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아기호랑이를 키우는 방법
꿈은 계속 바뀌었지만 언제나 목표지향적으로 살고자 했다. 세상을 바꾼 사람들, 위대한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거나 그 사람들이 쓴 책을 읽거나 그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거의 동시에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가 대단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단하든 그렇지 않든 그 이야기 속의 누군가에게 깊이 몰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찰의 대상과 관찰자 모두에게 가능한 가까이 가보고 싶었다. 누군가가 이런 삶을 살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겠지. 읽은 책과 본 영화가 많아질수록 그렇게 세상은 손에 잡힐 것 같은 곳이 되었다.
호랑이를 그리려고 해야, 고양이라도 그릴 수 있다. 어디선가 본 이 문장이 목표지향적인 계획덕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수험생일 때 내가 실제로 의지했던 거의 유일한 진리였고, 그 마인드에 올인하는 전략은 성공했다. 적어도 '아기호랑이'는 그렸다.
맹신하기에는 이르지만, 효과는 있었다. 그래, 일단 꿈은 크게 꾸자. 살다 보니 모든 것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떤 것이 되고 나면 다른 것을 절제해야 하는 사회생활의 법칙에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느꼈던 시절을 지나 현실적인 한계를 새롭게 정의했다. 단 하나의 코어로 모든 것이 결집되는 삶이 아니라면, 다른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
책으로 세계여행을 꿈꾸던 시절을 지나 여행을 비현실적인 사치로 인식하던 시절이 왔다. 현실에 적응하려고 나를 깎고 애를 써봐도 'over-qualified'에서 'over-'를 떼어내기 힘들었고 개성을 감추려고 할수록 '부적응자'의 아이덴티티만 돋보였다. (한편 1999년에 처음 이메일을 만들기 위해 가입했던 포털 사이트의 ID가 swover였는데, 지금도 거의 모든 ID와 이메일 주소는 swover 또는 swover02로 시작한다.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한 그때의 'over'앞의 sw는 20세기에 사용한 본명의 이니셜이다.) 잘난 척을 참으면서까지 모자라고 이상한 사람이 될 바에야, 헤르미온느가 되어야지. 저는 잘난 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잘난 거예요.
조직생활용 사회적 가면보다는 스스로의 정신건강과 언행일치를 우선하기로 마음을 고쳐먹는 동안 물리적인 세계가 좁아진 것도 깨달았다. 성장 후,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에 가보면 정말 손바닥만 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한국은 문화적으로도 너무 좁고, 타인에게는 사다리를 잘 탈 것처럼 보이는 내 능력도 바른말 못 참는 성격과 만나면 치명적인 약점이 될 뿐이었다. 대접을 받고 싶으면 '매출'로 증명을 하던지, 아니면 찌그러져 있어야 했다. 회사로부터 독립을 해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적어도 뒤통수를 째려보는 상사는 없어야 능력과 매출, 수입이라는 관계가 덜 불편할 것 같았다.
해외에 나가면 인종이라는 장벽이 추가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 실패한 대기업 취직을 하려고 해외진출을 시도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외국계 기업에 탈락하고 나서 취업의 전의를 상실했기에 배고픈 예술계로 도피했었다. 그때는 영어가 약점이었지만 그 또한 좁은 물에서 느꼈던 판단의 착오였다.
첫 여행은 미국 유학이라는 목표를 가져도 될지 탐색하는 과정이었다. 친구 핑계로 미국에 가서 홀로 남았다. 나도 랭처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여자들처럼 소름 돋는 쓸쓸함을 발하고 있었을 것이다. 뉴욕의 고독한 산책으로 타임슬립을 하는 동안 올리비아 랭의 <고독한 도시>와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들>을 읽으면서 마음의 지도에 이정표를 세웠다. 그런데 '나 올리비아 랭이 너무 좋아!'라는 말을 할 수 있는 현실 친구가 얼마나 있을까? 이 질문을 하는 순간 삶이 모래성으로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정말 소중하지만 물리적, 심리적으로 너무 멀리 있다.
관계에 대한 정성이 부족했다. 이해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이해받을 거라 믿었던 관계가 실패를 거듭하면서 공허해진 사랑. 뉴욕은 이행대상이었을까? 아니다. 뉴욕은 아기호랑이다. 유학이라는 호랑이를 끝내 완성하지 못한대도, 제2의 고향으로 남을 나의 아기호랑이. 이 그림은 수능이 아니므로 데드라인이 없다. 망칠 가능성을 떠안고도 거침없이 선을 긋고 덧칠하면 된다. 그것이 호랑이를 그리는 방법이다. (뉴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