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 20년차는 몰랐던 것

운전자의 입장이 되어 보는 중

by 칼과나

그날도 시댁으로 가는 길이었다.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퇴근 시간대라 차들이 4거리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교차로에 들어서서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다음 신호에 운행해야할 차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이 ‘차들이 왜 이렇게 못 움직여?’라고 묻고 ‘그야 다들 신호가 바뀌려고 하는데 나는 가야겠다며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니까 그렇지’라는 대화를 주고받는 순간 신호가 노란 불로 바뀌었다.

옆 차선의 첫차가 노란불에 깔끔하게 멈춰주었다.

덕분에 신호가 바뀌자 다음 신호에 움직일 차들이 원활하게 오갈 수 있었다.


‘우와 저 사람 멋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저기 경찰 있잖아. 그러니까 섰지.’


남편은 시야가 넓다.

언제 반대편 차선 갓길에 대놓은 경찰차까지 다 봤담?

남편은 항상 바닥에 그려진 직진, 좌회전 등의 표시, 도로 합류를 표시하는 유도선과 머리 위의 신호등, 좌우 차선의 차들을 계속 돌아가면서 다 보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나는 차선을 정확하게 지키면서 운전하는 데 급급해서 가끔씩 위에 있는 신호등의 신호를 보면서도 그것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기도 한다. 내 차의 왼쪽 모서리가 차선을 얼마나 물고 있으면 차선을 밟았다고 알려주는 진동이 울리는지 생각하느라 몰두해 있다보면 눈으로는 고개를 들어 신호를 보면서도 남편이 ‘지금 빨간불이야!’하고 알려주고서야 급하게 멈추느라 혼이 나기도 한다.


운전을 해보니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들이 멈추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물론 신호에 따라 멈춰야 하지만 저기 달려오는 저 운전자가 횡단보도에 보행신호가 떨어졌다는 것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멈춰야 한다는 생각을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켜졌을 때 운행하는 차가 횡단보도 구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방어막이 생기는 게 아니었다.

SE-ddb80fc6-6f82-4342-b75b-2a841d6bc167.jpg @incriveisconstrucoes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꼭 얘기해준다. 초록불이 바뀌어도 앞만 보고 횡단보도에 들어서지 말고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고 완전히 멈췄는지 본 후에 건너라고.


밤 산책을 하러 걷는 중이었다. 앞서 걷던 분이 20미터쯤 멀리 있는 횡단보도가 파란 불로 바뀌자 뛰기 시작했다. 횡단보도까지 가서 90도로 그려진 보도를 건너기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도로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우리가 걷던 찻길에는 긴 트럭이 후진을 하고 있었는데 뒤로 움직이는 트럭의 뒤꽁무니에 닿을 정도로 가깝게.


나는 갑자기 후진을 하는 트럭 운전수의 마음이 되었다. 후진을 시작할 때는 없던 사람이 후진하는 도중에 나타났는데 ‘봤을까? 봤겠지? 후진하면서 속도를 안 내서 다행이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달려가던 분은 차가 서 있다고 생각했거나 뛰어가는 나를 보면 멈추겠지,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저 분은 운전을 안 하는 분일거야, 싶었다.


운전을 하고난 후부터 길에서 돌아다니는 차들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철로 된 탈것이라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차를 모는 운전자를 의식하게 되었다. 갓길에 차가 서 있으면 사람이 내리려는 건지, 곧 출발을 할 건지, 후진을 하려고 하는지 차의 신호를 읽으려고 하게 된다.


그에 맞춰 좀 기다릴지, 얼른 지나갈지, 운전자 쪽으로 피해서 갈지, 조수석 방향으로 둘러갈지 결정하려고 하는데, 잠깐만 기다리라든지 먼저 지나가라든지 운전자도 나를 보았다는 신호를 해주면 제일 안심이 된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이웃을 대하라는 말처럼 나도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 주변을 걷거나 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운전자가 되어야겠다. 커서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지, 생각하던 어린이의 마음으로 20년째 초보운전자인 나는 커서 친절하게 운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결심해 본다.


혼잡한 주말 저녁 교차로에 노란불이 켜져도 ‘나만 건너가면 돼!’라고 머리를 집어넣지 않는 매너도 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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