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경험은 없다'는 말이 사진이 되면 이럴까... 구본창사진전후
배우 이동욱이 나오는 드라마 <구미호뎐>에서는 승천하고 싶은 이무기가 사람의 생명을 꽈리에 가둬뒀다가 자기에게 부역하는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데 쓴다.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는 꽈리라는 식물의 열매 모양 때문에 저런 설정이 나왔구나 싶어서 흥미로웠지만 그 때뿐 곧 잊었다.
최근 친구와 덕수궁 뒤 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린 '구본창의 항해' 전시를 보러갔다. 백자 도자기 사진, 금으로 만든 유물 사진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1층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자기만의 스타일이 정립되기 전에 했던 다양한 시도들이 넓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 구본창의 항해 ⓒ 최혜선
그는 멀쩡한 회사에 취직을 했지만,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주말도 없다시피 일하고 왁자지껄한 회식으로 가득찬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 사표를 내고 독일에 주재원으로 갈 수 있는 작은 회사에 다시 취직해 독일로 넘어갔고 거기서 디자인 공부를 했다. 학교를 졸업할 때쯤 더 이상 학교 교수님들이 아무런 자극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실린 <조선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당시 좋아하는 작가 안드레 겔프케에게 전화를 건 뒤 무작정 찾아갔다. 사진을 보고는 '유럽인이 찍은 건지 한국인이 찍은 건지 모르겠다'고 '너의 눈으로 너의 이야기를 하라'를 충고를 들었다고 한다.
그 충고를 들은 후의 작품들은, 외국에서 공부를 하거나 생활을 하는 한국사람들이 '내 경쟁력은 결국 한국적인 것에 있구나'라고 깨닫고 연구논문이든 창작하는 작품이든 한국적인 것에 천착하게 되는 것과 궤를 같이 했다.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는 나의 경쟁력은 내가 영어와 일어를 이해할 수 있되 한국어를 잘 구사한다는 것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술관 전체를 채우는 회고전을 여는 작가와 직장인인 내가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구본창이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시간강사 자리는 차비 정도 버는 수준이라 형제자매에게 만원 이만원을 빌려쓰는 처지가 한심해 죽음을 생각했다는 이야기에서는, 지난 18년간 시간강사로 고군분투하던 남편의 시간이 겹쳐보였다.
뭐라고 하나로 분류할 수 없는 다양한 작업물들은 자신만의 길을 뚫어보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다 드디어 1층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서 작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달항아리를 찍은 작품을 보았다.
▲ 달항아리로 달의 이울어짐을 표현한 문라이징III ⓒ 최혜선
그때그때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소재와 기법을 다양하게 탐구해오다 마침내 미니멀한 그만의 스타일이 싹터나온 것을 보자, 나는 마치 우승자를 이미 알고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과정을 통과할 때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터널 속을 걷는 것처럼 막막했을 테고 그렇게 좌충우돌한 끝에 마침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었을 텐데 정답을 알고 보니 모든 과정이 다 정답을 향해 있는 듯한 기분 말이다.
2층에 올라가 작가만의 미니멀한 구도의 사진들이 전시된 것을 보자 그 어렴풋한 생각에 더 확신이 들었다. 인생에 무의미한 경험은 하나도 없다고 했던 말들이 형태로 드러나면 이런 걸까 싶었다.
회사는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회사에서 은퇴하게 될 때 나는 남은 날들을 즐겁게 채워갈 수 있는 나만의 일을 찾을 수 있을까, 뭔가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뭘 해야할까 하는 등등의 생각으로 뿌연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은 나의 지금. 전시를 보며 이 또한 나중에 돌아보면 모두 의미있는 과정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품게 되었다.
친구에게 전시를 보면서 든 생각에 대해 얘기하다가 문득 구본창이라는 작가의 인생이 압축된 꽈리 속에 들어있는 에너지를 오늘 내가 흡수한 게 아닌가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내 에너지에 조금은 생기를 충전하지 않았나 싶다고. 드라마 속 설정이 내 머리 속에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말을 하고 내가 놀랐다.
그러고보니 3년째 참여하고 있는 고전문학 독서모임에서의 경험도 그랬다. 딱딱한 권위와 범접할 수 없는 도도함의 성 안에 감춰져 있는 것만 같았던 고전문학 작품들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예상외로 여리고 따뜻했다. 책 한 권을 읽고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다보면 굳어져가는 몸과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드라마 속에서는 주인공들이 원치 않게 꽈리 속에 갇히는 억울한 생명들의 에너지를 뺏는 것이었다면 작가들은 기꺼이 생을 바쳐 자기 앞의 과제를 해결해나간 이야기와 작품들을 우리에게 내놓는다는 점, 작가의 삶과 작품을 접하는 모두에게 그 에너지를 전해준다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드라마 이야기에 생각이 미치자 또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최근 tvN에서 방영하는 <환혼: 빛과 그림자>라는 드라마다. 여기서 하나뿐인 생명을 소모해서 인간 세상에서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은 그걸 더 오래 누리기를 욕망했다. 그래서 젊은 육체는 있지만 그것을 지켜낼 힘은 없는 사람들에게서 몸을 빼앗아(그것이 몸에 혼을 바꿔넣는 환혼술이다) 영생을 꿈꿨다.
환혼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없겠지?)는 점을 제외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더 오래 더 잘 누리고자하는 욕망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해가 올 때마다 운동과 독서를 새해 결심에 올리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운동을 해서 누구와 바꿀 수 없는 내 몸, 내 영혼의 집을 아껴주려는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도 환혼술을 욕망하는 마음이 있다는 방증이다. 공연과 전시를 보고, 책을 읽는 이유는 공연자의, 전시물의, 문학작품 속의 에너지가 응축된 꽈리(예술 작품이 주는 영감)를 흡수하여 나이 들고 시들어가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구원하려는 노력이었던 것이다.
▲ 공연 (자료사진). ⓒ 픽사베이
최근에 내가 왜 이유 없이 자꾸 책이 읽고 싶고 전시를 보고 싶고 음악 공연을 듣고 싶은건지 몰랐다. 그냥 내 허영심인건가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보니 나는 살려고 그랬던 거였다. 잘 살려고. 환혼술과 꽈리를 알려준 드라마들 덕분에 올해부터는 정답을 알고 문제를 푸는 우등생처럼 살아볼 수 있겠다.
잠 잘 자고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는 것은 환혼술을 나의 삶에 가져오는 것, 문화를 누리는 것은 재능이 있는데 노력까지 아끼지 않았던 예술가들의 인생 에너지를 모아놓은 꽈리를 섭취하는 일이다. 모두들 지속가능한 환혼하시고 꽈리로 생명 에너지 채우시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던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