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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 휴스턴, 다가오는 귀국

방전을 준비하는 스탑오버 마지막 여정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프렌치쿼터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귀가한 다음날도 근처에서 브런치로 하루를 시작했다. 프렌치한 2층 테라스가 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햇살 가득한 거리를 내다보며 포보이라는 뉴올리언스 샌드위치를 맛보았다. 잠시 주변을 정처 없이 걷고, 조금 더 구역을 확장해보려고 큰길로 나갔지만 곧 지쳐서 모던한 카페에 들렀다.


시간은 넉넉했지만 멀리 나가고 싶지 않아서 큰길을 따라 다시 강변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공원을 찾아 떠나려는 욕구는 긴 여행의 피로 앞에서 무력했다. 로컬푸드에 열광할 정도는 아니라서 팬케이크 프렌차이저 카페가 오히려 반가웠고 또 한 번 신나게 이른 저녁을 먹었다. 기나긴 산책의 연속이었다.



포보이와 감지튀김이 있는 프렌치한 카페 2층


뜨거운 태양은 자꾸만 나를 실내로 몰아넣었다. 결국 강변공원에서도 버티지 못하고 쇼핑몰에 다시 들어갔다. 뉴욕에서, 애틀랜타에서 버스를 타고 나오는 날의 데자뷔가 계속됐다. (그리고 이 방황은 휴스턴과 시카고까지 계속된다.) 비가 오거나 덥거나 추워서, 또는 로컬 스트리트까지 이동하기가 번거로워서 길을 잃어도 상관없는 시간에는 목적 없이 실내를 떠돌았다.


이런 초대형 쇼핑몰은 정신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끔 그 정신없음이 위로가 될 때도 있었다. 덕분에 귀국한 후에도 그런 방황이 좀 더 편해졌다. 길을 못 찾아도 조바심이 나지 않았지만, 여러 도시에서 헤매다 보니 건물의 높낮이나 태양의 위치를 측정할 수 없어서 헷갈리는 실내에서도 길을 잘 찾게 됐다.


해가 지고 기온이 적당히 떨어진 후에도 굳이 멀리 나가서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기에, 짐을 보관하고 있는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아이리시 펍에서 포크송 라이브를 들었다. 일요일보다 월요일은 더 한가했다.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며 무난한 칵테일을 앞에 두고 최대한 오래 앉아있을 생각이었다.


이땐 몰랐지만 이후로는 너무 덥고 너무 추워서 이런 여유로운 밤도 거의 마지막이 될 예정이었다. 이런 기분으로 밤 비행기를 기다리던 일주일 후의 공항에서는 '짐을 찾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해야 하는 숙제가 이미 해결된 상태라 더 여유롭긴 했지만.




버스시간보다 넉넉히 앞선 시간에 우버를 불러놓고 바로 옆 블록으로 이동해 짐을 찾았다. 이제 이 버스만 타면, 더 이상 버스를 놓치거나 자리를 뺏길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분명 휴스턴에 도착하면 새벽일 것이고 잠이 부족한 상태로 트램과 시내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해야겠지만 더 이상 어중간한 거리를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그런 방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최저가에 여러 도시를 방문하느라 온갖 숙소와 교통편의 예약 확인증으로 빽빽했던 파일의 대부분이 무사하게 지나가 있는 상태였다. 여행계획이 마지막 날에 완전히 달라지겠지만 이 시점에서는 아직 머나먼 미래이다.


도시 간 이동하는 날에는 (대체로 날씨의 징크스도 있었지만) 비교적 터미널과 가까운 곳에서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면서 마지막 이동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 번에 너무 많은 도시를 방문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해의 팬데믹과 모든 여행계획의 무한연기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점의 다짐이다.



우버를 타는 순간까지는 여느 출발하는 날처럼 초긴장상태였지만 버스터미널부터 휴스턴에 도착할 때까지의 기억은 전혀 없다. 과음하고 귀가한 날, 귀가 이후의 기억이 사라지듯 사라져 있었다. 다만 휴스턴의 터미널 근처에서는 트램을 타고 59번 도로로 이동해야 하는데 교통카드를 어디서 파는지 몰라 당황했던 기억은 있다.


그때 트램 정거장을 관리하고 있던 역무원 언니가 교통카드를 주셔서 그걸로 트램과 버스를 탔다는 기록이 남아있기에 가능한 기억이다. 지금의 여행기록은 여행 중의 시간대별 주요 사건을 적어둔 3년 전의 여행기록을 참고하는 중이다. 종종 체크인 시간이 헷갈려서 타임라인을 참고한다고 고백했듯이, 그때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나는 그날그날 커피를 몇 번 마셨는지 알 수가 없다.


앞으로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꼭 사진을 찍어두겠다고 다짐해보지만 특히 서울에서 특히 테이크아웃을 한다면 사진 촬영을 건너뛰는 날이 많을 것이고 이 습관은 여행 중에도 계속될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는 여행지에서 꼭 커피와 함께 예쁜 디저트를 주문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어쨌든 기록에 따르면 그 교통카드가 행운을 불렀는지 8시에 얼리체크인을 하고 여유로운 하루를 시작한 것 같다. 기억은 믿을 수 없지만 기록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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