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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Mar 29. 2023

인생책을 쓰게 한 건 드라마였다

미드 <핸드메이즈 테일>과 애트우드의 <증언들>

드라마의 원작인 <시녀이야기> 영어판을 읽고 한참 어리둥절했다. 때마침 왓챠에서 <매드맨>을 보다가 엘리자베스 모스를 비롯한 배우들에게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매드맨>을 따로 리뷰하지 않았지만 <매드맨>의 출연진은 이 시리즈의 <위기의 주부들> 편 마지막 부분을 참고하면 된다.


매드맨, 이라는 용어는 매디슨 애비뉴의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를 상징하는 말인데, 어감이 '매디슨 애비뉴의 미친X'라서 묘하게 <가십걸>이 떠오른다. 엘리자베스 모스는 매디슨 애비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의 비서로 등장해 이 구역을 접수하는 최초의 여성 카피라이터 '페기 올슨' 역을 맡았고, 단지 그녀가 존재함으로써 60년대 맨해튼의 공기가 바뀌는 현상을 눈앞에 가져다준다.


배우에 대한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초독이 영 찜찜했던 <시녀이야기> 드라마 버전을 열었다. 지금도 왓챠에서 <핸드메이즈 테일>의 시즌 1-2를 볼 수 있지만, 이후의 시즌은 웨이브에서 봐야 한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를 비동거 가족 계정으로 고정해두고 있는데 뒷조사를 하려다 실수로 왓챠를 결제했다. 볼 작품은 많지만 의욕이 없어서 달리 재주행을 하진 않았고, 웨이브를 통해 뒷부분까지 한 번에 달릴 기회를 엿보고 있다. (넷플릭스가 비동거인 계정 공유를 제한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렇게 되면 내가 결제하는 디즈니만 볼 수 있으니,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웨이브 등 다른 플랫폼을 체험할 예정이다.) 일단 아직은, 종영을 하지 않았다.




드라마 제작진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를 바탕으로 시즌 1-3을 제작했다. 자세한 뒷조사는 영어로 해야 해서 정보가 충분하거나 확실하지 않지만, 애트우드 본인이 드라마 작업에 참여했거나 적어도 상황 공유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깨가 좁고 키가 큰 오른쪽 시녀가 알렉시스 브레델


주연 배우 겸 제작진인 엘리자베스 모스를 포함한 현장 스태프와 저자 마거릿 애트우드가 함께 촬영한 사진도 있다. 제작진(그러니까, 아마도 엘리자베스 모스)의 요청으로 <시녀이야기>의 후속작인 <증언들>이 34년 만에 출간되었다. 이미 <시녀이야기>로 부커상 외 북미에서 알아주는 상을 휩쓸었던 애트우드는 <증언들>로 부커상을 또 받았다.


드라마를 시즌 2까지 보고 너무도 간질간질해서 어느 틈에 사두었던 <증언들> 원서를 읽었다. 당시에 읽던 영어책들이 다 조금씩 고구마여서 처음엔 진도가 안 나갔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읽기 전이었고, 병행 독서 중이었던 고품격 에세이스트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영어판은 매운맛 5단계 마라탕이라 여전히 애트우드를 생각하면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증언들>이 위로가 됐다. 드라마 시즌 3는 책 집필과 같은 시기에 제작됐으므로 평행우주라고 치고, 시즌 2에서 전개된 복선으로 <증언들>이라는 원작 아닌 원작이 상황을 이어가야 했다. 어쩌면 애트우드가 참여한 필진이 시즌 3-4를 써둔 상태에서 <증언들>을 집필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걸 한글로 조사해도 복잡한데, 영어로 조사하려면 상당한 정신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어지간히 궁금하지 않으면 추론으로 대체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꽤 많은 것을 뒷조사한 덕분에 책과 드라마 이야기는 천일 밤낮을 떠들 수 있다.




그렇게 탄생한 <증언들>의 킬링포인트는 서로 다르게 전개되는 세 사람의 시점이 돌아가면서 서술되다가 점점 모여드는 느낌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각 챕터의 속표지에는 각 시점에 해당하는 주인공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그려져 있다. 그렇게 길리어드의 베일이 벗겨지고...



국가가 자궁을 통제하려 드는 현실을 날것 그대로 반영한 작품


드라마의 시즌 4부터 두 번째 책 출간 이후다. 여기에 코로나로 인한 약 1년 간의 딜레이가 발생하여 현재 시즌 5까지 발표됐다. 아직 공개일이 미정인 시즌 6는 <증언들>의 내용이 반영된다고 한다.


직접 보진 않았으나 시놉시스에 의하면 준의 모험이 이어지는 시즌 4-5는 <증언들>의 시점까지 오지 못했다. 앞 시즌에 이어지는 평행우주 또는 그 사이의 이야기라고 봐야 할 듯하다. 드라마 덕분에, <증언들>을 읽게 되었고 그렇게 인생 작가가 될 마거릿 애트우드를 재발견했다. 미리 사두었던 부커상 공동수상작인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원서까지 읽어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탁월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열두 명의 아프리칸 브리티쉬 여성 및 퀴어를 대변한 흑인 여성 작가 버나딘 에바리스토에게 몰아주지 않고, 이미 34년 전에 이 문제작 <시녀이야기>로 부커상을 수상했던 월드스타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같은 시리즈의 후속작으로 같은 상을 수여한 이유가 있겠지?




애트우드의 명작이 매스미디어와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작품성과 인지도를 동시에 확보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부수적이다. 애트우드의 팬들은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자체가 호락호락하지 않음에도, 올더스 헉슬리나 조지 오웰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책으로 권하고 싶다. (냉정하게 말해 이미   가까이 경전으로 받들리는 남성 작가들의 책을 우리-브런치 인구통계상  생태계의 다수인 40 여성, 나잖아? -까지  읽어야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애트우드의 해설이 포함된 올더스 헉슬리까지는 읽었고, 내가 존경하는 장강명의 인생작가라서 조지  읽는 중이다.) 한국에서 실패한 디스토피아계의 블록버스터 <헝거게임> 들어본 사람이라면, 한국 대표 영화인들이 <설국열차> 앞다투어 탑승한 이유가 진심으로 궁금한 사람이라면.



우리 시대의 여성들인 엘리자베스 모스와 알렉시스 브레델


그렇다면 <시녀이야기>와 <증언들>의 원작과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의 시즌 1-2까지는 꼭 접수하기 바란다. (이 작품만 보려거든 웨이브에 시즌 6가 올라오기를 기다려도 되지만 엘리자베스 모스의 다른 작품과 산드라 오 등을 더 볼 수 있는 왓챠에서 앞부분만 후딱 보는 것도 괜찮다.) 물론 <길모어 걸스>의 로리 길모어 역을 맡았던 알렉시스 브레델의 최근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로리 길모어보다 실제로는 3년 연상인 알렉시스 브레델은 그 시절 천사같이 통통한(chubby) 공주님이 더 이상 아니게 됐지만, 멋지게 탈피했다. 그녀의 대표작인 <길모어 걸스>의 리부트에서 망가진 밀레니얼이 된 로리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면 <핸드메이즈 테일>에서 고통받는 그녀를 보고 속상할 수 있음주의. 이곳에서는 모든 여성이 고통받는다.




<핸드메이즈 테일> 시즌 3 이후로 엘리자베스 모스의 분량이 많아졌다고 느끼는 시청자도 있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어떤 시청자들은 본인의 성별을 떠나 특정 여성이 자주 출연하는 것에 반감을 가진다. 꼰대 남성들이 그러는 것도 화가 나지만, 가장 최악인 경우는 동성을 혐오하는 꼰대 여성들.


여성이라서 꼰대질도 더 욕을 먹는 다고? 그건 아니다. 왜냐면 그런 여성들은 꼰대의 세계에서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온 것이고 심지어 여성혐오, 그리고 자기혐오를 통해 명예남성이 되는 경우도 있다. 열심히 살아서 성공한 여성들이 마치 명예남성이 되어서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도 경계해야 한다. (물론 본인이 '진보적'인 '페미니스트'라고 착각하는 '남성'이 각성을 못한 여성을 함부로 재단하면 안된다. 미국과 같은 다문화 사회에서는 '백인 여성'이라는 어쨌든 지배계급의 속성을 일부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용가능한 어휘에 제한이 있다. 예를 들면 '각성'이란 단어. 자세한 내용은 미드 <볼드 타입> 전편을 참고)




우리는 순간순간 '그런' 사람이 빙의하는 경험들을 하는데, 자각하지 못하면 바로 '그런' 사람이 된다. 여성을 혐오하는 여성. (내부의 적: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참고) 여성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남성과 싸우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찐친 다섯 명이 '그런' 사람이 아닌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달라진다. 그건 곧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이기에. 내가 아니라고 우겨도 주변에 '그런' 사람밖에 없다면 충분히 물들수도 있다. 혹은 '그런'척을 하게 된다. 끊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면.


그러나 끊어야 한다.


같은 작품에 공감하는 동지를 찾고자 한글로 작성된 리뷰를 읽다 보면 오히려 열받는 부작용이 있다. 그래서 이 시리즈(미드편, 미국 문화 비교)의 시즌 1이 곧 끝나지만, 미드 리뷰는 네버엔딩이다. 헐리우드 알파걸의 탄생이 두려운가? 그렇다면 나는 엘리자베스 모스를 지지할 수밖에.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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