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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Apr 28. 2024

그녀를 발견하는 법

단편소설 <겨울의 책방산책>

그들이 방문하기로 한 식당은 4시에 영업을 시작하는데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늦어도 3시 45분에는 줄을 서야 첫 사이클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동네 친구가 달리 없기에 (언제는 있었나?) 혼밥 전용식당이나 분식집, 카페를 전전하는 지우는 오랜만의 데이트가 생경했다. 블로그 주인의 프사 관상을 보고 세 명을 골라 해당 식당의 리뷰를 훑어보니 웨이팅을 1등으로 해봐야 직원이 선주문을 받는 시점은 오픈 10분 전이니 그 전에만 가면 큰 차이가 없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다만 3시 50분에 맞춰서 도착했다가 만석이 되어 30분 이상 더 기다려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식당줄에서 석류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식당에 가기 전 차를 마시는 것도 어색했다. 항상 어둡고 배경음악이 가득 차있는 곳에서만 바라보고 대화했던 사람과 벌건 대낮에 밖에서 보는 것은 상당히 눈부신 괴로움일테다. 지우는 묘안을 냈다.


어차피 일요일 3시 쯤에는 (적어도 이상적인 일요일의 계획에 의하면) 참새방앗간인 애착서점에 있을 것이다. 석류도 그때 그 책방으로 오면 된다. 석류가 늦어도 초조함을 완충해줄 수 있는 지우의 원래 루틴 안으로 초대한 것이다.




동굴같은 이 서점에도 눈부신 중앙 무대가 있지만 지우는 앉을 생각이 없고 (굳이 앉아본 적도 없고) 테이블 근처의 서가를 탐색한다면 조명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을 것이다. 그의 예상 도착범위인 3시 전후에는 동굴의 입구와 스포트라이트 사이의 적당한 통로에 자리를 잡을 예정이다. 치밀한 계획은 아니고, 이미 30분 전에 도착한 그녀는 밝은 쪽 통로부터 순차적으로 두 칸에서 세 칸 정도 물러나 있게 된다. 가장 숨기 좋은 구간에 숨어있었는데 1분 만에 그녀를 찾아낸 것으로 보아 석류에게는 대단한 촉이 있거나, 이미 5분 전에 도착해서 서점을 한바퀴 돌고 온 것 같았다. 혹은 그도 30분 전에 와서 어딘가에 숨어있었을까? 당연히 지우가 없을거라 생각하고 책을 보다가 시간에 맞춰 그녀를 찾아나선걸까? 지우는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석류는 정문으로 들어와 성큼성큼 중앙 통로로 걸어왔는데 양쪽 통로를 스쳐지나가다 눈꼬리에 지우의 옆모습이 포착됐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지우의 귀는 멀리서도 독특한 실루엣을 가진다. 그보다는 귀와 머리카락이 이루는 조화가 그녀의 얼굴만이 아닌 전체적 용모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한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대체 출입국 관리소에서는 기껏 귀가 보이는 여권사진을 보고도 왜 본인확인을 못하는 걸까? 눈코입, 특히 눈과 코는 사진이 쉽게 왜곡하고 그 때문에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녀가 고르고 고른 프로필 사진조차 실물이 가진 매력의 20 퍼센트도 반영하지 못한다고 석류는 생각했다. 일단 지우는 3D 움짤 또는 라이브로 봐야하는 꽤나 역동적인 사람이고, 정면보다는 후면, 앞뒤 45도나 측면이 그녀의 핵심에 빨리 접근할 수 있는 구도였다. 석류가 그녀의 몸매를 감상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몸매가 관찰대상이나 존재감의 전부는 아니다. 그동안 그들의 마주침은 석류가 서빙을 하고, 지우가 앉아서 (무대 혹은 석류를) 관람하는 관계였다. 당당하게 관찰할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쪽은 지우였다. 석류는 통로에서 그녀의 실루엣을 눈꼬리로 포착하는 것에 익숙했다. 상대적으로 환한 서점에서 지우를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지우를 놀래키고 싶지 않아서 작은 통로로 들어갈 때는 바로 다가가지 않고 입구 쪽 서가에 있는 책을 보는 척 하며 잠시 머물렀다. 석류는 책을 진득하게 읽어본 적이 거의 없지만 좋아하는 책은 있었다. 책에서 탄생했거나 재탄생한 캐릭터 중에 좋아하는 인물이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가 있었다. 취향이 있었다. 지우가 한 칸 옆으로, 석류가 있는 통로 입구 쪽으로 이동한다. 석류는 지우와 등을 돌린 상태로 반대편 서가를 보고 있다. 그녀가 책을 한 권 뽑아든다.


석류도 한 칸 옆으로, 그녀 쪽으로 이동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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