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자아분열 에세이: 명랑한 나의 아바타
명랑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스스로 우러나오고 때로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명랑함과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의 어둠을 가리기 위한 명랑함. 아마 다른 종류도 있겠지만 크게 보면 이 두 가지로 분류가 될 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냥 명랑함과 사회적 명랑함.
어린 시절에는 그냥 명량함이 지배하는 사람이었으나, 그 캐릭터가 딱히 좋아서라기보다 그 캐릭터로 사는 것이 익숙하고 편해서 점점 사회적 명랑함이 지배하는 사람이 되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 거의 100% 사회적 명랑함의 화신이었다.
나는 거의 혼자 지냈고 종종 울거나 멍을 때렸지만 내 아바타와 페르소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종달새처럼 지저귀고 정신적 맥시멀리즘을 자랑하고 옛날 사진에 타임슬립을 하여 지나간 시절의 '그냥 명랑함'을 소환했다.
구체적인 아픔과 슬픔의 인과관계, 사건들을 가끔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전의 나는 그렇게 사연을 전시하는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그 사연의 주요 인물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내 아바타가 승인을 해주지 않는다. 사회적 명랑함에 대해 고백하고자 하는 나의 심연은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도 말하고 싶어 하지만 그 사회적 명랑함을 유지하게 해주는 아바타와 페르소나는 대외적으로 적당히 도도하게 명랑하고 남 시선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남 시선 신경을 쓰고 그걸 숨기는 맛으로 사는 철저히 계산된 캐릭터이다. 점점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계산을 내가 하는 건지, 내 아바타가 하는 건지.
그러니까, 인기에 집착하는 욕망 자체가 내 것인지 내가 만든 캐릭터 또는 사회적 자아의 독립된(?) 성격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1년, 아니 3년은 그렇게 살았나 보다. 사회적 자아에게 많은 부분을 위임했다. 넌 하던 대로 인기와 명예를 추구하고 세련된 자랑을 해서 자랑 욕구를 풀어. 난 사실 그런 거 없어도 책이나 미드, 정 안되면 게임으로 현실도피를 해서 슬픔을 삭이고 남들 신경 안 쓰고 싶어. 그냥 될 대로 됐으면 좋겠어. 뭐야 나 이중인격자야?
<구테로이테>는 독일어로 '좋은 사람들'이라는 뜻의 커피전문점 브랜드이다. 거의 유일하게 듣기보다 읽기를 잘(?) 한다고 생각했던 독일어도 이제 유효기간이 끝나간다. 리부트를 해야겠다.
<구테로이테>라는 이 카페 또는 커피 바는 뉴욕 맨해튼 터미널(그랜드 센트럴, 포트 오소리티, 펜 스테이션 등)의 주변에서 출퇴근길의 커피 한 잔을 했던 기억을 불러주었다. 그러니 이게 독일어... 인가?라고 뇌가 뜸을 들일 수밖에. 입구는 강남스타일 (또는 합정역과 왕십리역이 대표적인 수도권의 흔한 주상복합건물 스타일)이었는데 내부는 좀 맨해튼 미드타운 스타일 (또는 조금 잘 나가는 미국의 대도시 유동인구 많은 지역 스타일)이네?
가보고 싶은 로컬 카페가 많고 아직 투어의 욕구가 짱짱할 때 가야겠다고 결심한 곳이 많다. 하지만 '분쇄 원두 또는 드립백'을 취급하는 곳 중에서 너무 프랜차이즈 아닌 곳을 고르다 보니 이곳이 새 동네 카페 투어의 (스벅, 이디야를 제외한) 두 번째 스팟이 되었다. 첫 번째는 완전 내 스타일이라 안알랴줌.
두 곳의 자세한 위치 정보는 DM으로 문의하시는 것을 추천한다. (반공개/비공개 정보를 요청하는 DM이 가능한 채널은 프로필의 인스타 계정과 조금 느리겠지만 이메일을 포함한다.)
인친*님들의 글을 보다 보면 '문의가 많아서 알려드려요'와 같은 포스팅이 많다. 나도 문의라는 것을 받긴 받지만 '문의가 많'거나 필요 이상의 DM으로 고생한 적은 거의 없어서 (외국 스팸 메시지 제외) 그런 포스팅을 보면 오해를 했었다. 정말 문의가 많거나, 해당 계정 주인이 타인에게 조금 민감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의 워딩을 내 방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지금 DM 많이 받는다고 자랑하는 거야? 또는 DM이 얼마나 많길래 (누가 봐도 많을 법한 셀럽 제외) 이렇게 호들갑이야?라고 생각했었다. 새삼 이런 부끄러운 속내를 고백하는 이유는 내가 '문의 주세요/문의 환영'이라고 메시지 수신 의사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도 실제로 메시지를 주는 분들이 없거나, 있더라도 원래 메시지를 주고받던 인친님들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인친: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친구, 일반적으로 연락처 연동으로 맞팔하는 실제 친구는 제외
나는 DM을 달라고 해도 못 받는데 어떤 사람은 DM이 (악성 메시지 제외) 너무 많아서 고통을 받는다고 하니 아이러니를 느낀 것이다.
인기에 투자하는 사회적, 정신적 노력과 실제의 인기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2001년까지의 모든 반장선거에서 완패(?)함으로써 처절하게 겪어왔지만 그때의 나는 '사회적 명랑함'을 장착하기 훨씬 전이었다. 그 전에도 연관된 많은 역사적 사건이 있었지만 그 후로 20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어느덧 두 배의 시간이 누적되었다. 전반전은 주체할 수 없는 '그냥 명랑함', 그 개성과 다른 특성의 조합에 의해 늘 불안했던 20년이다. 파고들면 후반전에 이어 지금까지도 벗어나지 못한 트라우마들이 생성된 시기이다. 후반전은 사회적 자아가 결정적인 시기였으니, 사회적 명랑함이 점점 실체와는 독립적인 캐릭터를 형성하고 '대신 반응하는' 법을 학습했던 20년이다. 그렇다. 나는 이십 대가 되어서야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른들의 세계에서 냉정하게 대처하지 못한 적도 많았다.
생각의 조숙함과 처세는 별개이다. 어떤 사람은 타고난 사회성과 눈치, 쉽게 사랑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자아를 개발한다. 오랜 시간 그런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살다 보니 나름의 원한이 생겼지만, 사회적 자아를 어느 정도 성숙시켜보니 그들의 고충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는 충분히 사랑받았고,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으며, 그저 지역 리그가 아닌 세계 무대에 서 보고 싶었으나 인프라가 부족해서 불특정 다수의 관심에 목말라했던 꼬마였다. 그러니까, 신문에 나오는 천재들과 위인전에 수록된 위인들의 삶에 감정 이입하면서 동네 꼬마들의 일상다반사는 너무 쉽게 스킵했던 것이다. 또래집단에 대한 적응도가 형성되지 않았다. 기억이 비교적 또렷한 4학년 이후 내가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상대방은 모두 성인이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성인이 되는 시점이 온다. 내가 성인이 됨으로 내 또래집단 전체가 성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행인가 불행인가.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학업성취도로 재편된 대학사회에서 나의 그냥 명랑함은 독보적이었다.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기 직전이었다. 예전부터 남몰래 아이돌 지망생이었던 나는, 어느새 '공인'이 되어있는 사회적 자아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을 과감하게 시도했고, 범생이 학교에서 스타가 되었다.
그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냥 명랑함이 소멸될 위기에 처했지만 사회적 명랑함을 장착하고 살아가게 되었다. 사회적 명예의 실추와 직결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가장 큰 위기가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사회적 자아가 모두를 살린 것이다.
*최근에 수입된 용어라고 하는데, 나는 2004년에 컬러리스트 산업기사를 취득하면서 퍼스널 컬러를 알게되어 퍼스널 브랜딩도 그쯤에 알게 됐다고 생각한 것 같다. 기억의 오류일 수도 있다.
돌림노래처럼 일련의 사건들이 반복되었던 이십 대를 다 써버린 뒤에는 명예에 대한 욕구가 급감했다. 이제는 인기보다 인간관계나 인생에 대한 내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무렵,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싸이월드 시대와는 다르게 쫀쫀한 온라인 인맥이 형성되었고 더 이상 가벼운 관계를 위해 발품을 팔 이유가 없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술자리의 대화보다, 페이스북에서 서로를 관찰하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본격적으로 사회적 명랑함을 스크린에 박제할 수 있게 되었다.
오프라인에서도 여전히 명랑했지만, 이 캐릭터는 지인 전용이 되어갔다. 명예욕을 많이 버렸기에 특히 불특정 다수에게 친절할 이유가 없었고, 특히 감정노동이 저평가되는 이 사회에서 친절한 캐릭터는 본인뿐만 아니라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예를 들어, 젊은 여성 등으로 포괄되는) 다른 구성원까지 피곤하게 한다. 차라리 까칠한 캐릭터가 낫다.
소셜 미디어는 놀라울 정도로 없던 가식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어른들의 세계에 적응하는 동안 온라인 자아가 단련되어서 (정말 호되게 단련되었다.) 그 연장선에 있는 사회적 자아가 비로소 제 구실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더 핵심적인 단련 과정이 추가되는데, 또래집단보다도 적응하기 어려웠던 조직 생활, 즉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도 결정적인 레벨업을 하게 되었다.
직장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가식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돈으로 환전하는 곳이다. 가끔 젊은 남성분들이 '사회생활력'에 대한 감탄을 본인도 모르게 내뱉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감정노동을 강요당하는 여성으로 너보다 비슷하거나 오래 살면 저절로 탑재되는 수준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고, 그저 칭찬에 대한 보답으로 감사인사를 한다. 그러나 또래집단, 특히 여성이 다수로 이루어진 집단에서는 나의 사회적 명랑함이 힘을 잃는다. 이 세계는 좀 더 복잡하고 세부 요소가 많은데, 나는 그 작동원리를 잘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