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빵

단편소설 <구슬>

도영의 집은 현관이 부엌을 겸하고 있었다.


우리 집도 작년까지는 그런 집들 중 하나였다. 감나무가 있던 그 단독주택에는 취사시설이 딸린 창고같은 단칸방이 여럿 딸려 있었고 그 중 한 곳이 우리 네 식구의 처소였다. 화장실은 없었다.


한번은 주방 겸 욕실 겸 현관에서 목욕을 하다가 안방 문이 잠긴 적도 있다. 입을 것이라고는 수건 세 장 뿐인데 일가족이 다같이 나올 수는 없었다. 수건 세 장으로 비키니를 만들어 입고, 첫째인 내가 할머니집에 갔다. 할머니집에 있는 할머니 옷을 입고 다른 식구들을 기다렸을 것이다. 나는 수건을 입고 마을을 관통했던 기억밖에 없다. 내가 수건을 입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동네 아줌마들의 시선, 그리고 암전.


우리는 그 집에서 1년만 살고 신축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다. 바로 옆집이었다. 새 집에 불이 나기도 했지만 큰 사고 없이 수습됐던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수건을 입고 동네 패션쇼를 했던 기억만큼 강렬하지 않다.




옆집으로 이사한 그 해 도영을 만났다. 이후로 삼십년이 넘게 내귀에 캔디였던 세평도 만났다. 누구의 집에 먼저 갔는지 모르겠다. 세평의 집은 작년에 우리가 세들어 살던 주인집보다 훨씬 컸다. 도영의 집은 새집보다 작았고, 전에 살던 집보다는 컸다.


나는 도영의 집이 우리집만큼 편했다. 도영의 엄마가 퇴근하실때까지 나와 도영과 도영의 여동생은 인형놀이를 하고 간식을 만들어 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요리 비슷한 것은 과일을 깎아서 자르는 것 뿐인데 도영은 불을 사용할 줄 알았다. 그 또한 아래층 화재사건만큼 강렬한 기억이다. 도영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어린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성장이 충분이 빠르지 못해 어린이인척 해야 하는 청소년 정도라고 생각했다.


세평은 집안에서 비용을 지불하는 모든 사교육을 받았지만 도영은 그렇지 않았다. 도영 자매는 우리 남매와 달리, 학원도 다니지 않았고 개인교습을 해주는 친척도 없었다. 그들은 양육되기보다 자생했다. 나는 그들에게 정글의 법칙을 배웠다.




좋아. 이제 어디가서 굶어죽지는 않겠어.


물론 어디가서 굶어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수건 패션쇼를 할 때부터 알았다. 그런데 계란찜에 밀가루를 넣어 탄수화물을 보충하는 도영의 모습을 보고 남몰래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그때부터였나. 누가 사왔는지 받았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무도 읽지 않는 빵만들기 책을 정독했다.


다른 책도 많이 봤지만, 소설이나 학습만화는 대놓고 보는 책이었고 요리책은 몰래 보는 책이었다. 어려서는 위험하다고 혼날까봐 요리하고 싶은 욕망을 숨겼다. (대신 코스모스로 소꿉놀이를 했다.) 고학년이 되어 국 데우기나 라면과 같은 기초적인 요리를 정식으로 배운 뒤에는 그것이 책임이 될까봐 좋아하지 않는 척 했다. 라면은 먹을때나 좋지 끓이는 건 귀찮다. 내가 만들고 싶은 건 빵이었다.


도영이 만들었던 계란빵의 레시피는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계란찜에 밀가루만 넣었는데 빵이 된다고? 도영의 계란빵에 매료된 나는 과학실험세트에 있는 플라스틱 샬레에 밀가루와 설탕, 커피용 프림을 반죽해서 발효(?)를 시켰다. 푸른곰팡이가 생겼다. 이걸 또 어떻게 처리하나 한참 고민했다.


집에 아무도 없거나 그에 준하는 (동생이 자고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죽을 했다. 반죽은 매번 너무 묽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팬케이크 믹스로 팬케이크 만드는 법을 배운 것 같지만 순서가 헷갈린다. 마침내 내가 빵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것을 만들어내긴 했다.


건빵 맛이 났다. 이것도 나쁘진 않았다.




나중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진짜 제빵 비슷한 것을 했을 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오븐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제빵용 밀가루는 수제비용 밀가루와 다르고 (수제비 반죽 쯤이야!) 휘핑크림을 만들려면 전동 블렌더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 까지는 알 길이 없었다.


먹어본 빵의 종류도 몇 개 되지 않던 아이가 제빵을 책으로 배우면 빵을 만들 수 없다. 유튜브에 원작자보다도 잘 만들 수 있는 비법이 가득한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계란빵을 만들어준 도영을 2년 후에 다시 만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