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겨울의 책방산책>
서점은 차가웠다. 문을 열어도 전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문을 닫아도 바깥 바람으로부터 보호받는 것 같지 않았다. 실내 공기가 차갑지는 않았지만 음습했고 무엇보다 문손잡이가 차가웠다. 실외의 문손잡이를 잡고 뼛속까지 시렸는데 실내의 문손잡이로 바꿔 잡아도 저릿했다. 날이 심하게 춥지는 않았다. 그저 이 건물 주위가 유난히 차가웠다.
지우가 자기 손이 차다는 걸 알게 되는데는 남들도 손이 충분히 차가워질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심장이 매우 뜨겁고 열이 많아서 거의 항상 더웠고 영하의 실외를 제외하면 반팔 생활이 가능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혈기왕성한 청춘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도 추위를 대비해 무장한 상태로 난방이 가득한 실내에서 스스로의 다이나믹한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심장 주변이 땀으로 촉촉해진다. 행여 지각할까봐 전력질주라도 하게 되면 아무리 영하의 날씨에도 등줄기를 흐르던 땀이 겨울옷을 통과하지 못해 열기 가득한 상태로 반나절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도 손은 점점 차가워졌다.
영하 10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모자나 목도리를 하지 않아도 얼굴은 아무렇지 않았다. 겨우내 머리를 계속 길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손은 1분만에 차가워졌다. 세상 모든 한기가 손으로 모여드는 것 같았다. 손은 죽어도 살이 찌지 않고, 붓지도 않아 평생 최소한의 근육과 지방만 보유한 부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움직이지 않으면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기에 (다들 그렇지 않나?) 손발이 함께 차가워지는 경우는 예외로 하자.
발은, 특히 최근에는, 신발을 신고 걷거나 신발을 신고 있거나, 신발을 벗고 운동을 하거나 신발을 벗고 온돌이나 전용의자에 올려두거나 신발을 벗고 이불로 감싸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라 차갑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발이 이불 밖으로 나와 있으면 딱 그때만 차가웠다.
문손잡이에 체온을 뺏기고 좀비같은 얼굴로 입장한 서점에서 가장 따뜻해보이는 곳으로 걸어가는 동안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방처럼 조명이 가장 밝은 곳으로 이끌려갔을 뿐이다. 독서용 테이블이 있는 그 공간에 독서 중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지우는 한번도 그 테이블에 앉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 서점은 책을 읽는 독서 공간이라기 보다 충동적으로 혹은 계획적으로 읽을 책을 찾아서 가져오기 위한 창고, 또는 책을 찾는다는 핑계로 산책할 수 있는 실내정원에 가까웠다. 다양한 자세로 서서 책을 고르고, 서가 사이를 걸어다니고, 마침내 고르고 고른 책을 사서 가방에 넣고 또 걸어다니는 운동이 그녀의 일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부분이다.
책을 고르는 동안의 뇌세포는 훨씬 전투적일지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책등을 바라보며 몽상에 빠져있거나 눈을 뜨고 자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평화롭다. 그 평화로움을 연기하는 자신에 대한 만족감도 일종의 치유과정이다. 이 서점을 발견한 이후 다른 많은 괴로움과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삶의 질이 유지되거나 향상됐다고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입밖으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눈으로 수많은 단어를 흡수하는 그 시간. 입장부터 퇴장까지 그녀가 발음하는 단어는 단 하나의 음절이다. '네.' 이곳에도 무인계산대가 들어오면 그마저도 입말로 하지 않을 것이다. 지우는 이곳에서 하루종일 머무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책을 고르고나면 그 책을 소유하고 싶어져 탈출을 시도한다. '네.' 마법의 단어를 뱉고나면 사랑스러운 책이 내품에 안긴다. 그 순간의 희열은 다른 어떤 아름답고 비싼 물건의 소유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짜릿하다.
한가지 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서점은 어디서도 상당시간 이동을 해야하고 너무도 세계의 중심 같은 곳이라 자주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허나 가끔 그 최애서점을 방문해서 하루종일 머물렀던 날도 있다. 지금은 거의 외장하드의 외장하드가 되어버린 동네서점을 거의 매주 혹은 그이상 방문하기 때문에 대형서점에서도 쿨하게, 보고 싶은 구역만 볼 수 있게 되었다. 가끔 그 구역에서 지름신이나 검색신을 만나면 평화로움을 연기하면서 뇌세포의 세레모니를 즐긴다.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는만큼 특별하고 짜릿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