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야경, 재즈
시카고 미술관에서 발견한 그림들은 따로 분류해서 사후 취재를 하고 있다. <무한대 미국일주>는 무한 산책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세심하게 설계한 동선에 따라 건축, 미술, 음악 등 다양하게 구성된 볼거리로 가득한 세미 그랜드 투어이기도 했다. 산책편은 야외활동과 라이프 스타일로의 여행에 포커싱을 하겠지만, 이 여행의 참 목적이 드러나는 곳은 예술편이 될 예정이다. 사후 취재가 시작되기 전, 신축건물로 확장이전한 공간에 비해 보유한 작품 수가 적었던 플로리다 '노튼 미술관'을 단일 포스팅으로 블로그에 작성해봤다. 하지만 이번 산책편은 노튼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성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작가별로 포스팅하고 있는 미국 미술관 다시보기는 2023년을 기점으로 아마추어 작가론, 내한 전시와 통합되었다.
예술편은 작가의 유명세보다 해당 미술관에서 강조하는 작품, 유럽 중심의 미술사에서는 사각지대에 있는 미국의 국민 작가들로 구성하려고 했다. 물론 미국에도 인상파 작품은 넘쳐 흐르고 특히 뉴욕에는 부자들이 기증한 배르메르나 앵그르가 가득하기에 흐름에 맞게 편집할 것이다. 미국 대표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나 존 싱어 사전트의 <마담 X>처럼 산책편에서도 보여주고 싶은 그림은 미리보기 모드로 소개하고 있다. 미술콘텐츠가 가끔 지루해질 때도 있고, 산더미 같은 그림 사진을 정리할 생각은 늘 까마득하기만 하다. 그 뿐인가. 이제는 리스트에 있는 화가의 거의 모든 작품을 빠르게 훑어볼 수 있는 위키아트(wikiart.org) 덕분에 그림 데이터가 훨씬 더 늘어났다. 그래도 계속하고 싶다. 결국 미술사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이야기다.
물론 문학사, 과학사도 해야 한다. 실컷 잘난 척했는데 헛소리면 곤란하기도 하지만, 학문적 언어가 재미없다고 해서 학문이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영어의 코어를 충분히 갖추고 칼 세이건이나 제인 오스틴의 원서를 읽어보면 전혀 딱딱하지 않고 술술 넘어간다. 그런 점에서 빌 브라이슨처럼 지식덕후인, 언어의 마술사에게도 감사하다. 최근에 브라이슨의 자문화 중심주의를 지적하는 글을 봐서 불편하지만 더 궁금해졌다.
그냥 반대 의견일 뿐이고 해당 책을 읽으면 나도 그 리뷰어에게 공감할지 모르는데, 어쩌다 보니 지리적으로는 미국덕후, 외국어적으로는 영어덕후라서 그의 대표작인 <나를 부르는 숲> 한 권을 원서로 읽었을 뿐인데 빌 브라이슨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거 아니냐고 자문해본다. 다른 맥락으로는 책 한 권, 심지어 한 권의 서문만 읽고 저자를 극찬하는 나의 어리석음에도 호기심을 보여주시는 독서 친구분들께 빚을 진 느낌이다. 부디 이 저자들이 내 덕질에 부응하시길 바랄 수밖에. 앞으로는 그저 내 취향일 뿐이라고 더욱 강조해야겠다. 특히 여행과 언어에 대한 모든 담론에서 자문화 중심주의는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나는 인스타그램 본계정을 '한복여행' 계정으로 시작했다.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패션 인플루언서의 느낌으로 한복을 입고 '뉴욕'에 가는 것이 목표였다. 나는 한국덕후인가, 미국덕후인가?
둘 다이다. 영어가 열어준 고생길이 가장 큰 고비를 넘겼던 최근에는 세종대왕과 한글 창제 팀에게 특히 감사하다. 하지만 그들의 기여를 악용하는 현대인들이 안타깝다. 문자가 쉬우니까 말을 막 하고, 인터넷이 잘 되니까 그걸로 글까지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영어문화권에서는 전체 인구 대비 읽고 쓰는 인구가 적다. 그러나 그 인구조차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읽고 쓰는 사람들만의 경쟁도 치열하고 결과적으로 문자언어의 수준이 높다.
읽고 쓰는 행위가 계급을 가르지 않는 나라여서 한국이 좋지만, 너무도 보편적 문자언어가 개싸움을 일으키는 한편 경직된 사고를 당연시하는 나라여서 한국이 싫다. 멜팅 팟(melting pot: 다문화가 함께 녹아들고 있는 냄비에 비유한 사회현상)이라서 미국이 좋지만, 결과적으로 멜팅이 덜 돼서 안으로는 곪아가는데 겉만 번드르르한 미국이 싫다.
트럼프 정권은 처음이기도 했고 우선 시카고가 처음이라, 환영받지 못하고 있던 추석 다음 날. 숙소에도 한국인들이 있었고 미술관에도 한국인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한국인들의 시선에서 해방되어 혼자 놀고 싶었던 뉴욕이라면 질겁했겠지. 시카고는 적응중이기도 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처지라 아직 반가웠다. 미술관 앞에서 만난 행운의 그녀도 한국인. 아주아주 약간의 미술 상식을 공유하고 너무 큰 선물을 받았다. 단기 여행 코스를 단단하게 준비해온 그녀가 다음 일정의 동행을 허락해서 계획이 부실한 나는 망아지처럼 신나게 따라갔다.
예술 여행을 다녀와서 미술사를 털고 있지만 전공은 역사와 상극인 첨단(cutting-edge)분야, 바이오 테크놀로지와 패션이다. 방대한 역사를 기억할 자신이 없어서 새로 등장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일까? 결과적으로 트렌드는 트렌드대로 열심히 둘러보면서 미술사, 문학사는 물론이고 과학사와 패션사까지 두루두루 털고 있다. 짝사랑에 가까웠던 과학과는 다르게 예술과 스토리의 조합은 지적 호기심과 학점을 모두 만족시켰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예술이나 문학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거의 모든 교양수업을 이수해야만 했다.
그 시절에 알게 된 것들이 지금 보면 정말 부스러기 같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홍대 앞 미술 전문 서점을 드나들던 버릇에 뉴욕에서는 리졸리 서점에 열광할 수 있었고 당연히(?)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도 다녀왔다. 춤 때문에 미대 앞에 살던 사극덕후 시절에는 동양학과 재입학을 고려했었다. 뉴욕, 보스턴을 다녀온 2016년 이후로 현재와 근미래까지도 건축학과 지망생인 한편, 외국어로 유명한 학교들에 둘러싸여있다보니 때때로 불문과에 흥미가 생긴다.
행운의 여신을 만난 이 날은 미술관과 뮤지엄 샵을 제하고도 시카고의 세렌디피티 3종 세트가 완성된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것보다 더 간결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모르겠다. 한국에도 이미 오래전에 수입된 프랑스어 '데자뷔 déjà vu'는 기시감이라고 번역이 되지만 serendipity는 그렇지 않다.
나만의 계획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세 가지 세렌디피티. 시카고 리버노스에 있는 RH 인테리어 갤러리의 별관인 <The Three Arts Club>이라는 아름다운 브런치 카페, 도심 94층에 있는 <360 Chicago> 전망대와 미국 재즈 투어 가이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Andy's Jazz Club>이다.
이 중에서 재즈클럽 말고는 아예 생각을 못했고, 재즈클럽도 미리 알아보지 않아서 구체적인 목적지는 없었다. 우리가 방문한 앤디스 클럽의 엔트리는 무려 라틴재즈였고 나는 자동인형처럼 춤을 추려는 관성을 잡아두기 위해 페이스북으로 공연을 스트리밍 하면서 칵테일과 리조또를 먹었다.
인테리어 카페는 특히 식당 구역이 포토존이었지만 모든 인테리어 요소가 감동적이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전망대의 야경이야말로 도시 전체가 예술인 시카고의 추천 스팟이다. 그해 추석날 저녁에 도착해서 추석 다음날의 야경을 보러 올라갔다. 당연히 대보름달이었고, 아직 방문하기 전인 네이비피어와 미시간 호수의 수면 위로 달그림자가 비쳤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