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야비 <그 의사의 코로나>
그러다 엄마의 1주기를 앞두고 나는 삶의 전환을 갈구했다. 제일 힘든 방법으로, 죽을 정도로 힘들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생하고 싶었다. 그렇게 2021년 초, 나는 달랑 수첩 하나를 들고 홀연히 소현정신병원으로 내려갔다. 그게 바로 이 글뭉치의 시작이었다. -484p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코로나가 쓸고 간 몸과 마음에는 여러 가지 상처와 상실, 직면하기 부담스러운 흉터들이 남았다.
시도때도 없이 울컥하는 일상, 균형을 잡기 위해서 때로는 무덤덤한 가면을 쓰고 때로는 본래의 기능에 충실한 나머지 남들과 나 자신까지 위로하는 광대를 자처했지만 나 역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생하고 싶었다. 예상보다도 훨씬 바쁘고 이상고온에도 가슴에는 찬바람이 사무치는 이 시기에 기어이 이 책을 완주했다.
즐겨찾지 않던 다큐멘터리에 적응하기도 전에 눈물이 넘쳐 매일매일 질식하며, 없는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었다. 내 슬픔에 책의 슬픔을 더한 채 일상을 유지하느라 마음이 무거웠던 한 주. 마음이 급해도 읽는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었다. 철저한 픽션 중심의 독서 이력에 이례적인 논픽션이지만 문학성에 대한 저자의 의지 혹은 소망을 읽어내는 동안 속도가 붙어 최단기 최대분량의 기록문학을 기록했다. 예정된 슬픈 결말을 향해 달려나가고,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이 세계의 한 단편을 확인했다.
코로나 방역과 치료의 최전선이었던 의료진에게는 생명을 다루기에 숭고했던 정신과 그 숭고함에 대한 댓가 혹은 젯밥에만 관심있던 파렴치가 공존했다. 저자는 스스로의 양심을 제물삼아 그 세계를 정면돌파한 자신의 기록을 남겼고, 그렇게 본인의 상실과 모두의 상실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했다. 이 작품은 문학이나 예술을 초월한 호흡으로 진행된다.
신중하게 검토하고 역량에 따라 수용할 수 밖에 없다. 다른 기록문학이 그러하듯 진정성에 좀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 저자의 의료 봉사와 그에 대한 기록이 하나의 치유과정이었듯, 그 모든 것을 추격하고 내재한 아픔과 충돌하는 과정을 겪어내는 것 또한 하나의 치유 과정이었다. 뻔뻔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 살아있다는 감각을 확실하게 느끼기 위해, 상실한 사람들과 상실의 시간을 어떻게 놓아줄지 치열하게 고민하기 위해 일상에 필요한 감정 이외의 마음들을 내주었다. 망설임은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그렇다면 두 세상 모두에 죽으라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럼 사람은 어디에서 죽는가? 두 세상의 경계에 있는 치외법권. 사람은 거기서 죽는다. 치밀한 비논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엄마는 지금 그 경계에 누워 고요히 사투를 벌이고 있다. -59p
요즘 세상. 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안 하거나 조금만 힘들면 보상을 요구하면서 칭얼거리는 요즘 세상.
-79p
슬픔이 '긴'을 데리고 다니듯 기쁨은 '짧음'을 수반한다. 더군다나 큰 기쁨은 매우 짧다. -130p
의학에서 원인이 많다는 말은 원인을 모른다는 말과 같다. 폐섬유화에 유전적 소인이 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다시 쉽게 설명하자면 양자 역학적 관계에 평행우주 이론을 대입하면 된다. -252p
비통이든 비애든 시간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우리 넷은 이 부조리한 시간에 반항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그 일은 바로 사랑이다. -279p
그 서류의 의미를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서명을 주저하고 망설였다. 그걸 어찌 알았는지 엄마와 아버지는 내 서명 직전에 스스로 심장을 멈췄다. 서명하는 아들의 가슴이 무너질까 봐 평생을 달고 살 죄책감을 주기 싫어서 그랬으리라. -488p
다음 수를 볼 줄 아는 자는 보인 별빛이 이미 죽은 아름다움이고, 보이지 않는 화살의 속도가 찰나의 삶이라 생각할 줄 아는 자다. 이것이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 -500p
긴 이야기였지만 쓰여졌어야만 하고, 읽혀야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열치열의 심정으로 고통을 자처했으나 읽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 아주 조금 양심의 회복을 느낀다. 이제 겨우 반창고의 일부를 떼어낼 용기를 냈을 뿐이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그만두지 않겠다'는 다짐만 한번 더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