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한다는 게 이런 거였어?

면허를 취득할 때 나도 모르게 같이 획득해버린 것

by 칼과나

큰 도로로 합류하는 지점에서는 차들이 마음대로 끼어드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주면서 ‘교통섬에 렉카가 서 있는 건 이 위치에서 사고가 많이 난다는 뜻이야’,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 길을 그동안 조수석에 앉아서 수도 없이 지나다녔는데 거기에 렉카가 서 있는 줄도, 서있는 이유도 전혀 몰랐다.


운전을 하면서 보지 못하고 살아왔던 세계가 열리는 것 같다. 마치 외국어를 배우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창이 하나 뚫리는 것처럼.


차를 몰 수 있게 되면 원하는 곳에 내가 필요한 시간에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표면에 드러난 세계다. 운전면허를 딸 때 내가 예상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차를 몰다보면 엔진 오일을 갈아야 하고, 정기적으로 차량 점검을 해야하고, 세금과 보험료를 감당해야 하고, 수리 잘하는 정비소를 알아두어야 할 필요도 내 인생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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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라도 나면 갑자기 누군가는 가해차량이 되고 다른 쪽은 피해차량이 된다.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고 진술서를 쓰기도 한다. 가끔은 매너 좋은 사람을 만나 서로 다치지도 않았고 경미한 사고니 각자 알아서 처리하고 끝내자,로 마무리가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어디서 이런 억지를 쓰는 사람이 나타났나? 내가 이런 사람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었나? 문득 두려워지는 때도 있다.


그렇게 나오신다면 나도 똑같은 모드로 대해주겠다며 평소와는 다른 모드를 켜기도 한다. 블랙박스 영상을 뒤지고 목격자를 찾고 (당연하게도)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나를 믿어주지 않는 경찰과 대화하다보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작은 세계가, 헤르만헤세가 말하던 알처럼 깨지고 세상 밖으로 내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누구나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믿어주던 작은 세계가 깨지고 너도 나도 저마다의 입장을 지닌 운전자1(혹은 사람1)이 되는 세계로 갑작스레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을 먹고 각성하는 네오처럼, 원래 그런 것이었던 세계를 처음으로 제대로 경험하는 것일테다.


운전을 하다보면 사고는 날 수 있는데 사고가 나보면 내가 얼마나 경험도 없고 어리바리한지 깨닫게 된다. 당사자인데 보험사와 경찰이 하는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다보면 이 나이에 이런 것도 모르고 여태 잘도 살아왔네 싶어서 내 인생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문득 막연해진다.


사고가 나면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모르고 살았다는 건 평탄하게 살았다는 뜻이니까 좋은 일일까, 이렇게 맹하게 계속 몰라도 되는 것인가 마음이 노선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처럼 노련해지고 싶은 마음 반, 노련해지기 위해서 겪어야 할 그 모든 갈등과 번뇌의 전투는 모르고 곱게만 살고 싶은 마음 반이 격렬히 다툰다. 죽기 전까지 몰라도 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모르고 살고 싶은게 솔직한 마음이지만 그런 보장이란 없다.


결혼, 장례 같은 영역은 인생에서 매우 중차대한 일이지만 평생에 걸쳐 별로 겪을 일이 없는 이벤트이다. 직업이 해당 예식을 진행하는 업종이 아니라면 이 중요한 일을 경험도 없이 어리바리한 채로 치르게 된다. 여기저기 끌려다니다 얼이 빠지고 넋이라도 있고없고의 상태로 큰 일을 치르느라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다음에는 이것보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고 아쉬워하며 결말을 맺게 된다. 이런 일은 한 번 겪으려면 사람의 인생이 다 들어가는 일이라 익숙해질만큼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해도 몇 년 사이에 확확 바뀌는 트렌드 때문에라도 또 다시 신참의 어리바리함을 피할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가끔 궁금해진다. 보험사 직원이나 경찰,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들은 운전대를 잡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을 더 많이 감지하며 운전을 하는지. 갖가지 사연의 환자를 만나고 그들의 죽음을 경험하는 의사들은 일상생활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결혼식, 장례식을 치르면서 온갖 종류의 가족들을 만나본 웨딩플래너나 장례지도사들은 정작 본인의 결혼식이나 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우리처럼 어리바리하지 않은지도.


앞에서, 운전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외국어를 하나 구사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언어와 붙어 있는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리는 것에 비유했는데 그것이 과연 적절한 비유인지도 고민 된다. 어떤 언어를 새로 알게 되어서 우리 나라에는 없지만 그 언어를 쓰는 나라에는 있는 감정이나 문화를 알게 되었을 때, 언어라는 창을 통해 있는 줄 몰랐던 세계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는데, 그 즐거움을 과연 운전면허를 따면서 여는 줄도 모르고 열어버린 운전생활의 뒷골목으로 통하는 문에 빗대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대를 잡은 이상, 자동차 관리, 세금, 보험료, 사고에 노출되지 않을 수는 없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가능한 한 방어운전을 하고 조심해야겠지만 불미스러운 일을 100% 예방해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되도록 운전 면허를 취득할 때 내가 같이 획득한 것이 무엇인지 가능한 한 많이 알고, 뒷골목이 어둡게 남아있지 않도록 거기까지 내가 관리할 수 있는지 밝은 조명을 비추고 확인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운전면허를 딴다는 것은, 아니 실제로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과 같은 뜻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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