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남 <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그의 삶을 관통한 극적인 요소는 그만큼 회오리처럼 20세기를 살아온 한반도의 민생 그 자체였다. 그러니 그 자신은 단지 그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동시에 이토록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평범조차 힘들게 쟁취한 사람이다.
평범을 어찌 정의하냐는 문제가 있겠지만,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긴급연락처가 있는 삶이 평범이라면 그는 평범을 쟁취하는 데 인생의 거의 전부를 바쳤다. 그리고 스스로도 뿌듯한 업적인, <전태일 평전>을 출판한 돌베개의 사장이 되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쓰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마지막 과업이 가장 어려웠다.
오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인의 권유로 출판한 첫번째 자서전에는 진심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한번 더 회고록을 낸다면 이번에야말로 저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내면의 고통과 죄책감이나 욕망까지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책으로 먹고 살 정도를 넘어서 섭외 1순위 영업부장이었던 저자도 본인의 진솔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다. 그 어려운 일은 해냈기에 그의 오늘이 조금은 더 뿌듯했으면 좋겠다.
절망과 굴욕의 80년대, 그중에서도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전반전의 이야기까지. 위인보다 범인(凡人)에 가까운 이의 관점으로 빠르게 돌아볼 수 있다. 만약 심장이 약해서 <1987>을 아직 못보고 있는 독자라면 그 해의 상황도 간략하게 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현대사를 다룬 전문서적은 사거나 선물받아도 쌓아두기만 하고 읽지 못했다. <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와 <전태일 평전>이야말로 역사덕후가 아닌 평범한(?) 책덕후에게 좋은 친구다.
가방끈이 짧아서 서러웠지만, 남부럽지 않게 유명한 책들을 팔아보고 만들어 본 옆집 할아버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독자들이 그렇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반 아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다니듯 나에게는 아동보호소, 소년원을 거쳐 서대문교도소에 들어 오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다. -43p
이는 씨를 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성시키는 일이었다. 감옥에 한번 들어오고 나면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본격적으로 도둑질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54p
나 역시 저 국화꽃처럼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음지에서 자랐지만,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다 보니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가슴이 벅차오르며 한없이 뿌듯해졌다. -84p
내려놓을 것이 별로 없어서일까, 나는 남들보다 쉽게 뇌를 맑게 비우고 최상의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97p
나 같은 놈이 평범한 인간으로 변신하면 이 사회의 물이 조금은 맑아지는 줄로만 알고 죽기 살기로 발버둥 쳤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노예나 머슴처럼 다루고 부려먹는 또 다른 이들이, 실은 부모의 사랑도 받고 교육도 정상적으로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144p
지금 이곳 사람들은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면 숨을 쉬고 살아갈 수가 없기에 가슴에 있는 한을 누른 채 살고 있는 겁니다. -185p
전태일 열사의 원고는 나이 어린 미싱사와 시다들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동부나 서울시청 같은 곳을 찾아다니다 한계에 부딪히자 스스로를 불사른, 가장 순수한 이웃 사랑 이야기라는 판단이 들었다.
-194p
간첩은 잡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고기를 잡다가 실수로 북방한계선을 넘어가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풀려나온 어부들도 사회가 어수선하면 다시 잡혀 들어가 온갖 고문을 거쳐 고정간첩으로 재탄생되곤 했다. -201p
나는 점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둑질이나 하며 구질구질한 절도 죄명으로 들어오다가 국가보안법으로 들어왔으니 스스로 흐뭇했던 것이다. -227p
인간다움을 쟁취하고 본연의 순수함을 발견한 그의 여정은 오직 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에 더욱 소중하다. 오히려 활자가 풍족한 시대에 우리 자신의 언어를 확보하는 일을 게을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새삼 돌아본다.
* 다산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