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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왜 자꾸 가냐고 물으신다면

센트럴파크라는 진원지에서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이 여행의 목적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아직 가보지 못했으나 직접 경험하기로 결심한 곳이 많은데 굳이 아는 도시를 중심으로 크게 배회하는 여행을 계획한 이유는 뭘까? 첫 번째 뉴욕 한달살기가 너무 아쉬워서? 그것도 큰 이유이긴 하다.


하지만 첫 여행에서는 센트럴파크의 동서남북, 재방문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콜럼비아 대학교, 영업시간이라는 장벽이 생각보다 두터웠던 서점들을 줄기차게 다녔다. 무엇보다도 두번 다 뉴욕 사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에서 과연 이 보복여행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뉴욕 센트럴파크의 베데스다 분수


사진을 더 많이 찍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실제도 더 많이 찍지도 않았다. 스냅 촬영으로 '내가 나온 사진'의 한을 풀었지만, 그것은 여행을 전제로 기획한 일부였고 여행 자체의 목적은 아니었다. 유럽여행에 포함된 파리스냅으로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진은 중요하지만 결정적이지 않았다.


인증하는 여행에 목숨을 걸었다면, 뉴욕에서 숙소 이사를 하지 않았던 4일의 반을 미술관에서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미술관의 작품들은 여행 경로에서 따라오는 가성비 좋은 볼거리였지만, 그렇다고 내가 예술 취재를 간 것은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사후 취재를 하고 있을지라도 관람 당시에는 대부분의 그림을 모르고 봤다. 하긴, 뉴욕에서는 1일 1미술관이라는 작지않은, 그래서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있던 계획이 있긴 있었다.



뉴욕 센트럴파크 동쪽 출입구 근처


숙소 이사와 미술관에 스스로 고립되었던 날을 제외한 나머지 이틀 중 하루는 뉴욕스냅 덕분에 힘들고 알차게 보냈다. 마지막 하루는 고민없이 센트럴파크에 갔다. 마음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갔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항상 해가 지고 있었다. 브루클린에서도 이틀 연속으로 가을 하늘을 즐겼는데, 이제야 여길 올 수 있었다니.


뉴욕의 허파인 센트럴파크는 산림욕에 절대로 환장하지 않는 도시 여자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 맨해튼 미드타운에 도착하면, 이 곳이 쥐와 쥐색 건물과 더 더러운 존재들의 집합소인 것을 깨닫는데 3초도 걸리지 않는다. 이 삭막함에 빨리 적응하려면 공원에 가야한다. 메디슨 스퀘어 파크처럼 가까운 공원도 나름의 진정 효과가 있으나 제대로 힐링하려면 센트럴파크를 가야한다.


일부러 회색도시를 찾아가서 그 회색에 적응하려고 녹색공원을 또 찾아가는 경로는 병주고 약주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모든 맛을 보기 위한 단짠단짠인가? 나는 처음부터 맨해튼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센트럴파크를 사랑하다보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워싱턴 스퀘어 파크를 거쳐 뉴욕 전체로 그 사랑이 확장된 경우다.



보우 브릿지가 있는 호수에서 바라보는 시티뷰(포토존)


내 뉴욕여행의 목적은 그냥 내 두 번째 고향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진짜 뉴요커라고 할 수 있는 날이 오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뉴욕은 두 번째 고향이다. 서울 다음으로 생존할 자신이 있는 도시. 진짜 사람답게 살려면 마이애미로 가야겠지만 아직은 서울 다음으로 마음의 지도가 가장 촘촘한 곳이 뉴욕이다. 결론은 그냥이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고, 이유가 있어도 자세히 보면 콩깍지다. 사랑하니까 사랑한다가 되는 그런 말들.


날씨가 너무 좋았다(그리고 오늘도 그렇다)고 투덜대기엔 내가 가진 행복이 너무 컸다. 여행을 통해 자아를 발견할 수는 없다. 자아가 무슨 네잎클로버도 아니고, 어디 가서 찾는 그런 것이 아니지 않나.


그러나 여행을 떠나면, 예를 들어 마음의 고향인 뉴욕을 쓰윽 지나치기 위해서 이 참에 시카고 신상 건물도 구경하고 마이애미에서 태닝도 하겠다고 결심하면 내가 도시계획자 지망생을 계속 해도 될지 아닐지, 수영을 결국 해낼 수 있을지 아닐지, 이런 것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센트럴파크 보우 브릿지 앞에서


나는 놀러갔기 때문에 너무 학구적인 여행은 여행이 아니게 돼버린다. 그래서 가끔 유럽이 부담스럽다. 미국은 국제선 항공기와 심야버스를 퉁치면 교통비가 아까운 곳은 아니다. 대신 대도시에서 매일 먹고 자는 비용을 생각하면 하루종일 멍때리기를 하기도 좀 그렇다. 뉴욕이라면 미술관을 적어도 두 곳은 방문하고, 춤을 추고 마음껏 혼술을 하고 서점에 가고 산책을 해야지.


사실 이 중에서 시종일관 충실했던 것은 산책이다. 시내에선 크록스와 물아일체로 하루에 15km 정도 걸었지만, 이 여행을 위해 아치 운동화를 구입해서 체지방을 줄였다. 체지방 감소가 목표는 아니었고, 하체강화를 노렸던 것인데 증거를 확인하고 싶었다. 산책도 벼락치기가 가능하나구요?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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