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과나 Mar 17. 2023

40대에 교정을 하고 나서 알게 된 것

늦었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도 시작을 하면 끝이 난다

2주 후면 교정이 끝난다. 작년 7월에 시작했으니 8개월쯤 걸린 셈이다. 평생을 좋지 않은 치열인 채로 살았는데 40대보다는 50대에 더 가까워진 지금 왜 하필 교정을 결심했을까? 생각해보면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우리 회사 사무실은 역삼역에 있다. 코로나 전이나 후나 하루 8시간 일하는 직장인이다. 다만 위드 코로나 모드 속에서 속속 출근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는 중에도 우리 회사는 재택 근무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부서 내에서 하는 주간 회의도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같은 일을 하는 외국 동료들과도 화상 회의로 만난다.

             

▲  화상회의 ⓒ ?ⓒ visuals, 출처 Unsplash


보통은 목소리만 켜고 회의를 하기 때문에 내 모습을 영상으로 볼 일이 별로 없다. 코로나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재택 근무를 하는 동안 조직 변경도 일어났다.


조직도 상으로는 같은 팀이고 매일 메일을 주고 받는 동료인데 얼굴은 모르는 채 일을 한지 1년쯤 지났을까. 이제 조금씩 일상을 회복해가는 마당이니 서로를 인간적으로 좀 더 알아가자는 의미에서 월 1회 팀 미팅 때 부서 소개를 하기로 했다.


우리 팀에서 그 일을 맡은 팀원이 파이팅 넘치게 모든 구성원의 인터뷰를 따고 질문별로 멤버들의 답을 편집해서 소개 자료를 만들었다. 프레젠테이션은 잘 진행되었지만 영상으로 내 모습을 본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평소에는 내 얼굴을 들여다 볼 일이 잘 없다. 세수할 때나 가끔 볼까, 내가 어떤 얼굴로 말하고, 웃을 때 어떻게 보이는지 제삼자의 눈으로 볼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옷차림이 좀 이상한 날에도 달리 대안이 없을 때는 내 눈에는 안 보이니까 괜찮다며 그냥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막상 아시아 조직 전체가 보고 있는 미팅에서 보통은 화면을 통해 볼 일이 없는 내 얼굴을, 유체이탈이라도 한 듯 거리를 두고 보니 영상에 나오는 내 모습은 내 생각 속에 존재하는 것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중심에서 옴폭 들어가고 좌우가 돌출된 위쪽 대문니에 중심이 맞지 않게 드러누운 아랫니가 입 안에 가득한 저 아줌마는 누구인가… 그 영상을 보는 이들이 매일 보는 사람들이었으면, 실제의 나를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좀 덜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기억 속에 가지고 있는 내 실물 이미지로 저 어마어마한 영상 속 이미지를 보정할 수 있을 테니까(그렇다고 실물이 예쁘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저 영상으로 나에 대한 첫인상을 만든다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몰론 안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래도 그 생각을 한번 하게 되자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그걸 이메일로, SNS로 전하기 시작하면서, 나보다 먼저 나의 글이 다른 이들에게 닿는 것처럼 사진이나 영상도 그렇겠구나 싶었다.


나는 평소 가족들, 지인들에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치화된 다른 능력이 같다면 너를 어딘가에 들어가게 해주고 선택받을 수 있게 하는 건 너보다 먼저 닿는 너의 글이라고 말이다.


핸드폰에도 노트북에도 카메라가 달려있는 지금 시대에는 나의 실물보다 먼저 카메라에 담긴 이미지나 영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닿는 일이 많겠구나. 나는 앞으로 적어도 40년은 더 살텐데 카메라를 통해서 비치는 저 모습도 좀 정비를 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어졌던 것이다.


7월의 호우를 뚫고 치과의자에 드러누웠다. 아이 덧니 예방 교정을 할 때 다니던 치과다. 그때 슬쩍 물어봤을 때는 발치를 하고 본격적으로 하는 교정은 이 나이에 권하지 않는다며 앞니의 치열만 교정하는 건 가능하다고 했었다.

             

▲  치과 ⓒ oswaldoruiz, 출처 Pixabay


막상 어렵게 결심을 하고 가서 교정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한참을 눈만 껌뻑껌뻑하면서 내 이를 들여다 보았다. 초록색 치과용 덮개 밑에서 빼꼼히 보이는 시야로 입을 아~ 벌린 채로 선생님의 난감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내 이가 뭔가 큰 잘못이라도 한 듯싶었다.


위 아래 대문니를 소소하게 바로잡고 싶었는데 아랫니는 그게 안 된다고 했다. 아랫니는 너무 엉망이어서(그렇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교정하려면 송곳니 위 아래를 다 뽑는 대공사를 해야하는데 이 나이에는 이의 자리를 많이 옮기려다가는 이 뿌리가 녹아서 이가 빠질 수가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10년 전에만 왔어도 전체 교정도 가능했는데… 라고 했다. 10년 전이면 딱, 너무 나이가 많아서 교정을 못한다고 내 맘대로 포기하고 있을 때다. 내가 지레짐작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사이에 어떤 일들은 뒤로 미루면 기회의 문이 닫혀버리거나 물거품처럼 사라지는구나 뼈저리게 후회가 되었다.


시간을 되돌려 전체 교정을 할 수 있었던 그 나이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때 충분히 힘들었고 쪼들렸고 그때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살았다. 아무것도 몰랐으니 지나왔지 다시 겪고 싶지는 않은 시간이다.


그러니 다시 지금을 본다. 지금 내가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 하며 뒤로 미루고 있는 일 중에 나중에 돈이 생기고 시간이 생겨도 못 할 일이 무엇인지, 그래서 지금 꼭 찾아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이번엔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도 시작을 하면 끝이 난다. 2주 후면 끝나는 교정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