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작 미드 <루머의 루머의 루머>
제이 아셰르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드라마 <13 Reasons Why>는 직역하면 (내가 죽게 된) '열세 가지 이유'다. 2007년에 출간된 원서가 2009년에 <루머의 루머의 루머>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고, 그에 따라 드라마의 한국어 제목도 <루머의 루머의 루머(2017-2020)>가 되었다.
전학생 해나의 부적절해 보이는 사진이 유포되고 그녀는 학교를 주름잡고 있던 운동부 남학생들에 의해 캣콜링과 루머의 타깃이 된다. 처음 친했던 친구들이 연달아 배신하고 불특정 다수를 스토킹하는 타일러가 찍은 또 다른 사진이 유포된다. 권력과 루머를 잊을 수 있게 해주는 클레이를 만나서 잠시 행복했지만 친구였던 제시카의 사건을 목격하고 의도치 않게 클레이와 거리를 두면서 해나 본인에게도 같은 가해자에 의한 제2의 사건이 발생하고 상담교사는 적절치 못한 대응을 한다.
사진 유포와 친구였던 관계 속 오해에서 비롯된 루머로 죽이기, 까지는 <가십걸> 스타일의 못된 아이들 이야기일 것 같지만 해나는 은유적으로 죽는 게 아니라, 실제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나를 죽였다'라고 폭로하는 13 챕터의 음성 일기를 남겼다. 이 테이프를 받은 자, 무사하지 못하리.
그중 착한 클레이는 해나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테이프를 통해 뒷이야기를 알게 된 이상 추적을 멈출 수 없다. 그는 이 구역의 탐정과 내레이터를 맡게 된다. 드라마는 2017년에 시즌 1이 공개되었으나 인기에 힘입어 다소 산만한 스토리로 시즌 4까지 제작되었다. 이어진 시리즈는 시즌 1과 달리 혹평을 받았다. 원작과의 시간 차에 의해 <Sex Education>, 한국어 제목은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2019-)>라는 최근의 드라마처럼 퀴어 청소년들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등장하는데 처음 이 작품, 특히 원작이 의도했던 메시지는 성 정체성보다는 정신적, 성적 괴롭힘과 따돌림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었다.
클레이가 작은 가해자들을 모아서 큰 가해자를 고발하는 증거로 삼는 동안, 살아남은 피해자인 제시카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 못돼 먹은 남성중심적인 소도시의 운동선수들에게 지지 않기로 결심하고 치어리더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거듭나는 과정은 해나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했다.
작품 내부에 몰입하면 너무 고통스럽지만 해나의 고통은 이미 가고 없는 해나가 죽기 직전에 회상한 장면이라는 것이 범퍼 역할을 한다. 해나가 죽은 후에 클레이가 추적을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다른 피해자인 제시카가 살아남아 복수하는 것만이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브라이스는 이후의 시즌에서 다양하게 응징되지만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 시점에서는 브라이스도 이전의 브라이스가 아닌 갱생된 버전으로 설정되었고, 이와 같은 무리수에 의해 뒷 시즌들이 혹평을 받았다. 현실적으로 법정에서 그의 죄목이 인정되고 그가 벌을 받는 결과는 상징적인 해결일 뿐 죽은 해나를 되돌릴 수도 없고 제시카의 악몽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래서 오히려 제시카의 날뛰는 심장이 알렉스와 저스틴을 괴롭히더라도, 이들이 차분히 그녀를 보듬을 수 있는지 이기적으로 구는지 등 실질적인 치유의 포인트가 중요했다. 가고 없는 해나 대신, 제시카에게 감정이입을 한다면 제시카가 얼마나 건강하게 재기를 하는지에 작품의 만족도가 달려있었다.
직접적인 사건 이전의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이 피해자인 해나가 갈 곳이 없게 했다. 그런데 그들이, 해나를 죽게 내버려 둔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몬티를 따돌리는 시나리오가 성공할 리가 없다.
심지어 그를 타깃으로 삼은 대가는 그에게도 사연과 억울함이 있다는 관점을 동반한다. 물론 그가 절대악도 아니고, 그의 사연을 묵살할 필요는 없지만 단지 시즌을 이어가기 위해 따돌림을 후회하던 아이들이 타깃만 나쁜 놈으로 바꿔서 따돌림을 계속하는데 따돌려진 아이가 나쁘기만 한 놈은 아니라는 스토리는 전혀 해나를 추모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스토리를 따라가는 동안에는 해나에 대한 답답함과 몬티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작품의 주제의식이 인기에 잠식되었다는 결론을 내려보니, 이 시리즈에는 용두사미라는 말도 과찬이다.
시즌 1 한정으로, 2차 가해와 주변 인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서 수려한 외모와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젊은 배우들이 활약해 주어서 다행이다. 시즌 1의 완성도와 그에 따른 인지도, 추가 시즌에 실망할 정도로 눈이 높아진 관객들의 존재가 넷플릭스로 인해 가능해진 희망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