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아바타의 변천사
외유내강에는 지름길이 없다. 처음부터 강한 사람이 없기도 하겠지만 강한 내면과 부드러운 외면을 어린 시절부터 함께 성장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아이의 성격을 형성하는 유년기의 양육 시스템은 곳곳에 아주 큰 구멍이 나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 그중에서도 어머니라는 개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사회로 통하는 관문인 학교에서는 우정보다 경쟁을 먼저 가르친다.
우리는 외강내유의 시기를 거친다. 외면이 강해 보이는 사람들의 내면이 순하거나 여리다는 말은 루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처받은 아이들이 상처를 기록하거나 가리기 위해 타투를 하거나, 강한 사람의 탈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외면이 먼저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외면에서 시작해 내면의 반전을 인식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다. 본인들은 강해 보이려는 시도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상처를 받는다. 부모와 학교, 교사와 또래집단에게. 특히 어린 시절 낯선 어른이나 또래인 사이코패스를 만났을 때. 성인이 되었으나 성년이 되기 전, 열아홉에서 스무 살의 영혼들이 갑자기 어른들의 땅에서 어른인 척해야 할 때.
어른인 척을 하니까 아이인 것이다. 어른인 척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어른이 된 것이다. 강한 척을 하니까 여린 것이다. 강한 척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강해진 것이다. 외유내강은 그렇게 성장한 후의 상태이며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음의 성장 타이밍은 각자 다르니까, 어떤 나이에 어디까지 성장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명랑한 나의 아바타, 코끼리는 평생 성장한다. 상징적인 의미이므로 내면이 평생 동안 성장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냥 명랑'했던 아이는 상처를 받으면 화를 냈고, 화가 풀리면 다시 명랑했다. 어른들의 가식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른들의 성찰을 뛰어넘는 조숙함으로 감시망을 피하는 법을 터득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글레넌 도일이나 아니 에르노가 사회적 젠더를 인식하기 시작했던 열 살 무렵에 이 아이는 정신적으로 이미 독립한 상태였다. 범죄조직에 위장 잠입 중인 FBI 요원처럼 언제든 집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다.
얼마 후 크지 않은 가출 가방을 들고 실행에 옮긴 적도 있는데, 너무 당당하게 나가서 가족들은 그게 가출 인지도 몰랐다. 그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아이의 할머니가 (가출의 계기가 된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고 출동하셨다. 집에서 50미터도 벗어나기 전에 할머니를 만난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열한 살에 시도한 첫 가출은 5분도 안 돼서 무산되었다.
몇 년 후, 집 안에 '자기만의 방'이 생겼고 아이는 방 안에 틀어박혀 세상으로부터 차단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스무 살에는 분가, 일종의 독립을 했다.
우리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초중고 재학기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자유는 십 년 동안 그려왔는데 책임을 지는 것은 진짜 어른의 영역이다. 어른인 척, 강한 척을 하지만 의식하지 못한 두려움과 표현할 타이밍을 놓친 분노, 그 밖의 감정의 부산물이 쌓여 응어리가 되고 있었다.
흔한 이십 대의 훈련 중인 사회적 가면이었을까. 상처가 클수록 괜찮은 척과 애써 명랑한 척을 반복했다. 미안하고 속상할 때는 더 이성적인 척.
그러고 보니 이건 지금도 하고 있다. 훈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평생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명랑함의 모양새가 달라졌다. 이십 대의 내가 호랑이인 척하는 고양이라면, 지금의 나는 고양이인 척하는 호랑이이다. 진짜 호랑이가 되면 호랑이라고 떠벌릴 수가 없게 된다. 어머, 그랬다가 다들 도망가면 어떡해. 내가 너무 외롭잖아.
사교적인 성격과 자신감을 유지하려면 부단한 시행착오를 감수하고, 에너지와 자원을 공급해야 한다. 사교적인 피플 퍼슨(people person: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자신감을 상실하면 급성 우울증이 발병하기 때문에 사교성-자신감 밸런스의 유지도 중요하다. 인간관계의 규모와 그에 필요한 나의 적극성, 에너지, 자원에 따라 자신감도 키워나가야 한다. 모든 장점은 키우고 단점을 보완하는 일도 게을리할 수 없다.
외향인 중에서는 가장 내향인이고 내향인 중에서는 가장 외향인이다 보니, 내향인이 많으면 대화의 공백을 무엇으로든 채워야 하지만 (말이 늘 수밖에!) 외향인이 많으면 굳이 에너지를 발산하지 않고 수렴하는 여백이 된다.
상황에 따라 새로운 캐릭터를 개발하고 연기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본질이었던가. 또는 51% 외향인, 외향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식인 걸까.
수험생이자 아이돌 지망생 시절, 특히 한 가지 커리어를 선택할 자신이 없어서 대학교에 가면 따로 연기자 과정을 준비하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수능을 치르고 나온 그날부터 2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내 커리어는 (과학도와 배우를 제외한) 제3의 부캐들의 춘추전국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댄서라는 부캐가 너무 오랫동안 주도권을 장악해서 오롯이 연기만을 위한 길을 개척하지 못했다.
본캐라고 할만한 캐릭터도 정착시키지는 못했다. 적응하지 못했던, 다양한 직장 생활과 과외 학생 등 고객과의 관계, 그밖에도 여러 그룹에서 다른 캐릭터를 소화하다 보니 새로운 사회적 자아를 개발하고 작동시키는 행위가 일종의 직업이자 특기가 된 것이다. 퍼스널 브랜드로 시작해 세계 1위의 패션 아이콘이 된 코코 샤넬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요즘 핫한 퍼스널 브랜딩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커리어를 수행하는 멀티 커리어와는 조금 다르다. 시즌마다 집중하는 작업과 수입을 창출하기 위한 작업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대기 중인 경우가 많다. 어떤 전문가 또는 덕후가 자기 분야의 책을 쓰고 강의를 한다면 이 사람은 최소 트리플 잡(Triple Job: 세 가지 직업)을 수행하게 되지만 나는 덕후이되 현재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책을 쓰면 다만 저자가 될 뿐이다. 전문가 타이틀이 있었던 분야에서는 은퇴했거나, 휴면 상태로 접어든 지 오래되었다. 현재 주력하고 있는 작업은 여행과 독서에서 파생된, 미술과 세계지리 등 미개척 분야의 공부 기록을 여러 채널을 통해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다.
자아분열을 검색했더니 '자의식이 지나쳐서 일어나는 분열감'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읽게 됐다. 그리고 연관검색어인 자의식으로 넘어갔더니 '타인과 구별되는 자기에 대한 의식'이라는 사전적 정의와 자의식 과잉 등이 보인다. 사전에서는 더 쉬운 말로 한자어를 풀어주는 것이 바람직한데, 거의 동어반복 수준의 정의를 하고 있어서 개념이 더 멀어진 느낌이다. 이와 같은 심리학 용어들은 대중서와 개론서를 정독하고 개념을 확립해야 단어의 오남용을 예방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많은 선무당들이 이 단어를 망쳐놓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그렇게 놓고 잠시 물러서서 바라봐야겠다.
메타인지라는 개념도 처음에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다. 그 단어를 처음 말해준 친구와 말해주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세계관, 최신 버전의 업데이트 상태 등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그 당시에 집중하고 있던 작업은 '교육'이었다.) 메타인지는 소크라테스만큼 오래된 개념이었으나 달리 지칭할만한 용어가 특히 한국어에는 없었고, 어떤 학술적 경로에 의해 비교적 최근에 알려졌다. 내가 오해한 게 아니라면, '너 자신을 알라.'가 메타인지의 정수이다.
자기애가 강하고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다 더 과시적이고 열정적인 자기애와 더 자신만만한 배짱이 있었다. (그렇다.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내가 노련하지 못했고, 소셜 네트워크가 촘촘하지 않았을 뿐.) 지금은 나를 쉬게 하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게 공백을 마련해주는 식으로 자기애를 표현한다. 잘할 자신이 있는 것을 자랑하지만 잘할 자신을 쉽게 가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에서 명랑한 동시에 냉정하기도 한 사회적 자아의 여러 버전과 종종 감정적이지만 주로 멍 때리는 무심한 자아, 이 모두를 관찰하는 관찰적 자아가 공존한다. 내 속엔 내가 많아도 너무 많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