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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워싱턴을 지나 애틀랜타

미국 버스여행과 스탑오버를 활용한 투어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이틀 연속으로 밤차를 타고 애틀랜타 다운타운에 도착했다. 뉴욕에서 워싱턴D.C를 거쳐, 뉴올리언스와 휴스턴을 돌아볼 예정이었다. 한번에 가는 것은 쉽다. 하지만 가는 길에 여러 곳을 들러보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나만의 로드트립을 하면서, 밤차로 이동하는 계획을 준비했다.


그 경로에 애틀랜타가 있었다. 조지아의 주도인 애틀랜타는 한국인의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고 했다. 미국드라마 <워킹데드> 초반부의 주요 배역들을 연결하는 역할이 한국계인 '글렌'이라는 캐릭터였던 것도 배경이 애틀랜타여서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틀랜타의 뷰포인트라고 하는 CNN이나 코카콜라 본사를 관광지라고 해야하나? 그냥 가면 멀리서 CNN이 보이긴 한다. 코카콜라는 한국에서 꽤나 눈에 띄는 목을 차지하는 기업이지만 굳이 찾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뉴욕의 초콜릿 가게들도 들어가지는 않았는 걸.



다운타운, 애틀랜타


애틀랜타의 목적지는 호텔이었다. 마이애미에서도 이런저런 호텔을 경험했지만 뉴욕에서는 쓸만한 호텔은 도심에서 멀거나 하룻밤에 한달치 월세를 바쳐야 하므로 욕실없는 도미토리를 알뜰하게 이용했다. 그리고 이틀동안 밤차로 이동과 숙박을 통합했으니 3박을 대신할만한 조금 괜찮은 호텔을 스스로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살사클럽과 쇼핑몰이 있는 북부지역을 고민하다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운 다운타운으로 확정했다. 도착 후 시내이동을 할 자신이 없어서. 아니, 그 수고를 아끼기 위해서.


뉴욕-워싱턴은 최대 4시간 거리인데 밤차 또는 막차라고 해야할 밤 12시 직전의 버스를 타면, 새벽 4시나 그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하게 된다. 트래픽잼이 불가능한 시간이라 지난 여행의 아침 버스보다 훨씬 금방 달려오는 느낌이었다. 그 시간에 도착해서 뭘 해야 할까? 중앙역 카페에서 3주 동안 밀렸던 여행 일기와 가계부를 썼다. 지출내역을 기록하는 앱이 있지만 도시별로 한눈에 보려고 수기로 다시 작성했다. 6시에 개시한다는 짐 보관소에 넉넉하게 다시 찾아갔지만 아무도 없어서 그대로 역을 떠났다.



국회의사당, 워싱턴D.C


국회의사당까지 한참을 이동해서 사진 촬영을 핑계로 다리를 쉬고, 또 미술관까지 캐리어를 동반한 산책을 했다. 아직 개장시간 전이었다. 미술관의 뒷문에서 분수 구경을 하다가 모기떼의 공격을 잔뜩 받아내고 다시 앞문에서 대기를 핑계로 쉬었다. 오픈런이라고 하기엔 사람이 없던, 평일의 워싱턴은 평화로웠다. 미술관에서 모든 짐을 맡아준 덕분에 마음이 가벼웠지만 야간개장을 하는 날이었다. 짐을 찾으러 오는 시간을 맞춰서 다른 곳에 다녀오는 것은 이 한가로운 스탑오버와 결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중앙역에 짐을 맡겼다 해도 마음이 불편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캐리어와 함께 조지타운까지 산책을 하고 너덜너덜해져서 저녁을 먹었다. 지하철을 타긴 했지만 가야할 구간의 반도 도와주질 않았다. 어느 지점부터는 걸어갔다가 걸어와야 했다. 마지막 에너지를 쥐어짜서 워싱턴 중앙역으로 돌아왔다.


이미 비슷한 산책을 전날도 했다. 워싱턴 징크스에 의해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뉴욕은 발이 익어서 괜한 불안함은 들지 않았다. 아직 더 이동할 정신력은 남아있었지만, 짐을 들고 무박 2일 동안 계속 이동하느라 인내심의 한계가 슬슬 다가왔다. 애틀란타행 버스에서 추가금을 내고 예약한 창가석을 옆자리 언니한테 뺏기고 화만 내고 되찾지도 속상했다. 나만큼 많은 짐을 캐리어 없이 들고다니는 그 분의 상황이 난처한 것은 이해하지만 그게 내 버스 안의 숙면을 방해할 줄이야. 억지로 이타적인 역할을 떠맡은데다 싸워서 이기지도 못했으니 나 역시 난처한 상황이었다. 대신 지금부터는 평화로운 일정이다.


긴 승차시간 동안의 휴식. 지금까지의 산책보다는 훨씬 편안했다. 직항을 타도 시카고나 뉴욕, 또는 애틀랜타를 가려면 인천에서부터 12시간 정도를 비행해야하는데, 워싱턴에서 애틀랜타를 버스로 이동하니까 그 정도 걸렸다. 미국에서도 버스로는 가장 길었던 구간이다. 물론 미국 밖에서도 그 이상을 육로로 이동해본 적은 없었다.



주크 조인트, 애틀랜타


국내선으로 가장 길었던 비행은 시카고에서 마이애미였는데, 이 구간이 인천에서 쿠알라룸푸르와 비슷한 거리다. 국제선으로 가장 길었던 비행은 인천에서 아디스아바바였고, 환승 후 빅토리아폴스에 도착했었다. 돌아오는 항공편은 요하네스버그, 도하, 홍콩에서 총 세번 환승해야 했다. 이 귀국의 여정이 무박 3일이었다. 뉴욕에서 애틀랜타까지가 무박 3일이니까, 아직은 괜찮았다. 애틀랜타에서 휴스턴까지는 1박 4일이지만 이제 연속 밤차는 없다. 뉴올리언스의 1박이 4일을 양분하는 정중앙에 있고, 휴스턴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시카고와 인천에 무사히 도착해야 한다는 작지않은 부담감은 계속 따라다니겠지만 애틀랜타까지만 가도 반은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애틀랜타행 버스를 탔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안도가 되는 중이니 말이다.


애틀랜타 도착 시간은 점심때였지만 얼리체크인을 그냥 해줘서 샤워를 하려고 짐을 풀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쉬려고 했지만 이미 점심보다는 저녁이 어울리는 시간이 되었다. 혼자하는 여행의 핵심이기도 한 혼술이 이제 편안했다. 고민 끝에 다운타운으로 결정한 호텔 근처의 'Juke Joint'라는 재즈 클럽에서 혼술을 했다. 금요일이었고, 공연은 좀 늦게 시작할 예정이라 튜닝만 보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주문했지만 '풀드포크'라는 생소한 요리와 사이드로 나온 '베이컨맛 와플'은 꿀맛이었다. 애틀랜타에 다시 가야할 이유가 생겼다.



올림픽공원, 애틀랜타


늘 헷갈리는 체크인 시간의 정확성을 위해 워싱턴에서 수기로 작성한 타임라인을 확인했다. 한때는 '주크 조인트'를 단독 포스팅을 하겠다는 포부가 있었지만 식당 리뷰는 너무도 어려운 미션이다. 음식은 물론 매장을 많지 촬영하지 못했고, 이렇게 손에 꼽는 맛있는 식사였어도 맛있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이제 밀린 잠을 자는 것만 남았다. 그 전에 브런치를 먹으려고 종종거리는 수고를 미리 아낄 수 있는 시스템을 발견했다. 방 안에 비치된 룸서비스 문고리를 사용해 조식을 주문해놓고 오래 그리워했던 침대로 파고들었다.


방 안에도 스타벅스 커피가 잔뜩 있고 방문을 열면 제빙기가 있는 '하얏트 리젠시'의 퀸룸이었기에 잠만 자도 행복했겠지만 배부른 체크아웃은 더 행복했다. 마이애미에서 석식을 놓치고 야식을 먹으려다 계획에 없던 밤 산책만 하고 드라이브 스루 전용매장에 못 들어가서 굶주린 호캉스를 했던 2주 전과는 아주 다르잖아? 배부른 체크아웃을 하고 근처에 있는 올림픽공원에 갔더니 얼굴에서 호캉스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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