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슬>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도 무상이었다.
창피함과 서운함 사이의 무언가를 그를 통해 처음으로 배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특정인에게 '소속'되는 것을 창피하게 여겼다. 나는 오롯이 나이고 싶었다. 그가 유독 창피한 사람이기 때문이어서는 아닌 것 같다. 아닌가?
가끔 '내가 창피해?'라고 물어보는 남자친구를 만나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지만, 내가 창피함을 느끼는 포인트는 그의 부족함이 아니다. 내가 나 홀로 우뚝 선 존재가 아닌 모든 순간이 창피했다. 그래서 친구로도 자랑스럽지 않다면 아예 극비리에 만났을 것이고 친구로 자랑스럽더라도 친구 이상으로 진입할 때 곳곳에 과속방지턱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창피함을 이기는 것은 서운함이라, 그 약한 고리를 눈치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곁을 차지했다.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거나, 나를 건너뛰고 다른 이에게 기회가 간다면 아무리 나를 다잡아도 마음이나 동공이 흔들린다. (어쩌면 지금도) 자연스럽게 티 내지 못하는 탓에 속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려면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다가도 그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구석에 놀라서 뒷걸음질을 친다.
불가능한 사랑은 달콤한 도피처일지 모른다. 이루어질 수 없기에, 이루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파라다이스였다. 이룰 수 없다는 사실만 받아들이면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되기에 그 천국 같은 지옥은 평생 나를 유혹했다.
점화 가능한 시간이 지났을 때 어떤 느낌인지 알기에 끝없이 초조하다가도, 과연 이게 최선일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알겠는가. 후회에 후회에 후회를 거듭해도 원래 '그때'는 모르는 법이다. 나는 이 가을을 그냥 보낸 것을 후회할까, 그냥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 지금은 전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