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단짠 풍미 가득한 참고서 목록
이다혜 작가는 <코넌 도일X이다혜>에서 독서가들의 '홈스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어린 내가 우연히 집어든 양장본 소년문고의 홈스 편을 보다가 음침한 런던의 기찻길 옆 창가를 글과 삽화를 통해 상상해 보던 기억이 난다. 훗날 나처럼 애서가는 아니었지만 갓 스무 살이 된 동생이 셜록 홈스 전집을 구매했고 그 책을 어떻게 실어 날랐는지 학교 앞 작은 숙소에서 정주행 했던 기억이 난다. 셜록 홈스는 한번 손을 대면 끝장을 봐야 하고, 그마저도 감질나서 에센셜이나 도일이 아닌 다른 작가가 쓴 후속작까지 봐야 여운이 다스려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팬데믹과 함께 영어패치가 완성되면서, 재난지원금으로 영어원서 수집을 시작했다. 일부 인생책만 남기고 통째로 비운 서재가 재건하게 된 계기였다. 지금 내 서재와 팬트리(!)에는 국내서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2020년에 리셋한 책수집 초기에는 영어원서가 더 많았다. 이제 국내 서점의 원서코너에 있는 읽을만한 책의 상당수를 소장하고 있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 그중 가장 두꺼운 두 권이 셜록 홈스 전집의 상, 하권이다.
순서대로 장편 두 작품과 단편집을 읽다가 에드거 앨런 포로 잠깐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단편은 묶음을 완주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고 영어판은 읽을 때 치밀하게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자꾸 흐름이 끊긴다. 팬데믹 3년 동안 영어책 위주의 독서 생활을 한 것에 대한 보상을 하듯 2023년에는 국내서에 환장하는 책수집가로 거듭나는 바람에 현재 영어책은 좀 뒷전이다.
셜록 홈스 영어판을 휴독하는 대신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살아 움직이는 셜록을 연기한 영국드라마 <셜록>과 <에놀라 홈즈>를 비롯해 셜록이 등장하는 영화 시리즈들을 섭렵했고, 컴버배치가 보다 퀴어하게 등장하는 <이미테이션 게임>도 봤고, 덕분에 올해 개봉한 <오펜하이머>는 좀 싱거웠다.
한편 이십 대 후반, 과외 학생의 책장에서 우연히 소개받은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후 몇 년을 싹쓸이했다. 올해 출간된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리뷰에서도 밝혔듯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만 50권 이상 읽었다. 이 독서치료는 독서할 기력조차 없어서 퇴근 후 TV를 마주하고 늘어붙기 전까지 아주 유효했다. 세상에 적절하게 발 붙일 곳 없었던 시절, 퇴근하고 히가시노 게이고를 읽으면서 차곡차곡 책꽂이를 채워나가던 시간들이 내게는 나만의 세계를 설계하고 그곳에 내 자리를 만들어가는 날들이었다. 내가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장 속에서 관찰했다.
작가를 덕질하기 시작하면 뻔질나게 책방을 드나들게 된다. 살사 악보를 구하려고 인터파크에서 해외 주문도 해본 나였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다 읽으면 바로 다음 책을 구입해서 오늘 밤에 읽어야 하는 마약 같은 책이었고, 적어도 주 1회는 서점에 가야 했다. 망원동 한강문고에서 주는 금액별 쿠폰이 쌓여갔다. 수업 교재 탐색도 할 겸, 서점에 가는 날에는 일본 소설 신간을 둘러보고 여유가 되면 기타 외국 소설까지 기웃거리는데 그렇게 알게 된 북유럽 스릴러 작가 두 명이 인생 작가가 됐다.
고(故) 스티그 라르손이 10부작으로 기획하고 그중 3부작을 유작으로 남긴 스웨덴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의 1-3권은 지금도 공식적인(?) 인생책이다. 팬데믹 3개월 차, 영어 눈트임 성공을 확인해 준 책도 밀레니엄 1권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영어판이다. 이 작품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영어패치가 생긴 것을 스웨덴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이 책으로 확인했다.
인스타그램에 박제한 그때 그 순간의 짜릿함을 가끔 소환한다. 스토리 하이라이트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2020년 4월 5일의 피드에 '스웨덴어는 30년은 안 걸리겠지.'라는 캡션과 함께 밀레니엄 1권 영어판 사진이 남아있다. 그 해 4월부터 연말까지 3부작을 완독하고 아직 서평을 체계적으로 쓰기 전에 다른 책으로 관심을 돌려서 아직도 밀레니엄 3부작의 공식 리뷰는 없다. 대신, 그 연말에 네이버 블로그를 리부트 하면서 밀레니엄 3부작의 국가별 제목 비교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한 미국 영화를 포함해, 원작도 영어판 제목만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인데 이어지는 2, 3권의 제목도 라임을 맞추었다. 한국어판은 1권만 스웨덴어판 원서 제목을 번역했고, 2, 3권은 영어판 제목을 번역했다.
고(故) 스티그 라르손의 유작을 한국어판으로만 4회독했다. 고인의 돌연사로 인해 원치 않았을 저작권 상속이 이루어졌기에 최소한 다른 작가가 이어받은 밀레니엄 시리즈의 후속작은 읽지 않기로 했다. 대신 생존 작가 요 네스뵈를 읽었다. 지금도 생존 스릴러 작가 중에서는 1순위이고, 소설가 전체로 확장해도 요 네스뵈가 차지했던 생존 최애 작가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작가는 베테랑인 엘레나 페란테와 마거릿 애트우드밖에 없는 것 같다.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한참 춤에 미쳐있었을 때 주말의 댄스파티를 포기할 정도로 마력이 있었다. 지금은 다른 작가를 더 만나고 덜 재미있는 책도 읽어야 하기 때문에 그 마력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한국어판을 소장하고 있었다면 아마 오늘 이후로 한동안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스토리에서 잠적하고 요 네스뵈 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이미 처분했다. 이런 과감한 서재정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확장된 버전의 책수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어판이 늦게 출간돼서 영어판을 구입한 국내 요 네스뵈 덕후들의 은혜로 중고 영어판 두 권을 확보했다. 대표작 <스노우맨> 직전의 이야기, <리디머>는 밀레니엄 3부작 영어판을 완독하고 읽었는데 벌써 3년 전이라 기억이 흐릿하고, 비교적 최근의 작품인 <폴리스>는 아직 읽지 않았다.
수능 성적표가 나오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을 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가 연달아 개봉했다. 여태껏 합법적으로 청불 영화를 보게 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열아홉 소녀에게 <해리 포터>는 흥미를 끌지 못했다. 소녀는 빨간 영화만 골라서 보다가 더 이상 볼만한 빨간 영화가 없어서 <반지의 제왕>을 봤다. 대학에 가서도 이어서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봤고 특히 2003년에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봤다.
해리 포터와 판타지 미드 모음을 리뷰한 2021년 설날의 OTT추천 포스팅에 의하면 2020년 연말에 왓챠에 등장했던 해리포터 시리즈를 정주행 하고 바로 입덕했다고 한다. 한 살 연하인 <길모어 걸스>의 로리 길모어를 할머니 시점에서 관전할 나이가 됐기에 <해리 포터> 시리즈의 론과 헤르미온느를 그야말로 조카들 크는 것을 보듯이 보게 됐던 작품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원작 소설의 탄생 비화, 저자 조앤 롤링이 J.K. 롤링이라는 필명을 쓴 이유, 그녀의 호모포비아적 발언 등 작품 외적인 이슈도 많기 때문에 영어판 소설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던 마당에 전집 할인찬스를 놓치지 않고 득템했다. 하지만 빠른 낭독 트레이닝을 위해 1권을 완독한 후 2권 1챕터에서 무제한 휴독을 하고 있는데, 어차피 다른 책들도 다 쉬고 있던 시점에서 거의 마지막에 가까운 휴독이라 <해리 포터>만의 잘못(?)은 아니다. 사족을 달자면 <해리 포터>와 <파친코>는 영어로 읽었을 때 속도가 느려지는 것에 비해 지적 성취감이 별로 없어서 약간 실망한 작품들이다.
마지막으로 휴독하고 있는 <코스모스>의 경우 지적 성취감은 최상위인데 국내서 서평 등으로 그냥 바빠서 쉬고 있다. 영어 독서를 쉬는 와중에도 영어로 영감이 떠올라 영시를 가끔 쓰게 됐다. 정말 가끔이지만 그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아 10월부터 에드거 앨런 포의 시를 짧은 순서로 필사하는 중이다. 이렇게라도 단어가 아닌 문장 단위의 영어를 들이마시려고 발악하고 있다. 어렵게 몸에 붙인 영어라 너무 멀어지면 불안하다고 해야 할까.
판타지 덕심에 불을 지른 건 <반지의 제왕>도 <해리 포터>도 아니었다. 디스토피아는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판타지에 해당하는 미국드라마 <섀도우 헌터스>가 있고, 이 작품 역시 원작이 소설이다. 뉴욕 배경의 <섀도우 헌터스>와 뉴욕의 평행 우주에 있는 <고담>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봤는지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둘 중에서 먼저 알게 된 작품은 가수 은지원 님이 추천했던 <고담>이었다. <고담>, <섀도우 헌터스>로 이어지는 어반 판타지 덕질은 뉴욕 여행과 시너지를 일으켰다. 어쩌다 뉴욕 덕후가 됐는지 생각해 보면 또 기나긴 연결고리가 뿌리째 드러날 것 같으니 판타지라는 소주제로 돌아오자.
용두사미 <고담>의 여운을 달래려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도 봐야 하는데, 여성 캐릭터들은 <고담>에서 매력적으로 등장한다. 이외에도 만화책 원작의 판타지 서사들이 성공한 사례가 많고, 디스토피아 소설이 영화화된 대표적인 사례는 <헝거게임> 시리즈다. 꼭 영상화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많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보다 영화의 쇼츠를 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영상화가 '기대되는' 원작을 읽고 쓴다는 것은 상업적이라는 평가를 감수할만한 상업적 가치가 있다.
작가가 꼭 배고파야 할 필요는 없다.
본격적으로 디스토피아와 과학 소설의 영역을 헤엄치기 전에 작품성과 대중성, 장르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국가대표 작가들을 소환해 보자. 세계를 뒤흔든(?) 한국작가 정보라와 천명관은 약간 성인용 전래동화를 판소리 버전으로 능청스럽게 풀어낸다.
동유럽 문학에 정통한 정보라 작가의 부캐(?)에서 탄생한 호러 판타지는 한 맺힌 한국인과 한국동물의 정서가 실크로드를 타고 전세계로 퍼져나갈 것만 같은 전설의 느낌이 강하다. 어쩐지 조금은 판타지했던 김별아의 <미실>을 품었던 대하드라마 <선덕여왕>의 어린 시절 덕만공주가 생각나는 작품들도 있다. 안톤 허의 번역서 <Cursed Bunny>가 부커상 숏리스트에 오르기도 했고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정보라 월드의 스케일이 독특한 아픔과 쾌감을 동시에 울리는 작품이 많다.
한국어판 원서(?)인 <저주토끼>와 묘하게 덜 한국적인 <여자들의 왕>에 이어서 올해는 셀프 생일선물로 펀딩한 <한밤의 시간표>까지 읽었는데 귀신이야기를 특히 좋아하는 것이 아님에도 정보라의 호러에는 한없이 빨려 들어갔다. 어린 시절 한국 전래동화를 비롯해 국가별 민담 시리즈를 탐독했던 조금은 괴기한 동심을 되찾은 듯한 반가움도 느꼈다. 책쇼핑과 산책에 정말로 중독되기 시작한 올여름, 정보라의 다른 책도 구입했지만 또 다른 작품이 부커상 후보에 오르면서 역주행을 해서 바로 읽어봤다.
천명관 작가가 내 또래였을 때 집필한 <고래>가 거의 이십 년 만에 재조명을 받았다. 그의 독특한 이력이나 마르케스를 변주한 화법까지도 너무나 취향을 저격했으나, 세대차이(?) 비슷한 것도 느껴졌다. 길고, 만연체에, 재미있고, 감동과 슬픔, 게다가 <저주토끼>와도 일맥상통하는 한과 저주가 담겨있는 그의 작품은 대체로 너무 내 취향인 만큼, 옥에 티도 있었고 모두의 취향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고래>를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원서와 함께 주문하는 바람에 오래 기다린 만큼 고진감래의 성취감이 있었다. <고래>를 기다리며 도서전에서 구입한 호러와 스릴러를 읽고 잔뜩 독서력이 올랐기에 <고래>를 펼친 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탐독할 수 있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구역의 또 다른 인생작가다. 비영어권 번역서 고전을 리부트하게 된 계기는 12년 전에 동생 찬스로 할인구매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서도 문제작인 <마담 보바리>를 읽었기 때문이지만 마침 그 타이밍에 민음사 카탈로그가 나와서 오래 쉬었던 번역서 수집에 발동이 걸렸다. 그렇게 새로 들인 책이 <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와 <이방인>과 <백 년의 고독>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미 리베카 솔닛을 통해 산책덕후 영국언니로 각인된 존재였는데, 그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산책덕후 한국언니'라는 필명까지 지어버렸다. 한편 가벼운 통독이나 하려고 잠깐 펼쳐봤다가 코를 처박고 밤을 지새우게 한 책은 다름 아닌 <백 년의 고독>이었다.
일명 고인물인, 오래된 살사 피플에게 너무도 익숙한 단어인 '마콘도'가 <백 년의 고독>의 배경이 되는 콜롬비아의 '평대'다. 그보다 천명관이 한국의 '마콘도'를 '평대'라고 설정한 것이겠지만. <고래>를 읽었지만 무슨 헛소리인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면 <백 년의 고독>을 읽고 교차대조를 해봤으면 좋겠다. 전체적인 완성도를 비교할 짬은 안되지만 아무래도 <백 년의 고독>이 번역서임에도 매끄럽다고 느껴지는 한편, 마르케스가 폐쇄적 부계 사회를 교묘하게 풍자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천명관은 대놓고 부계를 건너뛴다.
<고래>의 금복이 고래 같은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남자들의 손을 타기는 했지만 그녀에게 결정적인 종잣돈을 마련해 준 건 다름 아닌 추녀 노파였다. 게다가 정자의 출처가 불분명한 고래 같은 딸 춘희는 양부의 보살핌을 받기 전까지 거의 코끼리의 딸처럼 성장했다. 고래와 대비되는 코끼리는 모계 사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백 년의 고독>에서 주로 이성을 거느리거나 정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주체가 이 집안의 남성들로 설정된 것을 보기 좋게 비웃듯, <고래>의 여주인공 금복은 자신의 결정으로 파트너 역할을 맡은 남성을 교체하거나, 중복시키거나, 심지어 남편을 분가시키고 젊은 여성을 새 애인으로 들이기까지 한다.
디스토피아를 영화로 배웠지만, 디스토피아인 것도 모르고 읽었던 <시녀이야기> 시리즈를 집필한 마거릿 애트우드를 독서계획의 중심에 놓게 됐다. 최애 배우인 가브리엘 만의 필모를 통해 미드 <매드맨>으로 흘러들어가 여주 엘리자베스 모스가 겹치는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을 보다가 이미 구입해 둔 후속작 <증언들>을 마저 읽고, 애트우드의 서문이 추가된 <멋진 신세계>까지 읽었다.
디스토피아의 원탑(?)으로 손꼽히는 <1984>를 작년 12월에 읽으려다가 해가 바뀌어 영어를 점점 놓게 됐고, 오래 벼르고 있던 애트우드의 아주 두꺼운 에세이 모음인 <타오르는 질문들> 번역서를 읽고 있다. 판형만으로도 모든 책을 압도하는 이 벽돌 에세이는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데, 아직 100페이지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비슷하게 뿌듯하지만 진도가 안 나가는 다른 벽돌에 연달아 펀딩을 하는 바람에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읽는 속도와 별개로 오래 벼르고 있던 북유럽 스릴러인 마르틴 베크 시리즈 1권과 페터 회의 작품 중 지인의 추천작인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도 구입했다. 그뿐인가. 올해 안에 입문하려고 벼르고 있던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시리즈 1권과 가장 성공한 디스토피아의 원작인 수전 콜린스의 <헝거게임> 1권은 또 원서로 구입했다. 영화로 입문한 시기도 <헝거게임>보다 앞서는 <다이버전트> 시리즈는 구입 전이다.
오래전에 읽고, 영화는 굳이 시도하지 않은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판타지로 분류해야겠지만 최근에 후속작이 나와서 재주행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인데 우선 책을 나르는 문제가 남았다. 과학소설의 계보의 역추적도 필요하다. 단편 앤솔로지를 통해 취향저격을 당한 허버트 조지 웰스는 우선 단편집을 장바구니에 넣어두었으나 거장의 대표작도 읽어야 하고, 비교적 최근까지 읽었던 <코스모스>와 함께 구입한 <듄>의 경우 조금 읽고 휴독한지 오래되어 처음부터 읽어야 할 것 같다.
영어권 작가의 원작은 가급적 영어판을 구입했는데 그로 인해 쌓이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빠르지만 해치우는 속도는 한없이 늘어지고 있다. 펭귄 클래식 영어판을 야금야금 모으면서 비영어권 작가의 한국어판 번역서도 때로는 충동적으로, 하지만 대개는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구입하는 중이다. 올여름부터 쓰고 발행하는 글의 양이 대폭 늘어서 한동안 독서량이 지지부진했는데 사놓은 책을 해치울 겸 창작의 땔감도 필요하기에 추석 전후를 기점으로 독서량 또한 대폭 늘리고 있는 중이다. 아직까지는 구입 속도를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따라잡고 있는 분야가 한국 작가의 소설이다. 외국 작가의 번역서조차 반년 전 생일 선물로 받은 책부터 잔뜩 밀려있다.
흥미로운 장르 문학을 두루두루 섭렵하겠다는 욕심이 과한 걸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 버리지도 못하겠다. 계독을 중시하는 편이라, 시즌별로 꼭 읽어야 하는 책과 케미가 좋은 책을 리뷰하려고 키워드와 이왕이면 표지 디자인까지 물 흐르듯이 연결될 수 있도록 무수한 계획 변경을 하는데 그렇게 계획한 책들 중에서도 중간에 막히거나, 예상보다 빨리 읽어버리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리뷰는 리뷰를 작성해야 리뷰가 된다. 그러니까, 리뷰를 하겠다는 계획이 충분해도 리뷰를 업로드하는 그 순간까지 어떤 리뷰가 생성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본격적으로 리뷰다운 리뷰를 하고 다독을 시작한 작년에 생일 선물로 받아 한국 작가의 컴백을 알린 김초엽의 대표작을 시작으로,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 드디어 손에 넣은 조예은의 대표작과 외국 작가를 보려고 서울국제작가축제에 다녀와 그 후기에 '좋아요'를 남겨주신 황모과 작가의 작은 노벨라까지 읽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쟁쟁한 한국작가들은 리스트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보다 그때그때 필요나 끌림에 따라 약간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편이다.
구간을 노리고 있다가 신간이 나와버려서 신간을 먼저 구입하거나, 연달아 두 권을 구입하기도 하는데 소설 중에서 2020년 이후 세 권 이상 구입하고 읽어 본 한국 작가가 정보라 이외에는 없는 것 같다. 단 한 권으로도 충분한 영감을 넘겨준 강화길과 박연준, 이서수 등의 작가들도 마음은 정주행을 하고 싶은데 아직 맛보지 못한 작가들이 훨씬 많으니 실행이 쉽지 않다. 심지어 이미 사놓고도 이제나 저제나 다른 작가들과 계속 밀당을 해야 하는 정보라의 네 번째 책도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황모과의 두 번째 책도 밀려있다. 아무래도 읽어 본 작가의 다음 작품은 내년으로 넘어갈 확률이 크다.
남은 두 달 동안 집중해서 해치워야 할 책은 수상작품집을 포함한 앤솔로지, 정주행을 시작도 못한 한강 작가, 생일 선물로 받았기도 하지만 연초에 계획했던 이사벨 아옌데를 비롯한 세미 고전들, 충동구매한 박경리와 피츠제럴드다. 이 계획 또한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른다. 연재 에세이와 소설을 쓰다가 번아웃이 되어 서평 못쓰는 병이 재발할 수도 있다. 콤팩트한 2천 자 서평에 정착한 지 만 2년이 됐다. 책수집 리부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재작년에는 블로그에 서평으로 팔만대장경을 쓰다가 번아웃이 왔었다. 그때 서평 못쓰는 병에 잠깐 걸렸다. 아직 계획적으로 읽고 리뷰하기 전이었다.
책이 아무리 좋아도, 책 수다가 아무리 고파도 본문을 2천 자로 제한하고, 정 할 말이 넘치면 댓글로 추가하거나, 브런치 버전에 보충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서평 못쓰는 병을 고치고 다작하는 서평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책이 잘 읽히지 않거나, 다른 프로젝트를 완주하고 싶을 때는 서평의 비율을 줄여서 한 권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을 늘렸다.
장르와 비장르(?)의 경계에 있는 다채롭고 내공이 깊은 작가들을 많이 만나고 싶은 한편, 이미 내적 친밀감이 형성된 아는 작가의 작품을 더 많이 읽고 싶어서 오늘도 서평과 책수집 계획을 꼼꼼하게 점검한다. 장바구니에 있는 최진영과 윤고은을 그대로 둘 것인지 내년으로 미룰 것인지, 그건 결제의 순간이 와야 결정될 일이다. 한 번 실패한 최진영을 먼저 읽을지, 나에게는 새로운 윤고은을 먼저 읽을지, 두 책을 같은 날 시작해도 완독하는 순서는 완독을 할 때까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판타지, 스릴러와 로맨스가 적극적으로 등장하는 마법소녀 판타지 <레베카 스톤>을 쓰면서 폴리가미 디스토피아를 설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3년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코넌 도일X이다혜>의 저자이자, 독서에세이를 통해 인생 작가가 될 올리비아 랭을 소개한, 이다혜 작가의 또 다른 참고서인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을 봐버렸다.
나와 거의 똑같은 약한 고리를 익명으로 전세계에 수출한 작가, 페란테를 읽고 난 후 예전과 똑같은 창작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제라도 필명을 하나 더 지어야 하나? 페란테가 쏘아 올린 영감의 화살을 맞고 <구슬>이라는 단편을 충동적으로 썼지만 이 습작이야말로 앞으로 써야 할 수많은 구슬 중의 아주 작은 하나의 구슬일 뿐이다.
(계속)
*썸네일은 새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각색한 한국영화 <아가씨>의 스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