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남편, 간장이, 슈 이렇게 안씨 3대는 새벽같이 길을 떠났다.
남편이 출국하기 전에 아버님과 당일치기 드라이브 여행을 나선 것이다. 아버님은 결혼 초기, 아직 아기가 없을 때 주말마다 우리 부부를 태우고 이렇게 당일치기 드라이브 여행을 다니셨다.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 출발해서 전국을 누볐다. 집에 도착하면 밤 12시 가까운 시각이 된다. 운전은 당시 70대셨던 당신이 직접 하셨다. 젊고 운전 잘하는 아들이 있어도.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전국 고속도로가 머리 속에 다 있는 분이시다. 가끔은 새로 뚫린 길이 업데이트가 안 되어 고장이 나기도 하지만.
어머님은 먼 거리 이동이 편치 않으시기도 하고 아버님 여행 성향에 맞추기엔 화장실도 자주 가셔야 하고 해서 집에 계시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어머님과 식사를 하러 시댁에 가기로.
남편 출국 전에 파자마와 로브를 완성해야 해서 마음이 바빴지만 내가 오는 것을 기쁘게 기다리고 계신다고 해서 점심시간에 맞춰 시댁에 갔다.
어머님과 산뜻하게 밥 한 끼 사먹고 차 한 잔 마시고 오려던 계획은 마음같이 되지 않았다.
도라지 네 팩과 데쳐놓은 숙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밥 한 끼 사먹으면 5만원은 들텐데 그러느니 소고기 불고기감을 사다가 양념해서 먹고 남은 건 들고가서 먹으면 더 좋지 않겠냐고 하셨다.
네? 저는 인당 2~3만원짜리 식사를 할 생각이 없었는데요?
우리 어머님 야심만만하시네. 하긴 이 점이 내가 시부모님을 존경하는 지점이다. 기초생활연금 이외에 별다른 수입원이 없고 공부하는 아들네의 빠듯한 살림으로 겨우 드리는 생활비로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나가시는 것 말이다. 철 없었을 때는 왜 저렇게 대책 없이 사셨을까 원망스러운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존경하는 마음이 크다.
큰 사치도 안하고 먹고 싶은 걸 펑펑 먹는 것도 아닌데 카드값 때문에 월급은 항상 통장을 스쳐지나가고 매달 적자를 면치 못하는 나를 되돌아보면 내가 시부모님과 같은 소득으로 살아야 한다면 돈을 다 써버렸다고 아들내외에게 아쉬운 말하지 않고 살림을 꾸려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서다.
시댁에 오니 나는 일손이구나 싶어 조금 속이 상하려다가 생수 뚜껑도 따지 못하는 어머님의 어깨와 손관절을 보니 이건 닥치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 싶었다. 림프절이 부어서 병원에 다니신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기능이 떨어진 줄은 모르고 있었다.
커다란 양푼에 도라지 네 팩을 풀어놓고 안씨 집에 시집 온 두 최씨가 마주 앉았다. 어머님은 아버님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셨다. 나는 잠자코 듣는다. 한 입 크기로 자른 도라지에 소금을 뿌려놓고 길을 나선다. 소고깃감을 끊으러 나가는 것이다.
어머님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는다. 고깃감을 사고, 고기를 연하게 해줄 키위를 사고, 간장과 올리고당도 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번을 벤치에 앉아 쉬었다. 근육이 사라지면 큰일이라고 매일 꼭꼭 걸으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넘어져서 뼈가 부러지는 게 제일 큰 일이라고 겨울에는 지팡이를 짚고 걸으셔야 한다고.
어머님은 도라지나물을 잘 하신다. 나중이 되면 어머님이 해주신 나물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니 이번 기회에 잘 배워보기로 했다.
소금에 절여뒀던 도라지를 꽉꽉 주무르듯 만져준 후 물로 씻어낸다. 쓴 맛을 씻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마늘, 들기름, 파 등을 넣고 볶는다. 소금을 넣었는지 간장을 넣었는지 벌써 기억 안 나는 것 봐... 무튼~ 대충 간을 맞추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익히면 된다. 이때 계속 뒤적여주면서 눌러붙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막 익었을 때는 도라지의 쓴 맛이 나지만 식고 나면 사라진다. '간장을 한 바퀴 둘러서 넣어라. 조금 더 넣어 봐라. 마늘은 세 숟가락 넣고.' 어머님의 아바타가 되어 불고기 양념까지 해놓고 집에 왔다.
남편이 아버님을 모셔다 드리러 시댁에 들릴테니 그 차를 타고 돌아와도 되지만 아버님이 신이 나셔서 정선으로, 국도로 돌아서 가자고 하셔서 남편은 밤 10시 반이나 되어야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주말에만 바느질을 할 수 있는데 남편 출국 전까지 주말이 두 번밖에 남지 않았으니 두어 시간이라도 바느질을 해서 진도를 빼놓아야해서 저녁 식사는 하지 않고 돌아왔다.
같은 시각 안씨 3대는 강원도를 누비고 있었다.
덕산해수욕장
주말에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걱정과 달리 날씨가 좋았다.
정선 화암동굴
누나가 친한 척하니까 '어머 왜 이러세요'하는 듯ㅋㅋㅋ
아버님이 여기 가서 아이들이랑 보고 오라고 하셨단다.
아버님은 이제 다리가 안 좋으셔서 이런 구경은 못하셨다고.
관동팔경의 제1루 죽서루인가봉가.
고1, 중2 아이들이 '할아버지가 너희들이랑 같이 여행하고 싶으시대', 한 마디에 일요일을 순순히 내놓았다. '할아버지를 챙기는 모습을 보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많이 컸더라',라고 남편이 말했다. 아버님은 하루종일 신나하셨다고 했다.
어릴 때 아버님과 둘이서 여행을 가면 이제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인데도 한사코 00에 가서 xx를 보고 가자고 고집을 피우던 아들과 그 말을 군말 없이 들어주던 아버지는 이제 반대로 고속도로 놔두고 3시간이 더 걸리는 국도로 yy를 거쳐서 가자고 하고 아들은 그 말을 군말 없이 들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각자의 방식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셨고 두 분이 좋아하셔서 자손들도 모두 뿌듯한 주말이었다.
다음 날 아버님이 내가 만들어놓은 음식들 맛있게 드셨다고 전화를 주셨고, 어머님도 수고했다고 전화를 주셨다. 돈은 좀 부족하지만, 인정과 감사는 넉넉하게 주고 받는 인생이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