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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과나 Mar 20. 2023

치아 교정 8개월, 앞니만 바뀐 게 아니네

인생도 교정처럼 '확실한 변화'를 만들려면

만 나이를 사용하기로 바뀌어서 망정이지 곧 오십이 되는 나이에 앞니 교정을 시작했다. 이제 앞니로 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났다. 갈비도 닭다리도 뜯을 수 없게 되었다. 애플 로고처럼 사과를 한 입 베어무는 것도 불가능이다. 손톱 사이 거스러미도, 과자봉지도 이로 뜯을 수 없다.


앞니는 기능의 영역을 떠나 비주얼의 영역으로 갔다. 회사 미팅 때 내가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고 이제는 내가 실물로 누군가를 만나는 일보다 내 사진이나 영상이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닿을 거라고 생각하니 대체할 방법이 있는 갈비를 씹는 일 대신 철길을 깔기로 했다(관련기사 : 40대에 교정을 하고 나서 알게 된 것).


단단히 마음을 먹고 간 교정 첫 날, 철사가 지나갈 투명한 튜브를 이 위에 붙였다. 그 튜브에 가느다란 철사를 통과시켜 걸어둔다. 교정은 대단한 고통을 동반하는 작업일 줄 알았는데 그냥 이걸로 끝이라고? 싶었다.

             

▲  브라켓을 건 교정 ⓒ yingpis, 출처 Unsplash


구불구불한 치열에 맞춰 자른 철사가 이가 가지런해짐에 따라 직선이 되면서 튜브 끝으로 빠져나올 거라고 했다. 철사가 빠져나와서 입 속 살을 찌르면 언제라도 오라고도 했다. 의구심이 가득한 채 돌아왔다. 그냥 이렇게 이 위에 철사 하나 걸쳐놓는 것만으로 치열이 고르게 된다고?


그저 치열을 고르게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이가 움직이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일을 경험했다. 기존의 윗니와 아랫니의 교합이 교정 과정에서 달라지니 원래는 부딪히지 않던 윗니와 아랫니가 음식을 씹을 때 서로 부딪혀서 이와 이가 부딪히는 게 이렇게 통증을 유발하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쩌릿한 아픔을 느끼지 않으려면 살금살금 씹어야했다. 윗니가 아랫니 안쪽에 들어있는 몇 개의 이들은 아랫니의 바깥쪽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이 마의 구간을 통과해야 했다. 먹는 음식을 유동식에 가깝게 바꿔가며 견딘 3주가 지나 검진을 받으러 갔다. 교정 전에 찍어놓은 이의 틀을 내 바뀐 치열과 나란히 놓고 확인하던 선생님이 놀라며 말했다.


뼈가 연한가보다고, 중고등학생처럼 이가 많이 움직여서 온다고 말이다. 내 이가 이렇게 교정에 최적화된 이인줄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할까말까 고민될 땐 하라는 말이 맞다. 일단 해봐야 되는지 안 되는지도 알 수 있다.


삼십대 말에는 마흔이 다 되어서 교정한다고 철길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저 나이에 왜 저래?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은 하고 싶었으면서 잘 알아보지도 않고 지레 마음을 접었다. 40대마저 떠나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생각이다. 그때가 얼마나 젊은지 왜 몰랐을까.


결국 그렇게 마음을 닫았던 대가로 나는 더 문제가 많은 아랫니는 교정을 할 수 없다는 결과를 만났다. 그러니 이 배움이 헛되지 않도록 교정을 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타고난 이의 모양을 바꾸는데 치과에서 사용하는 방식은 내가 나를 바꿀 때도 유용하게 쓰일 것 같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턱뼈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이가 움직일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다. 나는 나이 때문에 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를 빼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혹은 나처럼 나이 때문에 불가능하거나 혹은 큰 문제가 없어서 발치할 필요까지는 없는 경우에는 이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법랑질을 샌드페이퍼(일명 사포)로 깎아서 미세하게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어느 쪽이든 원래 가득차 있는 것을 빼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루 24시간도 그렇지 않나.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많아도 하루를 25시간, 26시간으로 늘리는 방법은 없다. 원하는 것을 하려면 필요 없는 것, 혹은 우선도가 낮은 것을 빼서 중요한 것을 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두 번째는 변화를 이루어내는 방식이다. 나의 교정에는 두 가지 방식이 동원되었다. 초기에는 이에 브라켓을 달아서 철사를 걸어두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내가 기구를 뺐다 끼웠다 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성실함에 기대지 않아도 치열이 저절로 바뀌는 선택이다.


그저 철사를 하나 걸어놓았을 뿐인데 선생님이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치열이 바르게 되면서 철사가 남아 뺨 안쪽 살을 찔렀다. 그렇다고 걸어둔 철사가 엄청나게 당기고 조이는 것도 아닌데 그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역시 약한 자극이라도 계속해서 주어지는 것은 종국에는 변화를 만들어내는구나 실감했다.


후기에는 투명한 틀을 하루 20시간 이상 끼고 있어야했다. 밥 먹을 때 빼고는 언제나 착용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내가 성실히 끼고 있어야 성과를 볼 수 있었다. 이 투명한 틀은 내가 바뀌어가야 할 모습을 조금씩 반영하고 있어서 3주 정도마다 한 번씩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  인비절라인 ⓒ diana_pole, 출처 Unsplas


치과에서 처음 넣어볼 땐 빡빡해서 잘 들어가지도 않던 틀이 2주, 3주가 지나면서 헐겁게 들어갈 정도로 치열을 변화시켜 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 틀을 뺐다 꼈다 할 때 제일 많이 움직여야 하는 부위와 마찰이 커서 틀이 깨지기도 했다. 변화란 이렇게 힘든 것이구나 싶었다.


나에게는 덧니가 있다.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 송곳니가 나야할 때 이가 나지 않은 채로 너무 오래 지나버려서 내려올 자리를 얻지 못한 송곳니가 덧니가 되었다. 나의 틀은 그 덧니까지 포함된 내 이에 꼭 맞게 만들어져 있다.


덧니가 있는 내 이 모양 그대로 만든 교정 틀을 닦아서 이에 딱 끼워물 때마다 생각했다. 이 틀이 아무리 가지런하고 예쁘면 뭐하나, 내 이에 꼭 들어맞지 않으면 들어가지도 않는 것을. 남이 만든 계획이나 목표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내게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교훈을 투명한 교정틀이 체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40년 넘게 가지고 있던 치열이 이 두 가지 방법으로 8개월 만에 바뀌었다. 그러니 나는 해묵은 습관을 새로운 습관으로 바꿔야할 때 딱 이 방법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있던 것에 더해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덜 중요한 것을 빼서 중요한 것을 할 여유를 만들 것. 별 것 아닌 것 같은 자극이라도 계속 할 것, 변화가 나타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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