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캠퍼스 투어는 최종 목적지였지

하버드, MIT, 버클리 음대와 보스턴의 정취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귀국 이틀 전이었다. 반나절 캠브리지 산책 외에는 뭐 없었지만 보스턴 2박 3일의 추억은 7년째 마음의 양식이다. (보스턴은 2016년에만 갔다.)


캠브리지와 보스턴에서 빈둥거린 이야기를 쓰다가 어차피 못찾을 야경 사진을 꺼내본다고 경로 이탈을 했는데 7년된 폰이 바로 다운되었다. (그 여행을 앞두고 구입한, 첫 아이폰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당분간 문단 단위로 임시저장을 해야겠다. 이 또한 흐름이 끊기기 때문에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중간에 한번 정도, 정보 확인차 앱을 벗어날 때 저장한다.)




초고를 쓰고, 미련없이 저장하고, 저장했을거라 믿고, 인스타그램을 재부팅했다. 미련하게 1000자 이상 '날리고' 난 다음에는 며칠이라도 조심하는 척해야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 후로 꺼짐이 잦아 저장 습관도 유지했지만, 무엇보다 전원을 계속 연결하여 꺼짐을 예방하는 것에 주의했다.)


다시 그날 오후로 돌아가보자.



MIT(메사추세츠 공대)


펜웨이 파크와 버클리 음대(당근 UC Berkeley 아님주의, UC=University of California) 근처에 있는 좀 쾌적한 다인실에 도착한, 첫째날은 먹고 잤다.


둘째날은 코인 세탁기를 쓰려고 코인 사냥을 나갔더니 버클리가 바로 앞에 있었고, 왠지 감명받아서 한달동안 쓸데없이 이고지고 다니던 파일을 꺼내 기숙사 로비의 피아노를 쳤다. (영상은 7년째 편집중)




최종 목적지인 캠브리지를 향해 출발했다. 생각보다 더웠던 뉴욕의 10월에서 정신 못차리게 추운 보스턴의 11월로 건너왔기에 전날 숙소 근처 '포에버21'에서 급조한 겨울옷을 입고 나왔다. 이 패턴은 시카고에서도 반복되는데, 당시 휴스턴과 시카고의 온도 차는 30도가 넘었다.


버클리와 하버드의 중간지점인 MIT에서 점심으로 데리야끼 덮밥을 먹었다. 전날 비가 와서인지, 점점 더 추워졌지만 하버드 대학교의 만만한 건물들을 돌아다녔다. 서머타임이 끝나기 직전인데 상당히 캐나다에 가까운(퀘백에 공유와 김고은이 있었다!) 고위도 지방이라 해가 말도 못하게 짧았다.


돌아서니 일몰이었다.


남은 것은 직진본능 뿐. 다시 중간지점인 MIT에서 보스턴의 야경을 줍고, 다리 건너 숙소로 돌아와 잠시 심호흡을 했다. 아까 코인을 바꿔준 친절한 편의점에 다시 가서 비싼 한국 컵라면을 샀다.


미온수와 전자렌지로 간신히 조리를 했는데 젓가락을 안 챙겼네? 옆 블럭 친절한 편의점에 돌아와 젓가락 토크를 했다. (그와중에 멘붕인 내게 라면 조리법 물어보는 미지의 아시안들도 깨알잼)


보스턴 관련 꿀잼 에피소드 중 1, 2위를 다투는 이 젓가락 토크는 내가 Chopsticks를 별 생각없이 챱스틱 정도로 발음했다가 특정 브랜드의 '립밤'을 사게 될 뻔한 썰이다. 순간 다들 그렇듯 멘붕이 와서, 패러프라이징(스피드 퀴즈처럼 바꿔 말하기)을 했다.


그, 누들 먹는 그, 포크같은 거 줘봐.


그랬더니 친절한 편의점 오빠(?)님은 '아아! 촙스틱스!!'라며 살짝 영국식으로, 확실히 복수(pl.)로 들리게끔 발음을 해주었다. 확실히 보스턴에서는 라면만 먹어도 영어가 느는구나. 오길 잘했어.



하버드 대학교 부지의 예배당(?)


자녀 (입양) 계획이 (혹시라도) 생긴다면 보스턴으로 이사가야지. 그보다도 그날 이후로 나는 MIT 대학원 지망생이 이미 되어있는 상태다.


그러나 6년 동안 기하급수적인 페이스로 영어책과 한국어책을 읽다보니 '이과 그만하고 싶어요' 모드다. 이 학교에 관한 다른 썰도 있지만, MIT의 풀네임은 Me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메사추세츠 공대)다.


완전히 포기않고 방치 중인, 최종목적지.


요즘 앨릭스 던피의 칼텍(UC들과 시너지를 내고 있는 캘리포니아 공대)이 핫하다지만 수십(수백?)년째 부동의 1위인 전세계 최고의 학교 MIT. 초등 4-5학년때부터 오직 이과였으니 문과로 전향한다면 욕심을 좀 내려놓을 수 있어서 선택지가 다양해진다. 옥스포드 혹은 소르본(꿈도 크지?) 그도 아니면 더 글로벌한 멀티링구얼의 도시에서 제3외국어를 집중공략하면서 영어의 보폭을 키우는 방법도 있다.


어문계열의 경우, 나이 드는 두려움도 적다. 트렌드를 끼고 사는 디자이너나 엔지니어로 사는 것보다 커리어 총 수명이 늘어나길. 쉽지 않을 걸 안다. 어찌보면 디자이너로는 거의 끝나가고 있다. (문/이과 갑론을박 환영, 서로 물어뜯지만 마요.)




컵라면 대소동을 피우고도 8시가 채 안됐지만, 새벽 버스를 타고 뉴욕에 돌아와야해서 일찍 짐싸고 이불 속에 파묻혔다. 다음날은 트럼프의 당선일.


맨해튼 11번가 교통 통제 덕분에 볼트버스를 타고 예정에 없던 시티투어를 했다. 간신히 만남과 멍때림의 광장, 타임스퀘어에 도착해서 가장 포근한 스벅모닝을 즐겼다. (시간은 오후였으나...whatever)


나의 환송이 아닌,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하던(아마도 개표를 기대하며 들뜬, 것이겠지만) 마지막 밤의 세레모니를 뒤로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이동했다.



돌아오는 날 아침에 발견한 보스턴 건축 대학


새벽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최소 댈러스에는 와야 해서 쪽잠을 자고 공항에 갔다. 뉴어크 공항에서만 4시간 동안 기다린 국내선이 결국 제 시간에 출발하지 않아, 서비스로 인천행 직항(!)을 받고, 택시도 받고, JFK 공항으로 로드트립을 했다. 뉴욕 공항에서 호환되는, 와이파이 12시간 이용권을 새벽에 구입해두길 잘했다. 지루할 틈은 없었다.



뉴욕 공항투어는 2019년의 여행이 중심이었던 <무한대 미국일주>의 마지막편에서도 소환했었다. 보스턴은 아예 소외됐기에 외전를 썼다. (댈러스와 필라델피아는 가끔 회상씬으로 등장하지만 아직 미국에 적응중이었고 기억이 대부분 뭉개졌다.)


새벽 2시에 체크인을 하고 낮 12시에 탑승했지만 직항을 탔고 그 후로는 아는 맛이다. 그로부터 2년 뒤에 35시간 동안 환승을 3번 했던 역대급 귀가길(빅토리아폴스-요하네스버그-도하-홍콩-인천)도 겪었는걸. 미국 공항은 만만해졌고 <무한대 미국일주>는 순항했다. 모르는 맛을 찾으러 갈 때가 왔다.


아무래도 유럽의 관문은 바르셀로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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