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의 나는 얼른 나이 들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시험을 준비하러 집에 내려와 있었던 1년 반이라는 시간은 재수를 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간 20대의 나에게 가장 힘든 낭인 시절이었다.
독서실에 돈을 쓰는 것조차 죄송해서 남의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공부를 하다 잠깐 낮잠을 잘 때면 ‘깨어나면 35살이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 모든 시간이 끝나고 취직을 했든 결혼을 했든 결론이 나있을 테니까’라고 생각하며 팔 위에 머리를 얹고는 잠을 청하곤 했다.
그때의 나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사람이 외부로부터 아무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내부에서 솟아나온 긍정의 힘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의지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에너지가 거의 바닥난 시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한 건 용기였을까 체념이었을까.
나는 곧 사회에 편입될 터이니 젊은이의 교양인 운전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는지 나는 앞으로도 입사시험에 붙지 못할 테니 운전이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는지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다.
대학 다니는 동안 돈을 벌기 위한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리집은 대단히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대학 학비와 생활비는 오롯이 대주셨다. 그리고 내 생활비는 내가 벌어 써야지,라고 생각하고 아르바이트의 세계로 들어갈만큼 당차지도 못했다.
‘엄마아빠가 큰 부자는 아니지만 대학에서는 공부할 학비와 용돈은 지원해주마.’,하셨던 말씀에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을 다쓰고도 더 내놓으라고 할 만큼 뻔뻔하지도 못했던지라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에 내야할 돈이 무척이나 크게 느껴졌다.
취업시험을 준비하면서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는 시험에 집중해서 빨리 시험에 합격하고 이 생활을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돈을 버는 활동도 병행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돈이 좀 덜 드는 방향으로 찾아낸 것이 실내운전연수였다. 운전학원에서 트럭을 몰아보는실기훈련을 하려면 70만원이 넘는 돈을 써야했지만 실내운전연수로 배우면 28만원이면 된다고 들었던 것이다. 시험치기 전 한 번은 트럭을 실제 몰아볼 수 있다는 조건도 마음에 들었다.
실내운전학원의 드라이빙휠에 앉아 기어 조작법을 배우고 운전을 하는 것 같은 화면이 표시되는 시뮬레이터를 통해 운전을 하고, 알려준 주차 공식을 대입해서 일자주차를 준비했다. 우회전을 할 때는 우회전을 해야하는 기준점을 잡고 내 어깨가 그 기준점을 지나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라고 가르치는 식이었다.
시험 치기 전에 트럭을 실제로 몰아보았을 때 차에 앉아계시던 선생님은 나를 매우 한심해했다. 시험 치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제 운전을 해본다는 이 어린 여자애가 뭐 하나 제대로 해내는 게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수준이면 시험을 쳐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은 연습이라 잘 안되지만 실전에는 잘 할 수 있을거야. 나는 더 이상 여기에 돈을 넣을 수 없으니까,라고 생각했다.
일이 되도록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내가 이제 더 연습을 할 수 없으니까 시험치면 합격하겠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계속 떨어졌다. 수입인지대만 10번을 넘게 내던 어느 날 엄마가 실기시험장에 나와보셨다는 걸 또 불합격 판정을 받고 풀 죽어서 나오다가 알았다.
너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이 떨어지니?라고 한 번도 묻지 않으셨던 엄마가 내가 어이없는 1자주차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시고 결단을 내려주셨다.
“너 운전학원에 가서 제대로 배워라.”
그렇게 어차피 들었어야 할 70만원의 돈을 들여서 다시 실기시험을 준비했다.
다음 시험에서 단번에 합격했다.
어차피 쓸 거 제대로 썼어야 하는데 다른 길로 질러간답시고 더 빙빙 돌아 돈 쓰고 시간 쓰고 자신감 잃는 대환장의 콜라보를 제대로 연주했던 것이다.
그때 합격하고 나오면서 '지레 움츠러들어서 잘못된 판단을 하면 다 힘들어진다, 한번에 제대로 하자'는 깨달음을 마음에 새긴 그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의 나는 자식이기만 했고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는데 내가 청소년 자녀를 둔 엄마가 되고서야 그 시절의 엄마가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내가 한 어리석은 결정 때문에 결국 금전적인 손해를 본 것은 엄마아빠였는데 단 한 마디도 그 어리석은 선택에 대해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으셨던 것,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러셨을까 싶다.
운전면허를 따고 20여년 간 장농면허로 최근 2년 쯤은 남편의 명령을 따르는 AI 같은 초보운전자로 살아왔다. 운전독립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설레발을 치며 운전을 하면서 느낀 일들을 기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