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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밤

밤 산책, 피자리아, 터미널 투어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잠들지 않는 도시에는 잠들지 않는 특정한 구역이 있을 뿐이다. 여러 가지 색깔로 주요 지명과 범위를 표시한 맨해튼 지도를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거의 블록마다 자기들만의 컨셉이 있어서 판소리 하듯이 읊어댔던 로어 맨해튼은 색깔만 봐서는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차이나타운이 동쪽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앙이었나? 웨스트 빌리지는 그리니치보다 서쪽이라서 웨스트인가? 모든 디테일을 파악하려면 두 달 살기로는 모자랄 수밖에.


뉴욕에서 '밤'을 보낸 것은 두 여행을 더해도 30일이다. 그중에서도 8일 정도는 뉴저지에 있는 숙소로 복귀했다. 미국에 뉴욕만 있는 것도 아닌데 간 김에 들러야 할 곳이 좀 많은가. 국내선 항공기나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지 않았던 2016년에도 필수 시외 코스는 다 돌아보았다. 워싱턴 징크스를 물리치기 위해 워싱턴 쌀국수를 먹었고, 공유와 김고은이 퀘벡에서 단풍놀이를 할 때 혼자 하버드 대학교에서 단풍놀이를 했다. 월요일 오후, MIT와 다르게 하버드에는 사람이 없어서 쓸쓸했다. 북부로 올라갔더니 갑자기 추웠고, 서머타임이 아직 안 끝나서 해가 너무 빨리 졌다. 그러나 10월의 시카고와 비교해도 11월의 보스턴은 따뜻한 곳이었다. 오늘 아침의 최저기온은 서울과 시카고가 비슷하다.



핼러윈 무렵, 맨해튼 미드타운에서는 푸드마켓이 열린다


뉴욕에서 해질 무렵부터 밤이 깊을 때까지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은 미드타운이다. 살사 클럽에 처음 갔던 날은 웨스트 빌리지 끝자락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가 최종 목적지였다. 근처에 하이라인 계단이 있었고 휘트니 미술관도 있었지만 춤이 목적인 날이라 너무 늦게 왔고 세포라에 들러 하이라인에 올라갔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클러빙 후에는 새벽 1시쯤 나왔고, 바로 미드타운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빌리지 콤보인 그 동네는 이미 잠들어있었다.


여태 춤을 추다가 폭풍 산책을 할 수는 없으니 뉴욕대 NYU 존으로 살짝 우회해서 잠시 발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마침 달밤 체조를 나온 한국인 유학생들의 수다도 듣게 되었다. 뉴욕이나 보스턴, 필라델피아에서는 한국어가 많이 들리는 편이다. (자나 깨나 말조심) 어쩐지 들키고 싶지 않아서 최소한의 쉬는 시간만 가지고 다시 이동했다.


그리니치 빌리지가 끝나고 미드타운이 시작되는 교차로에서 갑자기 사방이 밝아졌다. 잠들지 않는 구역에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그날은 아직 뉴욕 초보라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내 눈에 가장 아름다워 보였던 장면은 24시간 피자리아였다.


*Meatpacking District: 축산물 시장이 있던 구역

아직 초저녁이고, 쉑쉑이 영업 중인 미드타운 웨스트


서울에서도 피자는 24시간 먹을 수 있는 메뉴였고 웬만한 부도심에는 24시간 패스트푸드 매장이 있지만, 결정적으로 조각피자를 파는 곳이 귀했다. 뉴욕 핼러윈 퍼레이드의 다음 해인 2017년에 특히 이태원을 자주 갔는데, 조각피자나 핼러윈 코스튬을 볼 수 있는 곳이라서 한동안 거의 모든 약속을 이태원으로 추진했었다.


미드타운의 반짝이는 불빛들은 심리적 안정을 주었다. 홍대와 동대문이 그렇듯이, 잠들지 않는 타인들의 존재는 잠들지 않는 행위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함을 해소한다. 집에서라면, 혼자 살더라도 이웃들이 잠들어야 집중력이 제 기능을 하는데 밖에서는 혼자 깨어있고 싶지 않으니까. 보다 정확히는 세상 모두가 잠든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깨어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이 낫다. 소리를 지르면 들을 귀가 많은 그런 공간.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중앙 홀


그런 공간은 미드타운에 모여있는 터미널이다. 펜스테이션은 24시간 열려있고 포트 오소리티는 반만 새벽 1시,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새벽 2시에 닫는다.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에서 현지인처럼 아침 산책을 했던 2019년 9월의 마지막 토요일에는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근처의 숙소로 이사를 했다.


프레타망제에서 가볍게 샐러드를 먹고 터미널에 있는 자판기에서 뉴헤이븐 가는 티켓을 발권하는 연습을 했다. 다음 날이 일요일이니까, 월요일쯤 가볼까. 월요일에는 기차에 자리가 없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한참 동안 하다가 전망대 <더 뷰>로 향했다.


결국 기차를 타지 않았다. 일요일에는 이사할 걱정 없이 맨해튼을 쏘다닐 수 있는데,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센트럴파크와 워싱턴 스퀘어 파크를 거쳐 월스트리트와 시청을 구경했고 캐리어를 사러 미드타운에 돌아와 아는 빠네라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전망대 <더 뷰>에서 내려다 본 타임스퀘어


월요일에는 체크아웃을 하고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근처에서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당일치기 기차여행을 떠나기엔 좀 늦어서 미드타운 서쪽에 있는 뉴욕 타임스 앞 포트 오소리티로 이동했다.


마지막 숙소는 링컨 터널로 허드슨 강만 건너면 나오는 뉴저지 유니언 시티에 있는 아는 호스텔. 우리 방은 4인실을 둘이 썼는데 룸메이트의 자는 모습만 본 듯하다. 우선 짐만 맡기고 우버를 탔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야지.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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