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준 음식, 오이스터, 재즈 라이브
루이지애나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피, 땀, 눈물이 스며있는 미국 남부에 가깝지만 대체로 그냥 루이지애나이다. 1803년 미국 영토가 되기 전부터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스페인과 프랑스의 문화가 융합되어 있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남북전쟁의 씨앗이 된 해리엇 비처 스토의 <엉클 톰스 캐빈>의 주인공 톰 아저씨가 잠시나마 행복했던 곳이 바로 루이지애나의 뉴올리언스였다.
해리엇 비처 스토는 에드거 앨런 포와 <주홍글씨>를 쓴 너새니얼 호손, <모비딕>을 쓴 허먼 멜빌과 같은 시대인 1852년에 이 작품을 썼다. 영국에서 찰스 디킨스와 브론테 자매가 활동하던 시대이기도 했지만, 미국에서는 거의 최초의 국민 소설을 집필한 거의 최초의 백인 여성작가이다.
그녀가 실제로도 남부의 흑인을 북부나 캐나다로 탈출시키는 비공식적인 사업을 하기도 했기에 <엉클 톰스 캐빈>은 거의 논픽션에 가까운 가명 다큐멘터리로 보인다. 백 년 후에 등장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와 동시대 흑인 작가들의 완성도 높은 픽션과 논픽션을 읽기도 바쁘지만 영어로 쓰인 여성작가의 작품 중에서 이 책을 먼저 읽어보고 싶었다.
몇몇 벽돌책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두가 알지만 원작을 실제로 읽은 사람이 거의 없는 <엉클 톰스 캐빈> 원서를 읽으면서, 거의 모두가 알지만 실제로 가본 사람이 거의 없는 뉴올리언스를 가본 기억을 회상하는 희귀한 즐거움이라니.
뉴올리언스는 시카고에 복귀하기 전의 마지막 목적지인 휴스턴과 가깝기도 하지만, 이미 '재즈 라이브'로 유명했기에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아마 휴스턴의 약속이 없었다면 뉴올리언스를 거쳐서 추억의 댈러스에 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뉴욕과 휴스턴 사이의 스탑오버는 그냥 지나치면 서운할 워싱턴 특별시와 그냥 잠만 잘 예정이지만 딱 중간에 있는 대도시이자 <워킹데드> 및 전국 투어 작품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애틀랜타, 그리고 뉴올리언스가 되었다.
게다가 이틀 동안 거의 벗어나지 못한 프렌치쿼터에는 뉴올리언스라는 지역에 세계적인 명성을 부여한 재즈와 음식이라는 다문화적 코드가 응집되어 있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의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지역은 케이준 음식의 고향이다.
케이준은 영국인들이 캐나다 아카디아를 점령하면서 루이지애나로 강제 이주된 프랑스인과 그들의 방식으로 조리한 음식이다. 프렌치쿼터의 프랑스인이 프렌치쿼터로 오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었다. 음식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인과 중남미에 가까운 루이지애나 식재료가 만나서 독특한 요리들이 탄생했다.
중남미에서 태어난 스페인, 포르투갈계 후손을 크리올/크레올(넓은 의미에서는 식민지에서 태어난 유럽인, 또는 아프리카인도 포함)이라고도 하는데, 루이지애나와 텍사스 등 중남미와 인접한 지역에서는 크리올/크레올 음식이 특산물이다. 크리올/크레올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루이지애나 지역은 케이준의 영향으로 더욱 독특한 음식과 문화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중심이 뉴올리언스 프렌치쿼터이다.
하지만 뉴올리언스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오이스터'였고, 첫날의 이른 저녁은 꼭 이걸 먹어보겠다며 호텔 근처의 오이스터바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서 나름 흔하다면 흔한 '오이스터'를 먹어보는 건 처음이지만 어떤 음식인지 너무 잘 알기에, '프라이드 깔라마리'를 함께 주문했다.
덥고 지쳐서 입맛이 없기도 했지만, 주로 겨울에 먹는 생굴과 오징어/한치 튀김을 열대지방의 오후에 먹는 기분은 낯설었다. 곧 체크인 카운터가 열리는데 몇 분을 더 기다릴 힘이 없어서 이른 저녁을 주문했지만 진짜 재즈투어를 준비하는 동안 쓰러지지 않기 위해 술은 참았다. 드디어 체크인을 하고, 거실과 방이 분리된 널찍한 객실에서 신나게 짐을 풀고 씻고 다시 외출 준비를 했다.
새로 산 미니드레스를 입고, 어둠이 내린 프렌치쿼터의 가장자리를 따라 음악소리가 거의 사라지는 곳까지 걸어갔다. 걷다 보면 문을 활짝 열어놓고 3인조 밴드의 공연을 하는 가게도 있고, 거의 건물마다 연주를 하고 있었지만 낮에 북적거렸던 시장 쪽은 조용했다. 오늘의 체력은 이미 다했기에 에너지 드링크를 써서 가불한 체력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멀리 가서 길을 건넜다.
밤거리가 시작되는 작고 조용한 카페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고, 자리를 뺏길라 얼른 높은 스툴을 차지했다. 칵테일이 나오고 연주가 끝나자 피아니스트 아저씨는 퇴장하고, 내 친구를 닮은 언니가 기타를 들고 나와서 노래를 했다. 노래를 세 곡쯤 듣고 팁 잔에 팁을 넣어주고 바텐더에게도 팁을 남기고 다시 밤거리를 걸었다. 돌아오는 길은 한가했다.
관광지이기는 하나, 휴양지보다는 도시에 가깝고 주로 내국인이 주말에 놀러 올 만한 곳이다 보니 일요일 밤은 뜨겁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서울이나 뉴욕의 토요일 밤은 너무 뜨거워서 델 것 같으니까.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