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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가긴 갔는데, 혼술 핫플일세

스탑오버 36시간, 다시 밤차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호캉스는 끝나지 않았다. 뉴욕의 마지막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무박 3일 만에 워싱턴을 거쳐 애틀랜타에 도착했다.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을 통합한 가벼운 반주를 하고 밀린 잠을 청했다. 예정에는 없던 룸서비스를 충동구매한 덕분에 배부른 체크아웃을 했다. 로드트립 4일차인 애틀랜타 2일차는 발길이 닿는대로 도시를 산책하고 12시간 뒤에 짐을 찾으러 호텔로 돌아오기만하면 된다.


이 호캉스 덕분에 지난 3일 간의 피로를 털고 광나는 인생 셀피를 얻었지만 올림픽공원 이후의 일정이 엄청나게 여유롭지는 않았다. 긴 버스여행 후, 버스정류소 근처의 호텔에서 멀리 벗어나자니 조금 불안한 1박 2일의 스탑오버에서 마지막 12시간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그저 돌아다니기엔 길고, 계획적으로 무언가를 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조지아 주정부 앞 교차로의 팝아트 다용도함


숙소 없는 스탑오버로 거의 20시간을 보냈던 워싱턴보다는 상당히 호사스러운 호캉스였지만, 이곳은 완전히 첫 방문인만큼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떠나는 날이라서 작고 확실한 목적지를 정해두기보다는 적당히 두리번거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애틀랜타 시청과 조지아 주정부가 붙어있으니 지나가는 척 구경해보기로 했다. 토요일이라 텅 비어버린 다운타운은 썰렁하고 디스토피아적으로 무서웠다. 이 구역의 대표 건물과 그 앞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팝아트가 그려진 다용도함(Utility Box)의 사진을 찍고, 교통카드를 구입해서 북부로 이동했다.


업타운의 레녹스 몰까지 이동했는데, 거기서 또 번화가를 가려면 1킬로미터 이상을 걷거나 우버를 타야했다. 과연 그렇게까지 갈만한 곳이긴 할까? 도시형 산책덕후의 참새방앗간인 쇼핑몰에서 답정너같은 고민을 하며 빙글빙글 돌았다. 레녹스 몰은 전형적인 아메리칸 쇼핑몰이었다.


바쁜 뉴욕에서도 시간을 쪼개 '블루밍데일'이라는 백화점과 뉴저지에 있는 '뉴포트 몰'을 다녀왔었다. 뉴욕을 떠나던 날 저녁에는 비가 오니까 이미 아는 맛인 '허드슨 야드' 쇼핑몰을 빙글빙글 돌았다. '레녹스 몰'에서 멍때리던 이때만 해도 쇼핑몰을 그렇게 자주 가게될 줄은 몰랐다.



조지아 스테이트 바


이미 뉴욕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메이시스'와 첫 여행 이후에 <가십걸>을 통해 알게 된 '블루밍데일', 그리고 '허드슨 야드'에서 새로 알게된 '니먼 마커스'라는 백화점이 레녹스 몰에 입점해 있었다. 애틀랜타에는 뭐든 한 곳에 모여있는 것 같다. 주거구역이라고 할만한 곳까지는 파고들지 못해서, 그 많다는 한국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레녹스몰 푸드코트에서는 시식을 유도하는 식당들이 있었다. 허드슨 야드 시타렐라에서도 밀고 있는 한식에 가까운 닭강정과 환타를 먹어봤다. 어수선한 가족친화적 분위기였다. 미국 드라마의 고전인 <길모어 걸스>의 길모어 삼대인 에밀리, 로렐라이, 로리가 쇼핑몰에서 만나는 에피소드의 분위기였다. 커피는 호텔에서 질리도록 마셨으니 티타임에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갔다. 하체의 휴식시간을 갖고 다시 빙글빙글 돌았는데, 공공구역에 전시된 추상화 이외에는 볼거리가 없었다.


너무 늦기 전에 다운타운으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짐을 찾고 늦지 않게 밤차가 떠나는 곳으로 이동해야하니 무엇을 할 지 고민이 든다면 돌아오는 것이 답니다. 이 곳은 그냥 경유지로만 남아야했다.뉴욕에서 멀어질수록 조심성이 늘고 열정은 식었다.


제한시간이 있는 여행은 역시 재미가 덜 해, 라는 생각과 함께, 뉴욕과 마이애미에서 1주일 이상 머무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했나?) 아쉽게도 이번 <무한대 미국일주>에서 탈락한 올랜도는 다음을 기약하자. 애틀란타의 숙소를 버스정류소와 가까운 곳으로 잡기를 잘 했다는 생각도 했다. (했지.)



호텔 바에서 혼술하는 척, 혼밥하기


호텔로 돌아왔으니, 짐을 맡겨둔 보관소가 훤히 보이는 오픈바에서 다시 한번 가볍게 반주를 하며 호캉스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하체가 이미 지쳐서 앉기 위해 자꾸 뭘 먹으려고 했을 뿐, 먹는 행위에 지대한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바텐더는 '이 술 독한데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음료가 들어간 칵테일이 아닌, 술과 술이 만난 칵테일이어도 그 중에서 가장 독한 술보다 더 독할 수는 없지 않나?


들은 이야기는 내용만 기억나고, 내가 한 말은 내용도 헷갈린다. 지금이라면 'I'm a grown woman.'이라고 말하며 씩 웃어줄텐데. 좀 더 어렸던 2016년에는 마이너(음주가 불법인 21세 미만 미성년자)라는 오해를 받았다. 미국 초보이기도 했고 동양인은 실제보다 15살 정도 어리게 보는 것이 일종의 관례이다보니 종종 '민증 검사'를 당했었다. 미국이 훨씬 편해진 2019년에는 이미 혼술이 일상이었고 그런 아우라를 모두가 느꼈던 것 같다. 형식적으로 모두의 ID를 검사하는 클럽말고는 거의 패스했다.


술 맛은 거의 언더락 원액에 가까웠던 느낌이고, 버스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천천히 마셨음에도 살살 더워지는 정도의 독주이긴 했다. 하지만 네 번의 밤차 중 세번째를 타는 동안 짧고 깊은 잠을 자려던 시도는 실패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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