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치를 아시나요?
드디어 운전면허를 딴 나는 혼자서 운전을 해봐야 는다며 젖먹던 용기를 짜내어 혼자 운전을 해보았다. 걸어가면 10분이면 될 성당에 차를 끌고 가 보기로 한 것이다. 수동이었던 그 차를 몰고 나가면서 입으로 중얼중얼 요령을 익혔다. 자 클러치랑 브레이크 동시 밟고 브레이크 밟은 발을 풀면서 액셀 밟고 속도가 올라가면 기어 2단으로 바꾸고.
자동 변속 차로만 운전해서 클러치가 뭐하는 것인지 잘 모르는 분을 위해 부연하자면 수동운전을 하려면 왼발은 클러치라는 페달을 밟아줘야 한다. 수동변속 기어 차를 몰다가 자동변속 차를 몰아보면 계속 가상의 클러치를 밟으며 왼발을 움찔움찔하게 된다. 지금은 클러치 페달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고 운전할 때 왼발은 아무 할 일이 없어졌지만. 클러치를 왼발로 브레이크를 오른발로 밟고 있다가 오른발을 서서히 가속페달로 옮기고 속도가 어느 정도 붙으면 기어를 2단으로 바꿔주면서 주행이 궤도에 오르면 클러치에서 발을 떼야 하는데 속도가 줄면서 멈추거나 정지상태에서 출발할 때는 항상 클러치를 밟아야했다.
찻길에 들어서는 게 꼭 아무도 초대하지 않은 파티장에 불청객이 불쑥 들어가는 것처럼 송구스러웠다. ‘제가 감히 도로에 차를 끌고 나와도 되겠습니까?’ 싶었다. 그러니 차선을 바꿀 때도 송구했고, 좌회전을 하려고 할 때도 몸둘 바를 모르는 상태로 허둥지둥거렸다.
성당에 가는 길에는 오르막길이 있었다. 그 오르막길을 올라갔다가 내려간 후 좌회전, 우회전하면 성당이었다. 오르막길에 들어서자 바짝 긴장이 되었다. ‘제발 신호에 걸리지 않게 해주세요. 클러치 밟으면서 출발하는 거 한번만 하고 고개 넘어가게 해주세요.’
내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고 차는 엉금엉금 기어가는 행렬을 따라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시동을 꺼뜨리는 건 기본값이었다.
‘아이고, 미안해요. 제가 오늘 도로에서 운전은 처음이라서요.’ 중얼대면서 다시 시동을 걸고 클러치 밟고 브레이크 밟고 입으로 같이 운전을 하면서 성당까지 갔다.
무사히 남들이 없는 곳에 차를 댔다. 그때는 지금 같은 후면 카메라도 없었고 후면 카메라에 나타나는 주차유도선도 없어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면서 전후좌우를 다 살피고 난 후 댔어야 했는데 운전석에 앉은 내 눈에 보이는 부분에만 집중해서 다른 쪽을 놓치기 일쑤였다. 왼쪽에 있는 차만 보다가 잠깐만, 지금 계속 후진해도 되는거야? 싶어 멈추고 오른쪽을 보면 박기 일보직전이었다. 아 뜨거라, 하며 앞으로 갔다가 다시 후진하기를 반복했다. 순전히 운이 좋아서 사고를 내지 않고 주차를 할 수 있었다.
나 혼자 차를 몰고 무사히 도로에 나가고 목적지에 다녀오는데 성공했지만 마냥 성취감과 기쁨에 젖어있을 수는 없었다. 자동차가 이상했던지 엄마가 차를 정비소에 맡기신 것이다. 클러치 디스크가 다 닳아버려서 교체를 했다고 하셨다. 그것만 해도 또 20만원이 넘게 돈이 들었다.
초보 운전자가 보아야 할 도로 위 정보들도 많고 많은데 속도를 올릴 때 속도가 줄 때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바꾸는 것까지 생각해야 하다보니 ‘넋이라도 있고 없고’의 상태가 되기 일쑤였다. 반대로 차가 잘 출발해서 달리고 있을 때는 클러치를 밟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클러치 디스크가 닳아버려서 제 일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긴장해서 클러치를 주행중에도 계속 밟아댔는지 어쨌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때도 엄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였으면 너 때문에 차가 고장나서 고치는데 또 돈이 들었다, 운전을 잘 못하면 차를 몰지를 말던가, 나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니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이때 엄마가 나에게 하지 않았던 말이 나를 살렸다는 생각이 지금 들었다.
다만, ‘아 운전은 면허를 따는데도 돈이 많이 들더니 운전을 잘못하면 돈이 더 많이 드는구나. 대학 졸업한 딸이 돈을 벌어서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차를 망가뜨리지는 말자’ 싶어서 그 후로는 일절 자동차 운전대를 잡지 않고 시간이 흘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매우 여려서 내 주위에 나를 윽박지르고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을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면 나는 주저 앉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운전대를 잡고나면 감당해야할 일들 중 극히 일부인 차 수리비 때문에 나는 그 후 20년 이상 운전은 생각도 하지말라고 나자신을 단속해 온 걸 생각하면 일리 있는 전개다. 어쩌면 안된다는 말에 이골이 나서 나를 지키려고 더 억세게 굴었을지도 모르지만.
운 좋게도 내 주변에는 ‘잘했네’ ‘너니까 그걸 해낸다’ ‘고맙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훨씬 많아서 이런 상처받기 쉬운 정신을 가진 채로도 잘 살아왔다. 그리고 그 모든 상처받기 쉬운 순간에 ‘너 때문에’라는 그 한 마디를 하지 않은 엄마에게 20년 늦은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