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겨울의 책방산책>
추운 지방과 더운 지방은 같은 인격도 다르게 발현시킨다. 스티그 라르손이 묘사하는 대장몬스터가 냉혈동물인 뱀 같은 자라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창조한 빌런은 불 뿜는 용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지우는 나도, 겨울과 여름에 성격이 바뀌는데 그들은 오죽하겠어, 라며 납득해버렸다. 뭐든 범주화하지 않기로 했는데 추운 날 추운 지방이 배경인 책을 연달아 읽다보니 뱀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많이 기다렸어요?"
어느새 뒤에 다가와 그녀의 사색이 비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석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시간은 그들이 약속한 세시에서 딱 1분 지나있었다.
"아니야, 방금 왔어."
"그러게요. 추우신 것 같아요."
지우가 몸을 녹일 시간은 충분했다. 그저 이 건물의 한기가 강할 뿐이다. 그를 만날 시간을 기다리다 마음이 급해져서 30분이나 일찍 와 있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을 그가 알아서 좋을 것이 없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고 또 주고도 생색내지 않아야, 그래야 보답을 바라지 않게 될 테니까. 석류를 생각하는 시간은 점점 많아졌고 '석류'라는 사고 주제의 점령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정말 편하고 괜찮은 (다른) 사람이 옆에 붙어있어도 답이 없다. 그러면 그야말로 심신분리, 유체이탈의 상태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건 그간 충분히 반복했다.
마음을 보여주는 게 낫지 않냐고?
글쎄. 적당히 좋아해야 생색을 내고 요동치는 마음 속까지 그대로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데 그 지나침이 지나쳐서 그럴 수 없다. 지나침이 지나쳐야 사랑이랬나. 그가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든 그저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사랑이랬나.
지우를 누나 친구라고만 생각하는 석류에게 "네가 세 시에 온다면 나는 두 시부터 나와 있게 될거야."라고 말할 수 없었다. 사랑과 우정사이의 딜레마일 수도 있고,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는 그 단어, 짝사랑의 딜레마일수도 있다.
석류가 처음 갤러리에 왔던 날을 기억한다. 지우는 그 날 일기장을 겸하는 플래너에 '뱀장어 체험'이라고만 적어두었다. 석류가 사방 30 센티미터 거리에 진입할 때마다 감전되는 듯한 상태를 요약한 표현이다. 말과 행동이 느려지는 것은 물론, 시선처리나 표정관리는 포기하는 게 낫다. 추상화가인 지우에게 그것은 차라리 마블링 같은 현상이었다.
마법이나 판타지, 영적 존재? 귀신 같은 건 지우가 끌어내기 난감한 소재였다. 직선과 단색, 그라데이션 위주였던 지우의 그림이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작품을 제작하고 모아두는 동안 원래 화풍을 기대하는 몇 안되는 고객들에게는 기존 작품이 한정판이 될 예정이라 가격이 오를테니 그 전에 선점하라고 했다. 주문제작은 받지 않았다. 새로운 화풍이 정착하는 동안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영감을 주는 석류를 어떻게 곁에 둘 것인가에 골몰했다.
석류의 친누나인 표고는 석류와 함께 살지 않는다. 표고를 통해 석류가 일하는 공연장을 알아낸 뒤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고를 따라 그곳을 방문했다. 장소가 너무도 마음에 들어 단골하겠다는 의지를, 모두가 볼 수 있게 골고루 전시했다. 전시가 업(業)인데 이 정도 쯤이야. 표고도 지우와의 시간을 가장 좋아했기에 지우가 공연장에 가고 싶은 듯한 암시를 보내면 흔쾌히 앞장섰다. 그러다 표고가 부재중이 되어도 지우는 석류의 귀빈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영감의 원천이라 석류를 아끼는 건 아니었다. 그를 자원처럼 아껴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과잉섭취할 수 없었을 뿐이다. 옆에 있으면 정신을 못 차리고 옆에 없으면 불안하다. 마약이 따로 없네.
벽에 걸기 좋은 소담한 달력 사이즈 10점을 완성하고 대형 캔버스에 작업했다. 큰 그림을 그리는 동안, 석류를 자주 만나지 않아도 집중이 잘 되었다. 지우가 3주 이상 공연장을 찾지 않았더니 석류에게 카톡이 왔다. 공연장을 곧 방문하겠다는 형식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언제 오냐고 묻는 대신 석류는 지우가 사는 동네의 맛집을 꼭 와보고 싶다고 했다.
그럼 와야지. 일요일에 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