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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 아침산책

거의 최종 목적지를 앞둔, 거의 마지막 스탑오버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세 번째 밤차가 도착한 곳은 뉴올리언스였다. 뉴욕에서 워싱턴까지는 짧고(자정-새벽 3:50), 워싱턴에서 애틀랜타까지는 길어서(자정-낮 12:30) 겪어야 했던 피로한 기억은 이제 잊어도 된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이미 해가 뜨고 있는 뉴올리언스의 거리를 상큼하게 걸었다. 서두른다고 체크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기에, 방향만 강변의 프렌치쿼터쪽으로 잡고 스벅모닝을 즐겼다.


애틀랜타에서는 스타벅스 원두와 커피머신이 갖추어져 있는 데다, 문 앞에 대형 제빙기가 있어서 홈 스벅모닝도 가능했었다. 여유로운 아침을 위해 문고리 주문으로 룸서비스를 요청해두었더니 깔끔하고 푸짐한 조식과 갓 내린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까지 방 안으로 배달되었다. 대체 스벅만 몇 잔째인가.



재즈 바이브 넘실대는 뉴올리언스 거리


네 번의 밤차 여행 중 처음 두 번을 무박 3일로 강행했다. 대신 중간 지점인 애틀랜타에서 꿀잠 위주의 호캉스로 빠르게 충전하겠다는 계획은 대성공이었다. 오전 내내 카페인을 들이부어서인지, 독주를 마시고 오른 세 번째 밤차에서는 결국 잠들지 못했다. 어둠과 함께 술과 잠이 달아나는 평범한 아침이었고 뉴올리언스의 전차 이용법을 알아내자니 조금 피곤했다. 이 전차가 그렇게 유명하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독서의 시계를 멈추고 영어를 재부팅하고 있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이 여러 곳에서 역주행을 하게 될 것도 전혀 몰랐다.


미시시피강을 향해 걷다가 걸리는 스타벅스에서 평범한 모닝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카페인을 충전했으니 이 구역에 도착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Jazz Vibes 심쿵한 벽화를 찍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살살 걸어서 예약한 호텔에 짐 보관을 부탁하러 갔다. 최대한 천천히 가려고 했지만 아침은 길었다. 정체할 구간도 없는 일요일이었다.


이 여행은 이제 결말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아직도 휴스턴, 시카고, 인천, 서울로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얏트 리젠시에서 나름 비싸게 충전한 체력을 낭비할 수 없었다. 게다가 뉴올리언스였다. 어쩌면 남은 여행 에너지를 다 털어야 할지도 모르는 마지막 핫스팟으로 가는 중이었다.



Monument to the Immigrant


체크인까지는 아직도 8시간쯤 남았으니, 캐리어만 보관하고 백팩은 그대로 메고 있었다. 여행 기간과 상관없이 기내용 캐리어 하나에 짐을 싸는 대신, 장기여행일수록 백팩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지기에 만만한 짐은 아니었다. 갑자기 그 짐을 분리할 수도 없었다. 도시 간 이동을 할 때는 생각 없이 큰 짐에 쑤셔 넣은 작은 물건들이 정작 도착한 후에는 아쉬워지는 경우가 생긴다. 아직도 내공이 부족했다. 그 후 3년이 넘도록 반성하고 있지만 진짜 짐 싸기가 필요한 실전 여행은 머나먼 미래에서 다가오지 않고 있다.


뉴올리언스는 아직도 아침이라 술 취한 재즈의 거리 대신 강변으로 갔다.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미시시피 강과 레일로드 사이의 공원을 걷고 맑은 공기를 마셨다. 프렌치쿼터는 크지 않은 마을이라 체크인하기 두어 시간 전에 돌아갈 작정으로 강변을 따라 올라갔던 길을 다시 내려왔다.


쇼핑몰에 먼저 가봤다. 브런치로 피자를 먹은 기억은 확실하다. 노스트롬 랙(Nordstrom Rack)에서 새로 산 옷을 입고 밤 공연을 보러 간 기억도 확실하다. 피자를 먹고 지름신을 만났었나 보다.



미시시피 강변의 전찻길, 뉴올리언스


시카고에서 만난 일본언니가 노스트롬 가는 길을 물어온 덕분에 노스트롬 백화점을 알게 되었다. 시카고, 뉴욕에서는 길을 묻는 아시아 관광객을 거의 매일 만났고, 특히 정신없는 뉴욕에서는 유럽인들도 길을 물었다. 여행 중에 미국에 살았던 친구와 연락하다가 노스트롬 아울렛인 노스트롬 랙이 괜찮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애틀랜타에서도 쇼핑몰 무한루프에 빠졌지만 구입한 것은 아이스크림뿐. 가끔 윈도우 쇼핑에서 묘한 승리감을 느낀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어! 그러나 드디어 정신적 최종 목적지인 뉴올리언스에 왔다. 짐이 조금 늘어도 괜찮겠지? 순간 방심했다. 남은 일정은 메가버스 한 번, 비행기 두 번이니까.


밤차와 아주 이른 새벽 또는 아주 늦은 밤에 출발하는 비행기인 것을 고려했다면 짐을 늘리지 않았어야 했다. 시카고와 마이애미에서 산 옷도 반은 버렸고, 집에서 가져온 옷은 계속 집에서 입을 옷과 스냅 촬영할 때 입은 드레스 정도였다. 이미 10월이었는데 남부로 내려온 덕분에 뉴올리언스와 휴스턴에서 다시 여름을 맞아야 했다. 그 핑계로 신나게 쇼핑몰을 털었다. 미니드레스와 10달러 인조 다이아 귀걸이와 현지에서 사용할 미니어처 화장품 정도였지만 어제 참았다는 승리감이 욕망이라는 보상심리로 되살아나는 것을 실감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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