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남 따라가고 싶은 내 마음 어떡하지?

운전대만 잡으면 혼잣말하는 병 나만 걸린 거 아니죠?

by 칼과나

운전할 때 내 앞뒤와 좌우에 있는 운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옆 차선에서 깜빡이를 켜면 ‘아 이쪽으로 들어오시게요?’,

내가 깜빡이를 켤 때면 ‘제가 그쪽으로 좀 넘어갈게요.’,

갑자기 속도를 줄일 때 비상 깜빡이를 켜주면 '앞이 막혀요, 속도 줄여야해요.

라고 신호를 해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다.


서로 목적지도 다르고 운전 경력도 천차만별인 운전자들이 지금 이 도로 위에서 만나 잠깐 스쳐지나가는 건데도 괜한 동지애가 생기기도 한다.


고속도로에서 교통 흐름이 원활해 시속 100km로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퍼붓자 모두들 속도를 줄이고 비상 깜빡이를 켜고 고속도로를 시속 20km도 안 되게 엉금엉금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문득 ‘이 길을 나 혼자 달리고 있었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싶어서 함께 이 상황을 겪고 있는 운전자들이 같은 팀처럼 느껴진다. ‘우리 이 비가 그치는 곳까지 안전하게 지나가요.’라는 마음이 된다.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은 편하지만 마냥 편하지는 않다. 시내 주행을 할 때만큼 자주 차선을 바꾸거나 신호에 걸리는 일이 없어서 편하지만 주행차선에서 달리다가 나보다 속도가 늦은 차를 만나면 기회를 봐서 추월하고 다시 주행선으로 넘어오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은근 지친다.

그래서 고속도로에서 나와 같은 속도로 달리는 차를 앞에 두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굳이 추월하지 않아도 되니 ‘형님 오래오래 앞에서 딱 그 속도로 끌어주십셔!’라는 마음이 된다.

내 뒤에 있던 차가 나를 추월하면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든다. ‘왜요. 내가 많이 느렸나요? 그냥 나랑 같이 가요.’ 나도 모르게 주변에서 달리고 있는 운전자들에게 팀원 같은 소속감을 느끼기도 한다.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 위를 달리지만 누군가는 갈림길로 나가고 누군가는 몇 백 미터 앞에서 왼쪽으로 차선을 옮긴다. 댄스 퍼포먼스에서 넋 놓고 다른 파트의 안무를 따라하면 군무가 되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를 따라 달리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갈 수 없다. 정해진 것을 지키되 각자 다른 동작을 함께 해보임으로써 멋진 퍼포먼스가 탄생하는 것처럼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기억해야 한다.


초보운전이라 차를 다루는 것도 서툴고 길도 낯선 나는 운전을 하다보면 앞차를 무한정 따라가고 싶어진다. 합창이 알토, 메가소프라노, 소프라노가 각자의 파트를 맡아 하모니를 이루는 일이라면 제창은 모두 같은 음으로 부르는 것인데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은 다른 소리들이 귀를 채우는 와중에도 자기 음을 충실히 부르는 합창단원 같다. 나는 아직 제창을 하는 수준이라서 자꾸만 앞 사람이 가는 곳을 따라 가려는 성향이 있다.


내 내비게이션은 지금 차선을 그대로 달리라고 하는데 내 앞에 가던 차가 갈림길로 나가려고 신호를 넣으면 내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나 싶어 긴장이 된다. 초보운전자인 나는 지금 같은 차선을 달리고 있지만 서로의 목적지는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해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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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우리는 지금 안 나가. 우리는 이 길을 달리는 게 맞아.’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아놓지 않은 상태로 내 앞차가 갑자기 차선을 바꾸고 램프로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머리 속이 분주해진다.

어? 나도 지금 나가야 하나? 내가 뭘 놓쳤나? 내비게이션 일 잘 하고 있는 것 맞지?


살면서도 이런 일을 비슷하게 겪는 것 같다. 학교에서 나와 비슷한 성적을 받는 아이들이 어떤 학교에 가는지 알아보고 나도 거길 가야할 것 같고, 나와 같은 전공의 친구들이 주로 가는 직업군이나 회사를 찾아 나도 거기에 취업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잠시 멈춰서서 내가 관심있고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피리부는 아저씨의 피리 소리에 홀린 아이들처럼 주변의 분위기, 사회가 일반적인 것이라고 규정하는 무리에 속해 대세를 따라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건 사회초년생일 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아이를 키울 때도 옆집아이는 어떤 학원에 다니고 무슨 공부를 하는지 흘끔흘끔 눈길이 간다. 따라갈 것도 아니고 따라갈 수도 없는데도 내 아이만 낙오되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 불안해서다. 내비게이션이라는 정답지를 들고도 앞서간 사람을 따라가고 싶어지는게 초보운전자인 나의 습성인데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인생살이에서 매순간 새롭게 매순간 처음을 겪으며 살면서는 더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생각 없이 앞차를 따라가면 결국은 되돌아가야 한다. 내가 정한 목적지를 따라 나만의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길을 꿋꿋이 가려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초보운전 딱지를 떼게될 때는 내가 가야할 길에 대한 확신은 좀 더 강해지고 남을 따라가려는 마음은 희미해졌으면 좋겠다.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운전자들을 안전운전을 위한 파트너로 존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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