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그래 이 맛이야

2000+페이지 소설과 50+시간 드라마들

엘레나 페란테의 쫀득한 맛



방금 도착한 알라딘 연간 리포트에 의하면 올해의 작가는 엘레나 페란테였다. 이미 상반기에 예정된 일이었다. 지난해 11월, 새집을 계약하고 잠깐 구경갔던 중고매장에서 말로만 듣던 나폴리 4부작을 발견했고, 곧 이삿짐으로 들어갈 예정임에도 그 책을 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폴리 4부작을 끝까지 읽고 나서 내게 이 책을 소개한 이다혜 작가의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의 해당 챕터를 읽고 또 읽어도 무엇에 내가 홀렸는지 그 포인트는 다시 찾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첫 오프라인 만남에서 책표지에 홀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엘레나 페란테의 최대 매력은 일단 스토리텔링이다. 소설의 최대 미덕이자 소설가의 최대 미덕인 스토리 그 자체였다. 많은 작가와 독자들, 특히 한국의 독자들이 미문에 대한 기준이 높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흐름에 빨려들어가는 맛으로 책을 읽어왔고 그래서 스릴러, 대하소설을 좋아했다. 스릴러 베이스의 대하소설인 요 네스뵈의 오슬로 3부작을 최애 시리즈로 꼽는 이유도 그것이다. 물론 요 네스뵈의 문장은 모두를 만족시킨다고 한다.


엘레나 페란테는 스릴러나 역사가 과도하게 지배하지 않는 긴 작품을 썼다. 굳이 따지자면 나폴리 4부작은 역사소설도 아닌데 성장소설이라기에는 타임라인이 매우 길다. 두 여성의 십대부터 육십대까지의 반 세기를 다루고 있다. 그 중 격동의 70년대가 포함된다. 배경이 한국이었어도 어마무시했을 스토리가 펼쳐진다. 하지만 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의 소도시, 마피아가 통치(?)하는 지방이다.


나폴리 4부작에서 가장 쫀득한 구간은 화자 레누의 대학시절, 신혼을 포함한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이다. 레누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진주인공 릴라가 먼저 결혼하지만 예상대로 먼저 이혼한다. 이어지는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에서 나폴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릴라의 롤러코스터같은 인생이 펼쳐지고 정작 더 큰 세계로 진출한 레누는 그런 릴라의 인생을 피상적으로 부러워한다. 가장 오래된 친한 친구일수록 작은 것 하나마저도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다. 그녀의 천부적 재능을 알면서도, 그녀가 날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엘레나 페란테의 치명적인 코어는 숨은 욕망과 열등감이다. 오너캐인 엘라나 그레코, 즉 레누는 지방 노동계급 출신의 지식인 여성으로서 대학과 결혼을 거쳐 부르주아 사회에 편입되는데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열등감과 싸워야 했다. 뿐만 아니라 고향 친구 릴라는 아무것도 아닌데 항상 앞서가는 느낌이다. 시궁창도 이런 시궁창이 없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날까.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가 생각난다. 다행히 레누는 '얼어붙지 않'는다.




아리랑에서 토지까지,

풀어지는 맛



엘레나 페란테를 통해 모든 국가 모든 장르, 그러니까 무장르를 포함한 대하소설까지 마음을 열고 나니 그동안 영어권 고전에 집착한 스스로가 살짝 민망해졌다. 영어에 자신감이 붙고서야 다시 영미 고전으로 돌아와서 프랑스어, 스페인어 문학의 한국어 번역서와 겨우 재회했다. 생각해보니 프랑스어 현대문학은 2000년대에도 많이 읽었다. 이 얘기는 잠시 미루고, 다시 대하소설로 돌아오자.


영어와 스릴러, 외국 현대, 그리고 한국 현대 이전의 덕질 분야는 한국 근대 장편소설이었다. 수능대비용 단편소설은 말그대로 수능대비용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작품은 <아리랑>이었다. 위에 언급한 15년 전 작품들도 거의 기억이 안나는데 25년 전에 읽은 열두 권짜리 <아리랑>이 기억날 리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한숨부터 나오는 그 열두 권이 그때는 짧게 느껴졌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었을 것이다. 하루종일 책만 끼고 살지는 않았기에 이삼 일에 한 권쯤 독파했는데 덕분에 방학을 순삭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극히 일부가 발췌되었던 국민 대하소설 <토지>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한권씩 샀는데 결국 중간에 흐름이 끊겼다. 전체를 이십 여 권으로 분권한 개정판 중에서 열두 권 정도 모아둔 상태로 15년이 지나버렸고 이제는 구하기 힘든 이 판을 마저 모으느니 모아둔 책들을 처분했다. 드라마로도 조금은 봤었고, 워낙 강렬한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에 흐릿하게나마 그 장면이 떠오르지만 역시 너무 오래전에 놓아준 작품이다.


엘레나 페란테와 최근 역주행한 천명관, 그리고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거쳐 박경리의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 개정판도 충동구매했다. 처음 자랑하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언급했듯 제인 오스틴의 후예가 더이상 부럽지 않다. 한국언니들은 이제야 겨우 메이저리그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지지난 세기의 영국언니들이 100년이 지나서야 겨우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처럼.




삼국지, 임꺽정, 장길산의

몰아치는 맛



조정래의 <아리랑>은 90년대 대하소설 덕질의 결정판이었다. 읽은 순서는 어린이 버전과 드라마를 봐서 이미 내용이 익숙한 <임꺽정>과 게임으로 친해진 <삼국지>, 드라마를 보기 직전 또는 직후에 읽었던 <장길산>이었고 그렇게 <아리랑>에 다다른다. 네 개의 시리즈는 1997년과 1998년에 시작된 네 번의 방학과 대응이 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는 더 넓은 기간일수도 있다. 드라마부터 약간 김이 샜던 <장길산>은 결국 완독을 못했다. 그것도 9권의 후반부까지 갔는데 마지막 한방이 없었다.


이 책들은 이미 어느 시점에 전집이 있었다. 내가 읽기 위해 산 책들은 아니다. 심지어 토지도 80년대 버전인 세로쓰기판으로 완비돼있었지만, 그건 도저히 읽을 수 없어서 분가 후 내돈내산하다가 실패한 것이다. 현위치와 무관하게 3, 4부작은 어떻게든 전체를 완주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미리 3, 4권을 다 구입하지는 않는다. <토지>라면 몰라도 책이 있었는데도 실패한 <장길산>을 다시 읽을지는 모르겠다. 읽어야할 책의 권수는 줄여도 줄여도 한없이 늘어나기만 하는데 샘플북이라 치고 1권만 들여놓은 영어책도 꽤 많은 편이다.


<임꺽정>은 <아리랑>이나 <토지>만큼 롱런하지 못했지만 당시 드라마 덕분에 역주행을 했던 작품이고 특히 이 작품은 책이 더 재미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편 게임으로 배웠던 <삼국지>는 굳이 비교를 하자면 게임이 더 재미있었다. <삼국지> 혹은 그 배경이 되는 위촉오에서 파생된 자기계발서를 읽어볼 정도로 그 시절에는 영향력이 있던 작품이다.

여전히 명작인 <아리랑>, <토지>와 다르게 <임꺽정>, <장길산>, <삼국지>가 웰메이드 무협지 정도로 느껴지는 이유는 특히 여성인물의 입지가 너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이 작품들이 드라마 원작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어느 시점의 한국영화와 한국드라마, 특히 액션이 가미된 사극이 새바람을 맞이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액션배우 하지원,

사관의 역사를 바꾸다



마침 (02학번의) 청불이 해제되던 그 해에 <색즉시공>으로 스타덤에 오른 하지원의 대활약이 시작된다. 대학교 4학년때 처음으로 A+를 받았던 '영상예술의 이해' 기말리포트의 주제는 동시대 여배우들이었는데 그때 그 평론(?)의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이 김선아, 이은주, 문근영이었다. 그 학기에 개봉한 하지원, 강동원의 <형사>도 봤지만 이미 종영한 하지원의 인생작인 <다모>를 보기 전이었다. 그래서 액션배우 대표로 김선아를 꼽은 것이다.


대졸실업자의 운명을 앞두고 춤바람이 났는데 그 졸업 학기를 빛낸 드라마가 바로 <황진이>였다. 전설적인 인물인 황진이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미 액션으로 정평이 난 하지원이 파워풀한 버전의 황진이를 연기하면서 사극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지난 세기 <아리랑>을 읽던 중학교 때부터 한국무용 실기를 (의도치 않게) 배우기도 했지만 故 이애주 교수님의 공연을 보고, 이론수업을 들으면서 (이론수업이었지만 교수님은 실기평가를 했다!) 승무와 전통무용을 피상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영상예술의 이해'와 같은 학기에 들었는데 여태 이 과목이 '무용과 사회'인 줄 알았다. 다시 확인해보니 '무용과 예술'이었다. 어쨌든 그 수업의 피날레에서 오직 이애주 교수님만 이해하실 법한 공연을 하고 A-를 받았다. (지금은 찾기 힘들지만 싸이월드에 기록한 영상 속의 안무였다.)


춤을 추다 말을 타고, 말에서 떨어지면 낙법을 쓰는 하지원은 이미 에어로빅 선수 시절의 그녀가 아니었다. <황진이>에 완전히 매료되어 <다모>를 정주행했고, 특히 폐인을 생산하기로 유명한 이 드라마는 오랜만에 폐인모드를 불러올 뻔 했지만(!) 다행히 나는 내가 춤추는 걸 더 좋아하는 혈기왕성한 이십대였다. 춤과 춤 사이의 휴식을 메울 빈지왓칭도 삶의 일부였다. 이 무렵(졸업 1년차)에 최초의 인생드라마인 <여명의 눈동자>도 재주행했다.


현대 판타지물인 <시크릿 가든>에서 곧 액션배우가 될 스턴트배우로 등장하는 하지원은 예비 시어머니가 뿌리는 물컵의 물을 신속하게 피하는 역대급 명장면을 남겼다. 그녀는 <기황후>의 타이틀롤을 맡아 사극의 최정점을 기록하는데 이 드라마는 보는 동안 앞부분을 잊어버리기 딱 좋은 정신없는 플롯과 거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종영 후 수년 뒤 영화 한편에 맞먹는 요약편까지 봤다. 그때만 해도 하지원에게 밀렸던 김서형과 지창욱의 연기도 볼만하다. (크게 될 줄 알았지.)



미실과 선덕여왕,

동이와 최숙빈



정사보다 과학적이라는 <화랑세기>를 복원한 김별아의 역사소설 <미실>이 드라마 <선덕여왕>속에서 다시 한번 부활했다. 이 드라마는 타이틀롤이 이요원과 남지현(!)이었지만 미실 역의 고현정이 고현정했던 드라마이기도 하다. <선덕여왕>의 세계관을 통과하고 나서 <모래시계>를 보면 처음과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유난히 민족사관과 일처일부제에 집착하는 한국 사람들이 봐도 묘하게 다처다부제가 납득이 되는데는 고현정의 매력도 한몫했다.


<미실>의 초판과 개정판을 읽기도 했지만 드라마 자체의 사랑스러움이 있었다. 게다가 당시 방송국과 제휴한 뷰티스쿨 수강생이었기 때문에 드라마 촬영장에서 배우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사진 파일이 소실되었다. 남는 건 사진 뿐이지만, 사진 관리, 파일 관리를 못하는 이상한 병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스토리에 텍스트로 아카이빙을 하게 될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웃픈 사실은 저 문제의 <선덕여왕> 견학 스토리를 다음 블로그에 포스팅을 해놓고 그 블로그를 밀어버렸기 때문에 사진파일 소실 후 복구 방법이 0이 되었다.


<선덕여왕>의 여운이 남아 송지효가 출연하는 <계백>을 보다가 마침내 숙종시대를 대통합(?)한 <동이>를 보게 되는데, 이 드라마는 최초로 독하지 않은 장희빈이 등장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장희빈을 맡은 이소연은 사연 많은 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의 예비 신부 역을 거쳐 <동이>에서 활짝 피었다. 동이=최숙빈을 맡은 한효주는 이미 대스타였지만 그 정점에 <동이>가 있었고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으로 숙종과 영조의 연결고리(?)가 최숙빈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혼란에 빠졌다.


가히 그 혼란은 우리가 얼마나 가부장적인 세계관 속에서 역사를 배웠는지에 대한 자각이었다. 특히 특이한 이력의 왕모였던 최숙빈을 집중조명한 <최숙빈>이라는 책과 함께 조선의 왕후와 후궁들에 관한 디테일이 담긴 책들을 탐독하게 되었다. 이 책들을 보다가 알게 된 치명적 사실 중 하나는 한국의 하이브리드 유교사상이 매우 남성중심적인 동시에 특히 '효'를 강조한 나머지 왕실의 최고 어른은 항상 대왕대비일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왕대비는 왕의 할머니(가끔 증조할머니)이기에 중전 출신의 왕모인 왕대비의 시어머니이자, 중전의 시할머니다.


중전이나 후궁들도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지만, 왕에게도 부인(들)을 포함한 집안 여성들을 다스릴 능력이 충분해야 한다. 특히 어머니와 할머니가 모두 살아계신데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면 치국을 하기 전에 제가를 하다 미쳐버리는 수가 있다. 실제로 미쳐버린 놈들도 있다.




안나 카레니나와

유러피안 멜랑콜리



국내 사극이 황금기였을 때, <오만과 편견>을 비롯한 해외 고전 소설들의 2000년대 버전 영화도 개봉했다. 그 중 <안나 카레니나>는 원작이 길어서 유명했던 작품이다. 결국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를 보려고 원작 소설을 구입해서 억지로 읽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때 잠깐 고전 리부트가 되어서 <오만과 편견>도 읽고 <마담 보바리>는 사기만 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별 소득(?)이 없었기에 <마담 보바리>와 그 친구들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10여 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호밀밭의 파수꾼>과 <오만과 편견>은 영어판으로 바꿔치기하고 2022년 첫 코로나 감염을 기념(?)해 2000년대에 읽거나 샀던 고전들을 재주행했다. <안나 카레리나>도 원작은 러시아어니까 '영어판'으로 바꿨는데 아직 읽지 않았다.


<안나>를 읽던 2000년대 말,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선물받아서 읽고 사랑 3부작을 정주행했다. 아멜리 노통브도 가끔 읽었고 중고생때부터 드문드문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드문드문 읽었다. 기욤 뮈소의 초기 수입작도 꾸준히 읽다가 스티그 라르손 이후로 프랑스 작가들과 헤어졌다. 현대 일본작가 중에서는 요시모토 바나나와 미야베 미유키를 거쳐 히가시노 게이고에 정착(?)했다.


시간 순으로는 요시모토 바나나를 떠나 유럽을 한바퀴 돌고 히가시노 게이고로 돌아왔는데, (덕분에) 스티그 라르손을 만나서 요 네스뵈로 건너왔다고 봐야할 것이다. 스티그 라르손과 요 네스뵈를 만난 이후 다른 작가들의 신간 소식에 시큰둥해졌다. 라르손의 신간은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이고, 네스뵈의 신간은 번역을 기다리다 지쳐갔다. 그러다 한동안 책을 등졌고 (드라마는 봤고) 그러다 미국 여행을 다녀와 영어책을 읽기 위해 셀프 트레이닝을 했다.




스톡홀름과 오슬로,

더 싸늘한 맛



다시 밀레니엄과 다시 해리 홀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이 주요 배경인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3부작은 스웨덴 여행과 스웨덴어 공부를 부추겼으나 결국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생존작가 요 네스뵈의 해외판을 가장 빨리 접하는 방법은 영어판을 읽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맹렬하게 영어 읽기에 도전한 건 아니다. 요 네스뵈의 비교적 초기 작품 중에서 늦게 번역된 <리디머>를 영어판으로 읽었을 때는 이미 한글판이 등장하고도 남았다.


영어판을 읽겠다는 의지를 강화하는 전략으로 한글 독서를 끊고 사전과 놀았다. 본격적으로 어휘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직전에 밀레니엄 한국어판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옥스포드 사전, <워드 스마트>와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이외의 책을 읽지 않았고, 가끔 특별히 스스로에게 허락했던 책이 <82년생 김지영>과 <아몬드>, <핑거스미스>였다. 영어공부 루틴은 어렵게 생겨서 쉽게 사라진다. 이제 좀 공부가 습관이 됐다고 하려면 최소 주 3회 이상, 매일 두 시간 이상 몰입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 패턴이 마침내 3개월 이상 지속된 건 팬데믹 이후였다. 이미 영어는 완성돼 있었다.


'스웨덴어는 30년은 안 걸리겠지.'


그날 <인간관계론>이 너무 지겨워서 집어든 밀레니엄 1권 영어판을 읽고 나는 하산하기로 했다.




코펜하겐 삼부작을 읽을 예정



영어권 원서와 프랑스어권 번역서로 고전을 거의 판매량 순으로(?) 도장깨기 하다가 다른 책덕후들의 독서를 부르는 에세이를 통해 동시대까지 확장했고 그 절정이 엘레나 페란테였다. 물론 엘레나 페란테를 반환점으로 다시 한국 작가들에게 돌아온(?) 상태지만 질러 놓은 세계문학을 해결해야 4분의 1로 좁아진 책상을 원상복구할 수 있다.


나폴리 4부작에 도전장을 내민 토베 디틀라우센의 코펜하겐 3부작 중 2권을 우연히 (중고로) 득템하여 결국 1권도 주문하게 됐다. 특히 이 작품은 번역자를 따라가다 알게 되어(그런데 원작은 덴마크어인가, 영어인가?) 저자를 전혀 모르는데도 기대가 크다. 오슬로 3부작과 나폴리 4부작을 통해 도시 시리즈를 쓰는 작가를 선망하게 됐지만 코펜하겐 3부작을 번역한 사람이 서제인(혹은 김명남)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눈치게임만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덕질하지 못하는 역자들과 저자들을 눈치 빠르게 알아내고 싶은데, 그러려면 사놓은 책을 적당히 해치우면서 다음에 수집할 책을 눈빠지게 골라야할 것 같다.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을 뗄 무렵 도서전에서 업어 온 한국 작가들, 그 후 오며가며 교신한 결과 빠르게 책장을 채우고 사라지는(리뷰까지 완료한 책들은 발밑에 쌓여있다.) 한국 작가들은 이 기나긴 투어를 하는 동안 잊고 있었던 다른 감각을 깨운다. 이제 (내맘속에서) 가장 핫한 국가대표 작가들을 만나볼 차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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