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자아성찰과 성공실패담
계획덕후는 항상 계획이 있다. 돈과 명예가 극도로 밀착된 프로젝트를 맡으면 극J지만 본연의 상태에서는 극P이기도 한 ENTP에게는 항상 계획이 두 겹 이상 있다. 아주 원대한 계획과 부셔먹을 계획, 백업 플랜과 플랜 B와 플랜 C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계획까지. 이 중에 적어도 마지막 두 가지는 항상 불타오른다. 정말 우울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최소한의 생존신고만 하는 절전모드를 가동한다.
요즘 유행하는 MBTI를 은근히 비웃으면서도 맹신하는 ENTP 답게 부연하자면 내가 51% 외향인이고 P와 J의 사이에서 널뛰기를 하기 때문에(... 보시다시피 NT는 고정, 최근에 ST가 나온 적도 있지만 일시적인 변화이며 이 테스트의 결과는 피험자가 이십 대일 때 신뢰도가 높다고 한다. 빼박 ENTP이고 본의 아니게 얼리어답터였다.) 누군가의 외향성과 계획성은 겉보기와 다를 수 있음을 전제로 그 사람의 성격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외향인이 자신감이 넘치고 좀 더 살기 편하다거나(이와 비슷한 착각?을 했었다고 내향인인 캐럴라인 냅이 고백했다.) 우울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건 팩트다. (외향인도 우울하다, 그것도 많이.)
새해에는 뭘 계획하지? 이미 첫 번째 브런치북으로 여행에세이 30+챕터를 완성한 뒤, 이 프로젝트가 일회성이 되지 않도록 미리 계획해 두었던 후속작 두 편과 2024년까지 읽고 리뷰할 책들의 목록과 연말에 갑자기 충동적으로 쓰기 시작한 자아성찰 에세이(... 는 지금 쓰고 있는 글)에 인스타북(=보통사람을 위한 인스타 가이드북, 가제)까지 매일 한 과목씩 부셔야 할 프로젝트가 다섯 개인데.
뭘 '더' 계획해야 하나?
지난해 초, 그러니까 연말연시의 결산으로 지지난해에 읽은 원서 책탑을 자랑하면서 작성한 카피(?) 중에 '한국인의 3대 새해계획인 영어, 독서, 운동'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영어(리부트)는 7년 차이고 독서와 (서평이라기엔 찜찜한) 독서기록은 영어(집중학습 시간)때문에 하다 말다(on and off)했지만 2년의 벼락치기 후 만개한 3년 차이며 꾸준한 운동을 따로 안 하는 대신, 이 나이에 불가능한 레게통이 들어간 라틴댄스 공연을 한 달 전까지 했다.
이제 하산할 테니 다들 건승하세요!라고 하자니, 사실 나는 '자기개발을 위한 자기개발인'은 커녕 '그냥 자기개발인'도 아니다. 그저 취미가 보고 읽는 것인데 보고 읽는 것들의 언어가 많을수록 좋으니까 영어를 정복(?)했고 영어와 여행, 유학 준비 등으로 운동을 등한시하다가 코로나 시즌에 위기감을 느껴서 살사 리부트를 하려다 보니 2년에 걸쳐 서서히 댄서로 복귀(?) 한 상태일 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목표는 자기개발이 전혀 아니다.
덕심이 흘러넘치는 덕후의 덕질 대상이 우연히 '꿈의 자기개발 목록'과 일치(!)했을 뿐이다. 어떤 취미생활이나 자기개발(근데 이걸 꼭 해야 하나?) 카테고리에 추가로 도전할지 갑자기 고민할 뻔.
사실 안 해도 된다. (덕질을 계속한다는 전제로)
그러나 새해이기도 하고, 무언가 더 시작하기 좋은 시기가 아닌가. 인스턴트 갤러리인 인스타그램의 가벼움을 활용한 꾸준함이라는 좋은 성장 파트너가 생긴 덕분에 그 자체로 포트폴리오 기능을 하는 인스타 계정과 브런치북, 게다가 주기적으로 떠오르는 사골 키워드를 보유한 블로그까지 성장시켰다. 소셜 미디어의 위력을 아직도 반신반의한다면 굳이 설득하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는 묻고 싶다. 나의 10년 후와 당신의 10년 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마지막 2년이 모든 것을 역전시킬 수 있다. 나는 2년 만에 역전 가능한 이것을 10년 동안 5세트는 할 테니, 당신에게는 지금이 가장 큰 기회이다. Now is better.
콘텐츠의 탑을 쌓아 올리면서 한 달, 세 달, 반년, 일 년, 이 년 후를 수없이 상상했다. 따지고 보면 메가 인플루언서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진 않은 것 같다. 일단 나는 리뷰(라는 이름의 광고)보다는 나만의 콘텐츠(냅킨에세이)에 '완전히' 집중하기로 했고 당장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보다 진심으로 내용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들과 선의의 경쟁을 겸해 서로 이끌어주는 방향을 선택했다. 암묵적으로 이렇게 되고 싶은(그러니까, 이걸 지향한다!라고 떠들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혹하지 않는 사람들.
현재 쁘띠 인플루언서와 지망생들이 전문 리뷰어(소셜미디어 광고인 계열) 또는 내 작품에 집중하는 창작자(글, 그림 등 작가 계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별 대안이 없다는 것도 간파했다. 광고에 소질이 없으면 무조건, 창작을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광고비도 안주는 리뷰는 무료로 해주고 얼마 안 되는 팔로워들에게도 그렇다 할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물론 블로그 세계에서는 이런 다양한 진심 리뷰어 덕분에 고객들도 정보를 얻고, 소상공인들도 자발적 홍보의 혜택을 받지만 이미 인스타그램이라는 막강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관심자본은 이렇게 말한다.
나라는 퍼스널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라.
<보통사람을 위한 인스타 가이드북(가)>은 그 점에 대해 팩폭을 할 것이다. 당신은 왜 리뷰를 합니까? 왜 영향력을 가지려고 해요? 영향력, 또는 인지도를 대체 어디에 쓰려고요? 등등. 리뷰로 수입이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모두가 자기 글을 쓰고 (인스타 공략집 같은) 비결을 유료화할 수는 없을 테니. 하지만 장기적인 방향성은 꼭 필요하다. 오프라인 사업, 온라인 강의 등 지향하는 분야가 '전업' 인플루언서가 아니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들은 내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말하는 동시에, 내가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말할 것이다. 나는 '메가' 인플루언서의 길을 포기했고 이 자체로 실패했다. 지난 1년간 두 배 이상 성장한 쁘띠 인플루언서로 살았지만, 진짜 연예계에서 그것도 스타덤에 오르거나 진짜 연예인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광고를 따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가능한 '메가' 인플루언서보다는 유명하면 좋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작가나 사상가(모든 사상가의 출발점은 스승이나 에세이스트이지 않을까? 단 팬덤 관리를 잘못하면 본인이 교주가 될 수 있음.)가 더 되고 싶다는 것을 확인했다. 요약하면, 광고 하기 싫다.
그러나 여기에도 숨은 욕망은 있다.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듯이 나는 아이돌 지망생이었고, 최근까지 공연을 하면서 어떤 세계에서는 준 아이돌의 이미지로 보이고 있다. 청년배우의 데뷔 타이밍을 놓치고 몇년 뒤에는 중년배우로 데뷔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는데, 그때 예상한 데뷔 시기가 정확히 2023년, 올해였다. 지금의 목표는 거기서 멀어졌거나 이미 그 목표를 밟고 올라섰다. 2년 전 댄스팀과 모델대회 사이에서 댄스팀에 올인하기로 결정한 것은 (커리어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쨌든 광고를 해야 목돈을 벌 수 있는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구나.
이 세계를 벗어나려면 영업을 해야겠지.
그것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새해 계획은 뭐냐고? 초급만 4년 차인 건축 드로잉과 스페인어, 알고 보면 미국에서만 하는 산책과 관절 보호를 위한 제3의 운동(대체로 수영)을 본격적으로 하는 것. 이들은 이미 10년쯤 미루고 미루어서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는 다짐도 힘을 잃은 것들이다. 새삼스럽게 '할 거야!'라고 말할 수 없는.
하지만 이 중에서 드로잉은 스터디 플래너의 1월 목표에 적어두었다. 이삿짐을 싸다가 발견한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스케치북을 보고 자극을 받기도 했지만, 정말 원초적이고 솔직한 이유도 있다. 인스타에 내가 그린 그림을 올리면 반응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이 인스턴트 갤러리라는 뻔한 사실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사진 촬영과 인스타그램이라는 세계의 기본 법칙을 아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사실이지만, 인스타'그램'은 gram, 즉 그림을 좋아한다. 인스타의 로직은 계속 바뀌고 있고, 최근에는 화가가 그린 그림도 주제나 화가 인지도에 따라 주목도가 다양해서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시각예술은 태초에 인스타그램이 탄생한 이유이기 때문에 실험해 볼 가치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완성한 그림이 아직 없다. 아무래도 이번달에 몇 점, 다음 달에 몇 점,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세분화해야겠다. 그러기에는 브런치와 그 밖의 채널에 공개할 (초고가 있는) 원고들과 미작성 원고들도 쌓여있다. 내 계획 중에는 미루는 계획과 미룬 것들을 처리할 계획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 달력에는 늘 '방해받지 않고 작업할 기간'을 표시하는 편이다. 이번 달의 집중 기간은 설날 연휴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것이 ENTP의 생각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