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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Oct 21. 2024

에필로그

원하는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내가 너무 달라 계속해서 마음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면 자아상뿐만 아니라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그 욕구들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 결정>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고 퍼스널 스페이스가 무의미한 동거인들과 부대끼는 것이 끔찍해서 홀로 완전하고 싶었던 강유는 어떤 슈퍼 개인이 되는 대신 감정과 사유를 자급자족함으로써 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다. 자신의 존재란 타인에게 비추어진 관계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그 타인에는 소설 속 화자나 화자에 밀착되어 있는 저자도 포함된다. 강유는 책 속에서도 충분히 주체적이고 선명한 경험을 하고 있다. 책 속의 이야기와 중첩되는 자신의 청년기를 반복해서 회상하는 동안 그녀 자신의 이야기가 가득 차 넘실거리는 걸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우성은 강유의 새로운 직장인 카페 근처에서 독립극장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온라인 플랫폼에서 크리에이터로 성장해온 동력에는 상업영화의 역할이 상당하지만 강유는 자신의 취향을 안다. 그 영화인들이 세계적인 감독과 배우가 되기 전부터 추구해온 것들과 더 많은 이야기들, 이야기되지 않은 것들을 찾아서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우성이 채집해 온 새로운 영화들은 강유에게도 새로운 영감으로 작용했다.




복선은 입시의 수단으로 견디는 공부를 넘어서 과정 그 자체가 즐거운 공부의 맛을 알게 되었다. 영어에 더 이상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된 순간, 영어로 된 드라마와 소설은 비로소 원래 기능인 엔터테이닝에 충실해졌다. 원어민처럼 태아시절부터 노출되지 못한 대신, 물 건너 온 영어 콘텐츠를 거의 평생 끼고 살아서 마침내 그 리듬과 바이브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복선은 영어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부러웠으나 복선을 부러워만 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고 싶은 상태를 쉽게 깨지 못했다. 되고 싶은 상태는 정적이다. 되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라면 되어가는 과정으로 바꿔야 한다.


복선은 강유가 떠난 극장에서 조금은 지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고 강유를 통해 우성이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손에 익은 일을 조금 더 계속할지 위험부담을 안고 덕업일치에 조금 더 가까워질지 선택해야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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