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 프렌치쿼터 속으로

체크인을 기다리는 10시간의 긴 산책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아침 여섯 시에 도착해서 다음날 밤 12시에 출발하는 1박 2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새벽 3시 45분에 시작해 무려 20시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산책으로 보낸 워싱턴의 당일치기가 그러했듯이, 뉴올리언스에서도 호텔 1박에 해당하는 19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여분의 시간이 23시간이나 되었다.


호텔에서 씻고 다시 나와 밤 공연을 즐겨야 했으니 공연하는 바에서 식사만 하고 돌아온 전전날의 애틀랜타 호캉스와는 달랐다. 집이 있되 집순이 모드는 아니었던 이땐 몰랐지만, 그 후 시카고에서 진짜 집순이 모드의 호캉스를 했다고 한다.



프렌치쿼터 잭슨 스퀘어 근처


프렌치쿼터를 두 바퀴쯤 돌고 오후 두 시의 땡볕을 피해 아이스커피를 마신 기억이 난다. 안타깝게도 뉴욕에서 셀카봉 근육을 탕진했기 때문에 애틀랜타 이후로 사진 기록이 점점 뜸해졌다. 더욱 안타깝게도 고밀도의 산책과 윈도쇼핑과 로컬 맛집 투어를 했던 뉴올리언스의 사진 기록은 구멍이 많다.


워싱턴과 애틀랜타에서는 셀카봉 없이도 인생 셀카를 남겼는데, 뉴올리언스에서는 굴 요리 사진조차 남기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사진으로 끝날뻔한 기록을 구구절절하게 복원하는 중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 커피는 언제 마신 거야?라고 자문하다 둘째 날은 야심 차게 프렌치쿼터를 벗어나 보겠다고 몇 블록쯤 걸어가다 더워서 큰길에 있는 넓은 카페에 들어갔던 기억이 났다. 두 곳의 카페를 방문했는데,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지만 방문한 이유(더워서)와 사진기록의 여부(없다)는 완전히 같았다.



프렌치쿼터의 대표적인 뷰 스팟


기록이 없는데도 연상이 가능했다. 항상 체크인 시간이 헷갈려서 펼쳐보게 되는 당시의 타임라인에도 식사메뉴와 어떤 분위기의 술집에 갔는지만 있고 카페는 누락되어 있었다. 다시 보니 둘째 날은 '큰길 카페'라고 기록한 흔적이 있었다. 유럽에 가면 꼭 카페 간판과 분위기를 촬영해야지,라고 다짐하지만 덥고 짜증 나고 목마르면 다 잊어버릴 것이다. 다녀온 곳에 데려다 놓으면 길은 찾을 수 있겠지.


아직 첫날이다. 커피를 마시고 힘을 내서 거리의 버스킹을 들으며 그루브를 탔지만 한 달 치 짐의 사분의 일과 새로 산 옷까지 들어있는 백팩은 무겁고, 등은 금세 다시 젖었다. 인스타에서 미리 봐 두었던 예쁜 건물이 어디 있을지 궁금했는데, 그저 끌리는 대로 걷다 보니 건물이 내게 달려오듯이 나타났다. 다른 건물도 대체로 프렌치하고 예뻤지만, 진짜 프랑스의 도도함이 없어서 더 친근했다. 그러니까, 덜 근사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이 구역이 왜 프렌치쿼터인지 당연히 궁금했다. 케이준 음식을 조사하다 확인한 바로는 프랑스인들이 영국인에게 땅을 뺏겨 강제 이주한 곳이 뉴올리언스의 프렌치쿼터라고 한다. 관련 고전이나 영화 등을 볼 때면 남부, 중서부의 역사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역사덕후가 아니라 지식이 누적되지 못한다. 어차피 잊어버릴 것이라 공부하기 겁난다. 여행기록 핑계로 이렇게나마 하고 있다.




골목마다 건물 구경을 하고, 그 예쁜 건물에 있는 선물가게도 들어가 보고, 옆집은 왜 고딕풍의 란제리를 파는지와 이 구역은 10월이라 핼러윈 바이브인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를 궁금해하며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다 지쳐서 저녁을 먼저 먹기로 했다.


귀국 후에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를 보고 전국의 범죄자를 잡으러 다니는 FBI 수사물 등을 보다 보니, 특히 뉴올리언스가 남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무속신앙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아프리카 여행기를 포함해 이전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한 장소를 다녀와서 그 작품을 다시 보면 이해의 폭이 넓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길모어 걸스>, <화이트칼라>처럼 인용구와 작가, 장소와 유명인의 관계 등이 잔뜩 나오는 시리즈는 반복해서 봐도 볼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준다. 처음에 흘려들었던 메리 셸리가 갑자기 훅 들어온다거나,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인용된다는 걸 알고 보는데도 새삼 이 녀석(?)들이 더 기특해 보인다거나 하는, 재발견의 포인트가 생긴다.



두 여성작가를 언급한 대화는 <화이트칼라>의 닐과 (주로) 모즈였다. 작년에 돌아가신 윌리엄 거슨이 맡은 책덕후이자 좀 특이한 천재. 아침에는 무난한 뉴욕 피자를 먹었으니, 점심으로는 여기서 유명한 굴을 먹어볼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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