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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다시 시카고, 공항투어의 추억들

로드트립, 스탑오버를 마치고 비-행기 타러가요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휴스턴은 평화로운 '마지막' 여름휴가였다. 원래 여름에 휴가를 가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원래 남들이 다 휴가를 갈 때 맞춰서 휴가를 가 본 적도 없고, 원래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대체로 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하기 싫은 것이 취업과 결혼이었다. 요즘 대세인 퇴사와 이혼에 대한 썰을 풀고 싶어도, 만난 적이 있어야 작별의식을 치를 게 아닌가.


졸업을 앞두고 글로벌한 기업에 제출한, 유일하게 진심이었던 입사지원서(English only)가 통과되었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겠지만, 이미 너무도 멀리 와버려서 상상할 수 없는 미래(?)다. 그럼에도 가지 않은 길에서 할 수 있을 법한 브랜딩, 디자인 등 대부분의 일을 해왔다. 남들 다 하는 것 빼고.



공항가는 길에서 보는 일출(마이애미)


'남부의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명문대에서 미국사를 공부하고 있던 친구를 만났다. 다른 한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나처럼 이공계라 주로 동부에 있었는데 지역과 전공이 독특하고 그래서 더 기대감이 있었던 그녀와의 약속은 이번 여행에서 결정적인 한 수를 제공했다. 휴스턴은 뉴욕보다 시카고에서 가깝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뉴욕에서 오는 길에 애틀란타라는 임의의 중간 지점에 들러도 될 것이다. 스탑오버를 잘 설정하면 비행기가 아닌 버스로도 이 구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렇게 로드트립의 마스터플랜이 세워졌다. 뉴욕 -(밤차)-워싱턴-(밤차)-애틀란타에서 1박-(밤차)-뉴올리언스도 1박-(밤차)-휴스턴에서는 2박을 하고 시카고행 새벽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정말 새벽이었다.




다사다난했던 2016에는 댈러스발 귀국 비행기를 환승하기 위해 새벽이라기엔 너무 이른 밤 2시에 뉴저지 주 '뉴어크' 공항으로 체크인하러 간 적도 있다. 국내선 연착으로 불안해진 AA항공이 제휴사인 대한항공에 스위치를 요청해서 결국 낮 12시에 JFK발 직항을 탔다. 연착된 비행기도 원래 4시간이나 남아서 공항 wi-fi 일일권을 미리 구입한 덕분에 무려 10시간 동안 신나게 공항투어를 했다.



어느 길고 긴 공항투어 중의 티타임(요하네스버그)


지금은 몰라도 당시에는 뉴어크-JFK 공항간 와이파이 공유가 가능했다. 무엇보다도 귀국할 때 스킵한 댈러스, 바로 그 댈러스는 출국할 때 처음 도착한 도시였다. 출국하는 비행기는 예정에 없던 도쿄에서 문을 닫은 채 긴급 수리를 했다. 그 동안 비행기 안에 갇혀있었고 12시간 비행이 15시간으로 늘어났다. 댈러스에서 뉴욕행으로 갈아타야하는데 시간이 늦었다며 아침 비행기표와 호텔 숙박과 석식 및 공항 조식 바우처를 제공받았다. (조식을 주문한 카페는 기계가 고장나서 현금 결제했다.)


계획에는 전혀 없었던 호캉스를 첫날부터 했더니 미국에 대한 근거없는 자신감이 급증했다. 댈러스에서도 6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4시 셔틀을 신청했지만 3분쯤 늦게 나와서 5시 셔틀을 탔는데 무사히 뉴욕에 도착해 무사히 모든 환승편을 클리어했다.




휴스턴에서는 내돈내산 2박을 했지만 얼리 체크인을 해주지 않았다면 상당히 억울했을 뻔 했다. 첫째날 아침 8시에 입실했고, 셋째날 새벽 3시에 공항가는 우버를 타기 위해 퇴실했으므로 의도치 않게 8시간을 반납했던 것이다. 실제로는 체크인을 8시간 당겨서 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을 다 활용한 셈이었다. 휴스턴에서 숙소를 고르는 일은 상당히 까다로웠는데, 도심은 호텔이 드물고 비쌌기 때문이다.


휴스턴 둘째날 저녁식사


도심을 벗어나게 되면 59번 도로를 지나는 버스에 의존해야 하고, 한번 나왔을 때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첫날은 친구와 점심식사, 둘째날은 걸어서 약 2km거리에 있는 쇼핑몰에 구경갈 겸 점심식사와 예정에는 없었던 저녁식사만 외부일정이었다. 첫날 식사 후 수영을 하고 잤거나 그냥 잤을 것이고, 둘째날 아침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부페였다.


꼭 어딜 가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까지만 해도 가만히 있지를 못해서 쇼핑몰에 가서 스윽 둘러보고 맨해튼과 워싱턴 다운타운에서 자주 이용했던 특색 없는 체인점에서 파스타를 먹었다. 쇼핑몰 밀집지구인 갤러리아를 포함해 모든 건물이 듬성듬성 떨어져있고 지하철도 없는 이 도시에서 2km를 걷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차 없이 이런 곳을 걸어보면 길냥이 또는 미국의 차 없는 계급인 불가촉천민의 고뇌를 날 것 그대로 경험할 수 있다. 외롭고 무섭고 막막하다. 만능 여행어플인 구글맵이 없었다면 1km이상 가지 못하고 되돌아왔거나 직진하다 보이는 식당에서 식사만 하고 바로 귀가했을 것이다.



휴스턴 둘째날 아침식사


셋째날은 휴스턴의 날이 아니었다. 새벽 여섯 시면 시카고를 향해 날아가 버릴 예정이었다. 도심도 공항 존도 아닌 곳에 동떨어진 작은 호텔에는 셔틀이 없었다. 우버가 와서, 나를 태우고 공항해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했다.


공항에서 4시 반에는 체크인을 끝내고 아침식사를 하겠다는 목표로 3시에 우버를 불렀다. 정확히 4시 32분에 스타벅스에서 찍은 인증샷이 남아있다. 시카고 공항 이후로 남은 구역은 전부 '이미 가본 곳'이나 마찬가지다. 겨우 한달 전에 겨우 3일 정도 있어본 곳이지만 어쩐지 감격스러웠다.


역시 난 도시여자야. (로드트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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