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에서도 진리였던 니 주제를 알라는

by 칼과나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그래 가지고 면허는 어떻게 땄냐고. 책으로 공부를 좀 하라고. 몇 번을 가르쳐줬는데 왜 아직도 모르냐고.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타박을 했다.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뭘 모르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냐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건 하나 없이 다짜고짜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를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면 뭘 보라는 건지 공부할 대상이라도 알려줘라. 말대꾸를 하다가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Be+ 동사의 ing형이 진행을 나타내는 거라고 몇 번을 말하냐고, 너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내가 몇 번을 가르쳤냐고. 중학교 1학년인 아이는 이제야 그 문법 설명을 들을 준비가 되었는데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의 기억을 혼자 쌓아뒀다가 아이에게 짜증을 쏟아냈던 거다.


아이에게 미안했던 한편 그러면 가르치는 입장인 내가 배우는 아이에게 기대했던 반응을, 배우는내가 가르치는 남편에게 한 번 해볼까 싶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좋았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마.


‘운전’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책을 검색한 후 그 중 한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보니 정말 나는 모르는 게 많았다. 뭘 모르는지 몰라서 차근차근 가르쳐 주기도 어려웠을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그렇지. 운전을 하는 상황에서 내가 모르고 있구나, 발견한 것들을 하나하나 알려줬으면 안 됐을까?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게 미안해서라도 좀 더 일찍 책을 찾아보고 공부를 했을지도 모르잖아.


뭐든 글로 배우는게 편한 사람이지만 글로는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내 차체가 도로 위에서 얼마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 같은 것.


전면주차, 후면주차, 사선주차, 일자주차, 좁은 골목길에서 좌회전, 우회전 등등 온갖 경우에 대한 설명에는 일반적인 경우에 어디를 기준점으로 두고 언제부터 핸들을 꺾는다든지 하는 설명 끝에 꼭 이 말이 나왔다. 내 차의 크기, 차축, 너비에 대한 감각을 익혀야 한다고.


1504551.jpg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좁은 골목길을 지날 때도, 쇼핑센터의 극악한 커브를 따라갈 때도 내 차가 어디를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든 대처할 수 있구나 싶었다. 가만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


2020년부터 나라는 사람에게서 회사의 간판이 떨어지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해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에게서 대학의 간판이 떨어지고 났을 때 비바람 몰아치는 황무지에 바람을 막아줄 가림막 하나 없이 내버려진 기분이 황망했었다. 태어나서 이때까지 학교 다니고 공부하면서 얻은 게 대학 타이틀밖에 없는데 그걸 떼고 나니 내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한없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그때 한 결심이 대학이 아니라 나로서 승부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거였다.


그 후 20년이 훌쩍 지났는데 이번에는 회사의 간판이 떨어지고 나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다니,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결국은 헛 산 거였나, 헛웃음이 올라왔다.


그때,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했던 것이 먼저 나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나는 뭘 잘하는지, 남들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람들은 내가 쓴 글 중 어떤 것에 더 반응을 하는지 책상에 앉아 나를 문 앞에 세워두고 위아래로 앞뒤로 좌우로 들여다보았다. 나와 한몸이 되어 항상 붙어다니던 나를 내 앞에 떼어놓고 살펴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아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사람들은 나에게서 이런 점을 재미있어하는구나. 이걸 하면 되겠다!


꾸준히 하는 건 당연하고 내가 가진 것들 중 어디에 더 초점을 두는 게 더 효율적인지 내가 세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확인해 보는 작업을 한 것이다.


운전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 운전 실력을 확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그 중에 가장 구체적이고 공감이 되는 방법이 널찍한 주차장에 가서 이리저리 주차하는 연습을 하되 중간중간 차 문을 열고 얼만큼 꺾었을 때 차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면 좋다는 것이었다.


다른 차, 주변에 걸어다니는 보행자 같은 다른 요인이 끼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오롯이 차가 가지는 공간을 파악해 나가는 일, 나를 돌아볼 때 했던 그 특별한 노력을 능숙하게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도 해야하는구나 결론에 다다른다.


니 주제를 알라, 니 차체를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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