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슬>
처음으로 고백했던 친구가 대준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전에 좋아했던 사람들이 다 연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라면 알아서 내게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동생이나 사촌동생들에 대한 어른들의 관찰보고서는 이쁨을 받으려고 이쁜 짓을 한다는 것. 반면에 나는 항상 뚱했다고 한다. 요즘(?) 말로 전형적인 츤데레였고, 오히려 어른들이 나의 호감을 사려고 주객전도를 했을 것이다. 내가 아기 때는 주변에 아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게 원인이었다.
허세남에게 허세를 부린 선물을 주었을 뿐, 그걸 그 친구가 자랑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대준이를 시험삼아 그 이듬해에 쓴 편지는 제법 효과가 있었는데, 3년 차에 살짝 오버액션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그 허세조차 처음은 아니었다. 그 선물은 미니어처 향수였지만 그로부터 3년 전, 처음으로 만들어 본 리모델링 초콜릿을 선물한 적이 있다. 허세라면 허세지만 나름 확실한 메시지를 가진 선물이었다.
무상은 그마저도 또 자랑을 했다. 내가 이름을 쓰지 않았나? 기억나는 것은 서점에서 그가 또 너무 큰 목소리로 초콜릿을 넣어두고 간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봤던 것이다. 작년 추석 서점 사건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다. 몰라서 물었다기보다는 확인을 핑계삼아 자랑하고 싶은 호들갑.
허세남의 허세를 예측하지 못한 내가 바보지. 대체 왜 그렇게 사랑받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걸까? 그때는 그 심리를 몰랐다. 남자들이 그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남자라는 종에게 관심을 끊었을텐데.
대준이의 최대 매력은 사람을 설레게 하면서도 차분하게 티내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도 상처받은 순간이 있지만 망신을 당한 적은 없다. 대준이가 나보다 훨씬 조용한 여학생을 짝으로 선택한 사건보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무렵 내 짝이었던 잘 모르는 남학생이 장문의 편지를 내게 주었던 것이다. 한 페이지에 사랑한다는 말이 (대놓고) 세 번 이상 나오는데 페이지 수가 적어도 세 페이지는 됐던 것 같다. 너무 충격적이라 문장력은 볼 틈이 없었다. 내가 욕을 즐겨하는 아이였다면 육두문자를 날렸을 것이다. 속으로만 생각했기를.
'이런 미친새끼를 봤나.'
사랑이라는 말이 남용되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도 생생하게 알려준 그 친구가 지금은 고맙지만, 당시에는 어린 나이에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줄 알았다.
리모델링 초콜릿을 만들 용기를 탑재했던 최조의 베이킹은 역시 도영이의 계란빵인가. 그러나 도영이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도영이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영이는 문장 속에 있었다. '도영이랑 책을 사러 같이 가지 그랬어.'라는 문장 속에 도영이가 살아있었다. 그애는 무상이 편지 속에 남긴 그 문장 속에서만 영원히 살아있었다. 그 문장 때문에 나는 도영이를 잃어버렸다. 나에게 쓴 편지 속에 도영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 문장을 읽은 이후로 도영이는 내 삶에서 제거됐다.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는 검색을 해도 찾을 수 없는 도영이는 그 날 이후로 잃어버린 구슬이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