자면 오히려 귀뚫기보다 더 뒤쳐지는 중이다. 아직 혼자 운전을 하지 못하는 실력이니까.
젊은이는 젊음의 가치를 모르고 낭비한다는 노래 <Lost Star>의 가사처럼 나는 젊음을 낭비했다. 남들은 젊을 때 친구들의 물결에 휩쓸려 쉽게쉽게 하는 일들에 이런저런 핑계를 붙여서 굳이 딴지를 걸었던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그냥 남들 하는 거 다 해볼걸.
운전 면허는 대학 졸업하고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하려고 고향에 내려가 있을 때 땄던 것으로 기억한다. ‘00대학에 다닌다’는 말 한 마디로 나를 다 설명할 수 있었던 시간이 끝나고 백수 낭인 생활에 들어갔을 때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험생활의 중반쯤이었을까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영영 입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취직을 못할 때를 대비해서 택시 운전이라도 하려면 1종 보통을 따야겠다고 야무지게 마음먹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언론사에 합격하지 못하면 다른 회사에 취직하면 된다고 생갹하지 않고 택시 운전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어리숙한 내 생각에 실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2년 안에 취직을 못하면 회사는 못 가는 거라고 생각했던 20대의 내가 떠올라서다.
그 생각을 하게 된 건 삼수를 하고 들어온 과 친구를 보면서였다. 그 친구는 처음부터 ‘나는 삼수를 했으니까 일반 회사는 못 가.’라고 단정짓고는 대학원에 가서 학자가 되어야겠다고 진로를 정했다. 물론 그쪽이 더 성향에 맞아서 그렇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2~3년 동안 취직을 못하면 그 후로는 취직불가,라는 생각을 하는 친구를 보고 나는 그 생각이 참인 줄 아는 상태로 졸업을 했다. 너도 나도 어리숙한 시기였다.
생각해보면 가장 젊을 때 가장 걱정도 많고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그 결과 서른 살에 이미 이직을 하거나 치아 교정을 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라며 마음 속으로 혼자 겉늙어버렸더랬다. 오히려 쉰을 바라보는 지금 더 활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치아 교정도 이제야 시작했다.
요즘은 ‘지금 아니면 언제해? 좋은 날은 바로 지금이지.’를 염불처럼 외치고 다닌다. 기다리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된 완벽한 때는 오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려서,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뭔가를 하지 못할 이유는 마를 날이 없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에피소드에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는 대사가 있는데 그것은 어른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연로해지신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여행을 가려면 차가 두 대 움직여야 한다고 나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종종 조수석에 남편을 태우고 드라이브를 나가거나 시댁에 간다.
그동안 내가 운전대를 잡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한 적 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새삼스럽지만 답을 찾아보니 남편은 차가 소중해서 나에게 운전을 권하지 않았고 나는 아마도 사고 뒷감당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운전을 하다보면 사고도 날 수 있는데 경미한 사고라고 해도 여유 없는 우리집 살림에 차를 고치는데 들어가는 돈은 버겁다는 생각이 컸다. 남편은 사고를 낸 적이 거의 없는데 내가 운전을 하게 되면 운전이 미숙해서 사고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대단히 금전적 여유가 생기지는 않았다. 달라진 건 나의 마음이다. 운전하다 보면 사고가 날 수도 있지만 보험으로 커버하면 되고 시작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고 마음을 바꿔 먹은 것이다.
남편은 조수석에 자기가 타고 있지 않아도 내가 어디든 운전해서 갈 수 있도록 운전독립을 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차가 너무 소중해서 아무도 빌려줄 수 없는 단계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남편이 나를 가르치는 운전 연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부부 사이에 운전을 배우고 가르쳐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여자친구일 때라면 또 몰라도. 우리는 싸우고 화해하고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며 가르치고 배웠다. 운전대를 붙잡고 잔소리를 듣고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며 대환멸을 느끼는 와중에도 운전은 조금씩 늘었다. 오로지 차를 운전해 본 거리가 늘어나면서 일어난 결과다.
운전 이야기에는 내 이십대 시절의 무지함에 대한 안타까움, 아이를 가르치면서 했던 말들이 역으로 돌아오는 깨달음, 남편과의 갈등과 화해 같은 온갖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끼어들었다. 왕초보의 눈으로만 볼 수 있었던 것들, 운전이 숨을 쉬듯, 밥을 먹듯 자연스러워지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