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그 후

단편소설 <구슬>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나는 무상에게 꽃다발을 받았다. 어느 날엔가 그의 꿈에 나왔다는 혜지도 받았다. 만약 혜지만 받았다면 그날 이후로 그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련하게 이미 결혼한 그를 찾아가서 곧 아빠가 된다는 소식까지 들어야 했다. 중1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시련이었다.


나는 그 전에도 후에도 좋아하는 친구나 1년 혹은 2년 선배가 있었다. 처음으로 내가 먼저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5학년 때 알게 된 6학년 선배였다.


전에는 나를 괴롭히려고 시도하다가 역습을 당한 아이들밖에 없었고, 어떤 루틴에 따라 그 친구들과도 친해지게 됐다. 특별히 나만 괴롭히는 게 아니라 모두를 괴롭히는 아이는 특별히 내가 잘해주면 나에게 의지하고 내 말을 잘 듣게 된다. 그 다음은 쉽다.


선배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함과 거의 동시에 비슷한 각도로 무상을 보게 된 것 같다. 그 전에는 그 각도가 무엇인지 몰랐다. 다만 독점하고 싶었다. 아니, 독점한 상태가 변하는 게 싫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의 결혼에 상처를 받은 과정은 거의 정확하게 외삼촌의 결혼에서 반복됐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났을 때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당시에 마음에서 느껴진 고통의 기억은 선명했다. 어떤 팽창된 자신감이 마구 쪼그라드는 느낌. 나의 포텐을 계속 늘려줄 누군가를 영원히 상실하는 느낌.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친구들과 거대한 놀이집단을 형성하고 나서야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아갔다. 그 사이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난 일은 멀어져갔다. 더 좋은 어른들과 차라리 나이 차를 대놓고 말하는 어른들을 알게 됐다. 더 성숙한 어른들, 어린이와 청소년을 다룰 줄 아는 어른들의 성숙함을 배웠다. 친구들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너무 어린 어른과 너무 조숙한 아이의 우정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무상에 대한 존경심은 너무 빨리 사라졌고 나만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관심이 필요해서 필요 이상으로 따라다녔다. 미소와 나만 남아있던 수업을 무상이 그만두면서 더이상 그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이제 나는 그와의 연이 없다.


독신주의자 선언 후 2년이 지났을 무렵에도 2차 성징은 내 차례까지 오지 않았다. 소녀보다 여자에 가까운 친구들이 있었고, 그런 친구들에게 눈이 돌아가는 남자아이들이 나타났다. 그러는 사이 <아들의 여자>와 <모래시계>가 지나갔다. 삼각관계의 스릴을 알아버렸다. 일부러 두 명을 좋아한 건 아니지만 두 번째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심리적으로 든든헸다.


"내가 결혼을 안 한다고 그것도 안 하겠어?"

"그렇지."


미소는 놀랍게도 내 말에 쉽게 수긍했다. 내가 너무 확신에 차 있던 걸까? 우리 모두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기반해 그것을 상상했다. 이상한 마임을 하는 남자아이들도 있었다. 대준이도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고백했던 친구. 딱 적당히 조숙한 아이.




내가 진영이를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나하고만 같이 다녀서 대준에 대한 내 속마음의 모든 것을 알게 된 친구 진영이가 편지를 전달했다. 진영이는 내게 왜 그렇게 잘 해줬을까? 나는 아무것도 못 해줬는데. 진영이는 결국 대준에게 고맙다는 요지의 답장도 받아냈다. 진영이가 무섭거나 귀찮아서 대준이 답장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 믿고 싶다. 별 내용도 없는 것을, 써주고 받아왔기 때문에 그저 나도 고마웠다. 더욱 용기를 내어 볼 수 있었다. 고백을 해도 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고백의 부작용을 정통으로 경험한 건 고백 3년차였다. 과감해진데다 중2병에 걸린 우리는 서로의 허세를 충족시키다가 같이 망한 것 같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고백한 그 친구와 나는 따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망해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도 생겼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