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도 실패도 쌓이면 포텐이다

플랜 B와 작은 성취가 중요한 이유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그만두지 않으면 언젠가 한다. 그래서 작년에는 '그만두지 않기'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설정했다. 그 핑계로 단 한 번만 하고 처박아둔 무언가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걸로 됐다.


우리 사회는 성공을 지향하고 지향하다 이제는 제대로 된 성공의 전제가 되는 실패까지 장려하고 있다. 성공에 XX했다, 성공에 XX적이다,라는 표현이 죄다 장애 비하적이라 블러처리했다. 성공에 대한 과몰입을 유도하는 콘텐츠로 브랜딩 하는 사람(계정)들은 그런 표현을 또 좋-다고 쓴다. 착한 마케터(?)들도 있는데 이 사람들은 본인도 외부 영향을 많이 받아서 배려심이 깊지만, 저러다 지칠까 봐 걱정도 된다.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계정)을 걱정하는 것은 오지랖이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


내가 못 키워서 안 키우는 게 아니라니까. 내 이너서클에서는 이미 '유명해지기 싫어'증도 유행이다. 관종이지만 관심에 밟혀서 좀비가 되고 싶진 않다.




인생의 결정적인 결정을 해야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플랜 B다. 플랜 C, D도 있어야 하지만 일단 플랜 B가 중요하다. 결정적인 결정은 인간의 선택을 넘어서는 영역이다.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인 불가지론자인 한편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를 존중하는 편이고, 그런 맥락에서 '신의 한 수'라는 표현은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생각 없이 사용했을지라도.) 우리에게 플랜 B가 가장 중요했던 시점이 언제였을까?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에게 있었던 3대 터닝포인트는 입시, 졸업, 퇴사였을 것이다. 취업이 빠진 이유는 소위 이 사회가 나에게 기대하는 취업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취업은 다름 아닌 '졸업'에 밀려 뒷전이 된 선택이었다. 즉, 선택하지 않은 선택지였다.


나는 취업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내 친구들은 거의 다 대학원에 합격했고, 취업을 했거나 하고 있는(?) 선배들과는 연결고리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졸업이 코앞인데 취업은 감감무소식. 이 과정을 알게 된 누군가는 그때라도 휴학하고 재정비를 해야 했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때 졸업하지 않으면 졸업조차 못하게 될까 봐 차라리 졸업백수가 되기로 했다. 졸업백수는 정체성이라고 할만한 것이 아니기에 졸업백수 겸 뮤지컬 배우 지망생이 되기로 했다. 그렇게 (뮤지컬은 또 뒷전인 채) 살사 인생이 시작된다. 이 선택은 플랜 B도 아닌 것 같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입시에 대해서는 이미 평생을 시달린 고민이지만 그럼에도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 대주제가 아니므로 가볍게 언급하겠다. 나는 A대학 X학과를 지망했는데, 내신은 엉망이고 수능 성적이 완전히 유쾌하지도 않았다. 최근 우리 학번 입시의 성패가 불수능의 영향이라는 설(?)도 많이 보이는데, 수능체질인 나는 불수능의 영향을 거의 안 받은 대신 원래대로 조금 모자란 성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수능체질이라 A대학을 쓸 수 있었다. 많은 수험생들이 정보가 부족한 상태로 안전지원을 했다. 수능 영역별 등급제와 광역화를 처음 적용했던 A대학의 지원자격은 실제로 각 단과대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의 성적과 미스매치가 있었고 우리는 안전지원을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뻔했다.


고집해보지도 않고 X학과를 포기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X학과는 결국 내가 포기했을 전공이었다. 복수 합격한 다른 학교를 취소하고 내 계획에 없었던 단과대학에 입학한 플랜 B는 나보다는 어른들이 결정해 버린(?) 계획이다. 찜찜하지만 플랜 B 치고는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플랜 B가 앞서 언급한 플랜 B로 연결되지 않는가. 시간 순으로 다른 플랜 B를 선택했다면 졸업 백수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살사 인생이 시작된(시작되지 않았을 리는 없지만) 시점이 더 부적절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일어나지 않은 일. 후회는 없다.




내 플랜 B는 대체로 아기호랑이는 되었다. '호랑이를 그리려고 해야, 고양이라도 그리니까' 호랑이를 그리려고 했고 그렇게 그려낸 고양이는 잠재력이 풍부한 아기호랑이였다. 처음에는 고양이와 아기호랑이가 비슷해 보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구별이 된다. 호랑이였다. 그런 호랑이가 몇 마리 더 있다.


문화예술 꿀단지로 성장하고 있는 뉴욕 여행도 유학이라는 호랑이를 보류하면서 그려낸 아기호랑이였고 그 이야기를 머금은 채 아직 쓸쓸한 온라인 세계에 덩그러니 놓인 브런치북도 아기호랑이다.


미국 유학 지망생 7년 차인데 아직 GRE는커녕 토플도 응시하지 못했다. 대학원을 바로 갈 수 있는 성적과 인프라가 없기에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 국내 학부에 재입학을 먼저 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시 수능 성적과 학부 장학금을 확보해야 하므로 고급영어 시험은 당장 쓸데가 없다. 생계형 업무용 또는 자랑용이 아닌 이상 유효기간이 있는 시험의 어마무시한 응시료가 아깝다. 하지만 영어책을 읽으면서 재가동을 시작한 내 서재와 쉬고 있는 영어블로그도 아기호랑이다.




장성한 호랑이를 그려낸다는 것은 (그런 게 있다면) 성공 비슷한 무언가를 보장하는 X학과 같은데 합격해서 그 학과에서 갈만한 Y기업이나 Z병원 같은 곳에 취업해서 그 후로 안 잘리기만 하면 되는 것 같은 것일까.




공부를 하기 싫었던 적도 있고, 학벌이 발목을 잡아서 졸업장을 없는 셈 치고 살았던 적도 있지만 이십 대 후반에는 미술대학, 삼십 대 중반에는 건축대학 재입학을 꿈꾸었다. 꿈이라도 꾸지 않으면 현생이 너무 우울하지 않은가. 수입과 건강이 모두 안정되는 경험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나는 대체로 이 언밸런스가 더 심했다. 처음부터 취업은 하지도 못했고 매번 적절한(?) 시기에 퇴사를 해야 했으며 대체로 건강이 구실이 되어 그렇게 업종을 바꿀 때마다 새로운 분야에 열정적으로 도전하지만 빨리 잘하고 싶어서 매번 에너지 분배에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에 돌아온 곳은 이미 해본 것들이다. 영어와 독서, 문화콘텐츠 분석하기, 블로그 아카이빙과 글쓰기, 한동안 나몰라라 했던 춤추기. 이중에는 춤과 글쓰기처럼 열정적으로 쌓아 올리다 만 것도 있고 깨작거리면서(dabble) 기회를 엿보고 있던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도 그만두지 않기로 했던 마음가짐이 이미 자리하고 있기에 다시 시작함에도 거부감이 없다. 새 종목은 물론이고, 거의 포기했던 과거의 종목들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성장이 지체되어 있던 아기호랑이를 깨워서 다시 활동해 보자고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는 어떤 호랑이에게 갑자기 벌크업을 하라고 재촉하기보다는 잠들어있던 호랑이들을 깨워봐야겠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을 발판으로 재도전을 해야 하지만, 같은 분야에서도 새로운 장르에 계속 도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처음에는 힘들지라도 장르마다 나와 합이 다르고, 대중과의 합도 다르기에 어떤 장르에 도전하냐에 따라 호랑이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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