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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더 레이븐>은 작가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영미 추리 소설계 대표 작가들이 포의 작품을 선정하여 리뷰와 함께 수록한 에센셜이자 앤솔로지다. 이 책을 통해 포의 대표작과 포를 사랑하는 추리 소설가를 동시에 찍먹하고 바로 이어서 영어판 에센셜로 중복 작품을 읽었다. 아직 영어권 작가의 영어 소설이 어려웠지만 한글판으로 포에게 입문한 뒤 그 느낌 그대로 영어판에도 입문했으니, 상대적으로 다른 작가들에게는 부담이 덜 했다. 이와 비슷한 기획으로 일부 중복된 작가들이 에드워드 호퍼의 대표작을 선정하여 단편 소설을 집필한 앤솔로지 <빛 혹은 그림자>가 있다.
소설가들의 호퍼 사랑에 흠뻑 취해 오랜 봉인(?)을 해제하고 아주 짧은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후 네버엔딩 장편으로 이어지는 프롤로그를 썼다. 그게 앤솔로지를 기획한 대표 저자의 숙제이기도 했다. 특히 <빛 혹은 그림자>에 참여한 작가들 중에는 단지 호퍼 덕후인 것을 넘어 작품 내적인 완성도나 취향이 탁월한 작가들이 많아서 이들의 단독 저서를 둘러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왕이면 영어판으로 대표작을 보관함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랑의 책>은 출판사 현대문학의 단편집에서 다채로운 사랑의 이야기를 작가별로 한 편씩 선정해서 묶어낸 앤솔로지인데, 존재를 알고 있었거나 모르고 있었더라도 이 책을 통해 더 좋아진 작가들이 있었다. 영어판만 읽었던 우리의 피츠제럴드가 그랬고, 온라인 서점 보관함을 떠도는 귀신(?)중의 한 명인 허버트 조지 웰스가 그랬다. 어제 도착한 11월의 첫 책탑에는 한국 작가들만 있었지만, 다음 주문에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단편집을 꼭 포함시키겠다고 다짐해 본다. 교보문고에서 독점 판매하는 디 에센셜 피츠제럴드는 이미 구매해서 조금 읽었다.
출판사 제공으로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를 읽고 아는 작가와 모르는 작가들의 집필 비하인드를 엿볼 수 있었다. 앤솔로지는 아니지만 이 책과 결을 같이 하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에세이 '글 쓰는 삶'도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야 이 글만 두 번 읽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애트우드의 <타오르는 질문들>은 에센셜이라기에는 분량도 방대하고 소설을 제외한 에세이와 리뷰 등만 수록하고 있으나 전작을 목표로 차근차근 읽어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최근에 번역된 다른 소설을 읽으면서 덕심을 충전해야 700페이지가 넘는 에세이를 읽어나갈 힘을 얻을 것 같다.
올해 발행을 시작한 월급사실주의 동인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는 동시대의 먹고사는 문제에 한정된 단편을 수록한 앤솔로지다. 한국문학에서 시대적 배경은 중요하다. 그러나 명작일수록 동시대가 아닌 경우가 많다. 급변하는 동시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의 한계가 있으니 걸작을 쓰기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현실의 먹고사는 문제를 다룰 필요는 충분하다. 관련 이슈의 재능이 있는 이서수와 이 책을 통해 입문했지만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한 서유미, 그리고 작가의 루틴과 먹고사니즘으로도 입지를 굳힌 장강명 등이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멤버다.
중고서점에서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2022년판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왠지 끌려서 데려왔는데, 머지않아 2023년판이 나왔고 전년도 수상작을 한 편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냥 샀다. <사랑의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흐름이 끊겼지만, 지난달부터는 모닝루틴으로 가급적 단편을 읽으려고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쌓여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덕분에 마침내 말로만 듣던 구병모와 백수린 작가의 킬링포인트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백수린 작가는 2년 연속 수상했는데 작년 수상작은 너무 졸려서 억지로 읽다시피 했는데도 결말 폭풍을 느꼈고 올해 수상작은 너무 아는 맛이라 소름이었다. 마치 평행우주의 백수린 작가는 나의 자매였나? 할 정도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주제로 기획한 <빛 혹은 그림자>를 읽고 토해낸 프롤로그를 주니어 로맨스로 이어가기 위해 <사랑의 책>을 읽고 있었다. 한편 예전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지독하게 끌렸던 고요한 작가의 단편집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를 구입했고 서울국제작가축제를 예약한 뒤 '아, 맞다. 박상영 작가도 나오지!'라는 생각에 전날 부랴부랴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구입했다. 단편이 꼭 날카로워야 하는 건 아니라 해도 비교적 날 선 작품들이 많은, 그럼에도 로맨스여서 사이사이 휴식을 취하며 읽었다. 그렇게 사랑 3부작 리뷰를 완성했다.
시작은 <사랑의 책>이었지만 열 페이지를 읽고 보름 정도 쉬다가 갑자기 폭풍 완독해버린 <대도시의 사랑법>을 가장 먼저 리뷰했다. 이어서 추석연휴에서 조금 밀려난 10월 초에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를 리뷰했는데 예정대로였으면 작년에 리뷰한 고요한 작가의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것이 좋아>를 리뷰했던 개천절에 완성했을 것이다. 일부러 개천절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뉴욕 여행을 다녀왔던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이 책들이 끌리는 건 우연만도 아닌 것 같다.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도 약간 미국드라마 풍의 바이브가 있다. 해당 리뷰는 서평모음 브런치북과 브런치스토리 매거진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단편에서 묵직한 잔상을 남겼던 고요한 작가는 단편으로 번역 소개된 적도 있고 장편으로 세계문학상을 받은 국가대표다. 지난주에 드라마 원작으로 스쳐갔던 김별아의 <미실>이 알려졌던 바로 그 세계문학상이다. 고요한의 수상작인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어제 도착해서 오늘 저녁까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머물게 될 예정이다.
박상영 작가가 부커리스트로 알려졌을 무렵, <대도시의 사랑법>에 시선 강탈을 당했지만 결국 내가 먼저 읽은 건 <저주토끼>와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것이 좋아>였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박상영, 정보라 두 작가를 단숨에 월드스타로 진입시킨 안톤 허 작가의 소설도 만나게 될 것이다. 정보라 작가의 단편집 세 권의 리뷰는 브런치북 중에서도 첫 번째 서평모음인 <인생작가 수집기록>에 있고, 안톤 허 작가와 다른 작가들은 세 번째 서평 모음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심화독서>에 있다. (고요한 작가는 양쪽에 다 있다.) 서평보다는 책 본문을 추천하는 바이지만 약간의 미리 보기를 즐기신다면 서평 모음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업어온 이서수의 <젊은 근희의 행진>은 서평 의욕이 좀 떨어졌던 여름날의 소다수였다. 그날 출판사 은행나무 부스에서 시간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앤솔로지와 세계문학과 격월지 등으로 물욕이 도져서 혼란스러웠지만 이미 결제까지 마친 장바구니가 거의 다 찼기 때문에 심사숙고 끝에 이서수를 선택했고 이 선택은 하반기 단편 이어달리기에도 큰 역할은 했다. 도서전에서 가장 먼저 구입한 책은 아니 에르노의 <세월> 프랑스어판이지만 그 책은 장식용이고 읽을 목적으로 구입한 첫 책은 조예은의 <칵테일, 러브, 좀비>였다.
조예은은 그 나름의 날카로움으로 여름 호러 시리즈를 완성했다. 셀프 생일선물로 펀딩 구매한 정보라의 <한밤의 시간표>와 중편 앤솔로지 <공포, 집, 여성>에 이어 강화길의 <화이트호스>까지. 그리고 도서전 출신인 <칵테일, 러브, 좀비>, <밤의 소리를 듣다>와 <젊은 근희의 행진>이 이어지는데 이 사이에 천명관의 <고래>가 있다. <고래>는 스릴러적 요소가 있지만 호러까지는 아니고 그럼에도 정보라의 전래동화적 요소가 떠오른다. 또한 <고래>에 등장하는 건축물이 고딕을 계승한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는 <젊은 근희의 행진>에도 어느 정도 나타난다. 이서수의 고딕(?)은 혼령보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스릴러적 요소를 가지기에 이 시점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아주 '동시대적'인 작가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강화길은 좀 더 전래동화 쪽이다.
월급사실주의와 김승옥문학상을 통해 입문한 서유미는 이번에 읽은 두 작품 모두 과외 수업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데 그게 우연인지 필연인지 매우 궁금하다. 한국 문학계의 클림트(?) 일지도 모르는 백수린의 최근 작품에는 '환함, 빛, 눈부심'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백수린과 이서수의 묘한 교집합은 완전히 동시대를 살아왔고 살고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단편집을 쌓아놓고 오늘은 무엇을 읽을지 고민하는 행복에 빠져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특히 한국 단편소설은 수능을 위한 레퍼런스로 읽었기 때문에 (지금도 쾌락독서보다는 창작의 사료지만 어쨌든) 작품을 고르고 맛보는 그 재미를 여태 몰랐다. 이번 해 수상작 중 구병모의 작품도 있었는데, 스포일러(?)가 담긴 어텐션북이 책탑 뒤에 숨어있었다는 걸 다른 어텐션북을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같은 걸 또 산 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스물 네 살로 넘어갔던 대학 졸업반 시절 충동적으로 첫 단편을 7시간 만에 썼다. 그때는 노트북도 스마트폰도 무선키보드도 없어서 그냥 공책에 그냥 볼펜으로 썼다. 어느 시점에 타이핑을 거쳐 한글파일로 보관하고 있었는데, 파일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은 한글뷰어가 있는 컴퓨터에 접속할 기회가 생겨야 가능하다. (지금은 없다.) 아마 그 파일을 영원히 확인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열리면 읽어야 하고 읽으면 좌절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볼펜으로 쓴 원고를 발견했는데 바로 덮었다.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분량은 가늠이 되지 않지만 읽는데 시간도 좀 걸릴 것 같고 어쨌든. 읽지 않을 핑계는 많다. 단편을 쓰고 싶은 뚜렷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장편을 휴재한 지 3개월이 넘어가니까 그 작품을 재개하거나 다른 작품을 시작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내게는 번아웃 방지용 냅킨에세이가 있지 않았나. 냅킨에세이 분량으로 연재를 하면 약 8회 차에 단편소설 분량이 된다.
블로그 팔만대장경과 번아웃의 반복을 탈피하고자 2천 자씩 끊어 쓰던 인스타그램 냅킨에세이가 모여서 브런치북 13권이 되지 않았나. 그중 일부는 초고를 브런치나 투비에서 작성했기에 4천 자에서 7천 자에 이르는 챕터도 있지만 가급적 주 5회 정도의 포스팅을 하기 위해 최근에는 (인스타 저장 오류가 많으므로) 투비를 저장공간으로 사용하면서 2천 자를 유지하고 있다. (투비는 글자수 표시가 된다!)
브런치 주간 연재 에세이(이 글이 포함된 시리즈)는 미리 뽑은 목차에 부합하는 소제목을 한번 더 뽑아놓고 분량제한 없이 쓰고 있다. 어차피 작성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시간제한에 따른 분량제한이 동반될 것이다. 지난주까지는 수요 연재를 준비하는 화요일을 기다렸는데, 그 화요일부터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그동안 공모전과 연재를 포함해 빼곡해진 일정을 소화하느라 몇 달째 쉬지를 못해서 이번주는 약한 몸살기와 함께 시작했다. 자주 나가있다 보니 살림머리가 안 돌아가서 난방을 늦게 개시한 탓도 있었다. 난방을 최대로 해놓고 12시간이 지났는데도 한기가 가시지 않는 것이다.
쓰는 고뇌를 아직은 모른다. 휴재 중인 작품을 건너뛰면 브런치에만 있는 <시작 못한 인생>이 두 번째 소설이다. 다섯 번째 소설은 임시저장과 내게 쓴 메일함에 대기하고 있다. 논픽션과는 다른 작품과의 거리 두기도 필요하고 실화기반이냐 아니냐에 따른 심리적 긴장도 있지만 독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방식에도 즐거움을 느끼는 편이다. 오히려 당장 발행하지 않고 아껴두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화장을 하고 옷을 입었는데 외출을 못하는 느낌이랄까. 다들 작품을 가두어놓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건지. (합평이 대체가 될까?)
물론 에세이도, 아무리 짧아도, 또는 에세이 없이 사진만 올리는 작업도, 하기 싫을 때가 있고 억지로 할 때가 있다. 그게 사람이다. 하기 싫으면서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억지로라도 하면 그 시간들이 모여서 나를 구성한다.
소설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몸이 가라앉으니 창작력이 급감해서 리뷰를 쓰고, 그렇게 모은 에너지로 수납을 위한 기능적 책 정리를 조금 하고 다음 사이클을 위해 힘을 아꼈다. 그러니까 이제는 수요 연재를 시작으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리뷰를 계속 쓰고 있기도 하지만 독후활동과 책을 통해 달라진 인생에 관한 독서에세이는 영원히 쓸 수 있다. 이번 연재 브런치북은 20화까지만 기획해 두었지만 그 분량을 작성하는 동안 21화부터 30화를 기획할 것이다. 벌써 4주 차라니.
나와 대면으로 대화를 해보신 분들은 유튜브를 권한다. (고려한 적은 있다.) 어떤 이야기는 구전될 때 더 재미있기도 하고 글을 쓰다 그분이 오시는 것처럼, 말을 하다 그분이 오시는 경우도 많다. 나의 경우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의 접신(?) 확률이 거의 비슷하다. 작년까지는 음성이 앞섰고 현재는 문자가 조금 앞서는 정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썼다 지울 수 있는 문자 언어를 선호한다. 특히 기록, 저장됨이 중요하다. 영상도 기록이지만 음성 언어는 처음부터 기록을 위한 언어는 아니었기에 (생활언어) 기록을 전제로 하면 그분 말고 다른 분이 올 수도 있다.
책으로 읽은 문장에 인덱스를 붙이고 리뷰에 첨부하고 되새기는 작업을 사랑한다. 그렇게 반복하지 않으면 기억을 못 한다. 기억을 한다고 해도 이 많은 책을 관리하고 리뷰하고 다른 리뷰어들과 소통하면서 유튜브까지 챙겨볼 정신이 없다. 책을 소개하는 방송이 있으니 책소개 유튜버도 있겠지만 (어떤 비주얼과 목소리에 권장되지만) 책이라는 콘텐츠가 활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책소개는 활자가 우선이라고 하면 너무 고려시대 사람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