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아바타는 나의 롤모델
자기애가 강하고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다 더 과시적이고 열정적인 자기애와 더 자신만만한 배짱이 있었다. (그렇다.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내가 노련하지 못했고, 소셜 네트워크가 촘촘하지 않았을 뿐.) 지금은 나를 쉬게 하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게 공백을 마련해주는 식으로 자기애를 표현한다. 잘할 자신이 있는 것을 자랑하지만 잘할 자신을 쉽게 가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에서 명랑한 동시에 냉정하기도 한 사회적 자아의 여러 버전과 종종 감정적이지만 주로 멍 때리는 무심한 자아, 이 모두를 관찰하는 관찰적 자아가 공존한다. 내 속엔 내가 많아도 너무 많다.
불혹에 비로소 득템한 한 가지 진리가 있다면, 내가 이 구역의 짱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비로소 팀워크의 짜릿함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리더를 하기로 약속된 상태로 팀에 합류하거나,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가입했는데 마치 짜고 치는 도박처럼 리더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 또는 그 이상이었다. 어쩌면 그 운명이 피곤해서 계속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뭐 하나, 성장이 더디면 지루하고 그렇지 않으면 또 리더가 되는데. 결국 모든 것을 때려칠...아니, 적당히는 하지 못할 운명이다. 의식적으로 '때려친다'라는 말은 피하고 있다. 올해의 슬로건은 '그만두지 않기'였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가 왜 그만두어야 해?
'다 하세요. 그냥 하세요.'
어떤 사람이 이거 할까, 말까? 고민하거나, 이걸 지금 시작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특히 '재능'이 없다고 걱정하는 말을 들으면 나의 대답은 똑같다. 너무 인공지능 같아서 죄송하지만, 이건 답이 정해져 있다.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은 하고 싶은데,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잘하거나, 잘하는 것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확신. 당연하게도 하면 가까워진다. 고민만 하고 안 하면 멀어진다. 그냥 하자.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다.
소년등과한 친구도 자랑스럽지만 함께 오래 꾸준히 어깨를 겨루고 성숙해지는 지기들이 더 소중하다. 소년등과는 못했지만 소년시절의 총명함을 잃어버릴까 봐 과거의 나를 페이스메이커로 등록시켜놓고 스트레스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공개할 날이 있겠지만 9년 전에 작성한 'to do not list'에는 '타인과 비교 금지'라는 항목도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리스트는 노화를 지연시키기 위한 안티 스트레스 처방이었지. 그러나 타인 비교를 안 하기 위해 셀프 비교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스트레스였을지도 모른다. 노화는 지연되었으나, 늘 초조했다. 내가 A라는 영역에서 이만큼 성취감을 느꼈다면, 다른 분야를 개척할 때는 더 빨리 안정되거나 확실한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데 그건 당연히 가능하지 않았다.
이제 과거랑 비교하지 않겠다. 비교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더 이상 하지 않겠다. 대신, 미래와 비교하겠다. 자아분열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이상자아에 가까운 내 아바타를 나 자신의 롤모델로 만들어야겠다. 삶은 365일 즐겁지 않지만, 나는 가장 슬펐던 2022년의 365일을 명랑한 나의 아바타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래서 온라인 자아의 위력과 그 철학적 의미를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
나의 아바타는 과거의 얼굴로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나의 미래를 설계해 주었다. 여행하고 공부했던 나는 가깝거나 먼, 과거의 나. 그것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나는 가깝거나 먼, 미래의 나. 그 미래의 내가 이미 현재의 나로 보이는 착시효과는 아바타에게 먼저 내 삶을 개척해보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덜 늘어지게 하기 위해서 내 아바타는 오늘도 열일하고 있다. 내가 쉬는 시간에 좀 더 기쁜 마음으로 멍을 때릴 수 있도록, 아바타는 영롱한 추억을 소환하고 사랑스러운 단어들을 고른다. 나는 이 아바타를 본받아서, 더 좋은 책을 찾아 읽고 더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녀야지.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