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비 오는 날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by 은자루

지난 이야기


회사 직원과 DM클럽 내부 인테리어를 보러 출장을 나온 창준.

오전부터 비가 내린다.


"원래 기상청 말은 믿을게 못됩니다."

"현철씨 같은 사람이 날씨확인은 더 잘하는 편이더라구요, 경험상."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습니다. 과장님."

그 순간 검지를 치켜세우고 나를 향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던 그의 얼굴에 강한 빛의 여파로 짙은 그늘이 졌다.

그리고 몇 초 뒤 들리는 엄청난 천둥소리. 특정 대상을 향해 내는 소리는 아니겠지만, 하늘에서 울리는 그 소리는 마치 목표점을 두고 호통을 치는 것 같았다.

"아하하..그럼 후딱 갔다 오도록 합시다."




멋쩍은지 강대리가 손가락을 슬그머니 구부리고 운전대를 잡았다. 강대리는 끊임없이 떠들었다. 이런 날은 안전운전이 제일이죠. 아, 저기 도넛 드셔보셨어요? 여자친구가 저거 아닌 도넛은 도넛도 아니라고.. 그러고 보니 과장님은 자녀분이..? 하나. 아..아드님? 아니 따님. 아 그러시구나. 몇 살..? 다섯 살. 그거 참 귀엽겠네요.

최소한의 대답만을 하며 나는 무심히 제 할일을 다하고 있는 와이퍼 너머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20분 남짓의 멀지 않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비 때문인지 훨씬 더 걸려서 도착했다. 너무 한 자세로 앉아있던 터라 몸이 찌뿌둥했다.


"으왓, 으스스 하네요 뭔가."


강대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들었다. 그때까지도 비가 내리고 있었고 하늘은 어두웠다. 개발상가 주변이라 아직 건물에 들어선 가게가 듬성듬성한 그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DM클럽 건물은 크고 웅장했다. 하지만 사람이 왕래 하지 않는 건물 특유의 허함이랄까. 아직 오픈 준비 중이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김도명의 가게라는 데서 오는 거부감도 은근히 내 주위를 감돌고 있었다.


정문 앞에 차 한대가 세워져있었다. 차양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한 남자가 우리를 보더니 아는 체를 했다. 형식적인 인사를 하며 남자는 과장되게 우리를 환영했다. 그의 비실비실한 웃음에서 두 번이나 계약이 파기되고 우리가 세 번째 업체라는 말이 생각났다. 너무 친절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쉴 새 없이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졌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던 말던 남자는 내 옆에 있는 강대리와 짝을 이루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말을 끊지 않고 이어갔다. 주로 별 것 아닌 이야기였지만 정적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기세여서 나도 잠자코 있었다.


"내부 설계는 어느 정도 되어있어서 마무리만 잘 진행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만.."


그럴듯하게 말하는 직원을 지나쳐 내부로 들어갔다. 헐벗은 상태의 건물은 황량하고 들어가는 동안 한 단계 어두워졌다. 발소리가 동굴처럼 울리고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인지 건물 내부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살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눅눅하고 습했다. 진한 시멘트냄새가 발아래부터 올라왔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내가 말했다.


"사진보다는 괜찮은데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계약 파기를 두 번이나 일으켰으면 내부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든 이건 쓰레기 처리나 마찬가지였다. 우리같은 작은 중소기업에 온 것도 그런 이유인걸 누가 말하지 않아도 짐작 가능했다. 아니면 이치호가 말한 그 ‘부서’와 관련된 것일수도 있고.

하지만 인테리어 자체는 센스가 있고 세련됐다.

이제와서 부가적으로 이런 사업을 하려는 사람치고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생각보다 DM쪽에서도 진심인걸까.


그럴 리가.


DM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말하던 이치호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 생각과 겹쳐졌다. 그는 늙은 영감처럼 허탈함을 감추지 않았는데, 그게 내 안에 도 있을 줄은 몰랐다.

도명제약의 김도명은 이미 한물 건너간 인물이나 다름 없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했을 때 대략 다섯 번째쯤 내가 찾으려던 ‘김도명’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시간이 지났다는걸 여실히 실감했고, 어떤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도 결국엔 이런 것인가 싶은 허무함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여전히 검색하면 인물사전에 나오는 그 남자의 얼굴이 놀라울 정도였다.

이치호는 유령 같다, 는 표현을 썼다.


"왜?"

"예측이 불가능하달까. 의도가 안 보인달까. 제약회사를 하다가 사업 성격을 싹 바꿔서 온 것도 좀 이상하고."

"그게 유령 같은 거야?"

"사람이라면 본질적인 특성이 있고,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자신의 그런 성질을 남에게 전파하고 영향을 주고자 하는 법인데 그러질 않으니까 묘하다는거야."

"사업가를 잘 아네."

"우리 아버지가 사업가라고 내가 말 안했나?"


치호가 입꼬리를 늘이며 웃었다. 이런 게 그 특유의 농담이란 걸 모를 때는 내가 여린 마음에 상처를 준 건 아닌지 고민했었다.


DM클럽은 두 자리 수 매장을 개점하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김도명회장은 비공개 인터뷰에서 DM클럽의 분점을 늘리는 의도를 물었을 때 말했다고 한다. 노는 거 좋잖아요. 전 사람들이 좀 더 당당하게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후론 어떠한 인터뷰도, 입장도 밝힌 적이 없었다.


글로 접하긴 했지만 그 말투도, 그 말이 주는 느낌조차도 내가 검색한 '김도명' 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편견일지도 몰랐다. 삐걱거리는 내 '감'을 자꾸만 무시하려 했다. 9년 전부터 그게 맞다고 굳게 믿고 있다. 9년 전에 나는 편견덩어리였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은 그럴리 없다며, 눈앞에 보이는 사실을 부정했지만 그것이 진실이었을 때.

땅으로 꺼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실감했다.


이치호도 그렇고, 도명에서 뻗어나온 DM도 그렇고. 향수라 부르기도 어려운 과거의 기억을 자꾸만 자극해서 속이 불편했다.


또 도망칠 거야?


겨우 그 말이 뭐라고. 이치호의 과녘에 보기좋게 맞아버렸다. 예전부터,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에 참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그렇게 지켜낼 자존심따위 앳저녁에 버렸는데 말이다.

녹음기능은 이미 켜둔채로 실내에 들어온 상태였다. 들킬 위험이 있는 빛 대신, on버튼이 켜지면 위이잉 하는 진동이 느껴졌다.


“정말 괜찮은데요?”


나는 1층 중간까지 가서 전체적인 내부 전망을 바라보고 다시 한 번 말했다. 내 말에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죠? 이게 구조랑 디자인이 합쳐지면서 주는 감각이라는 게..사진이랑은 비교가 안 되거든요. 약간 틀어졌을 뿐이지 디자인도 업계에서 꽤 유명한 분과 상의해서 진행한 거라.."


천장이 높아 반 2층으로 계획하는 1층과 지하 1, 2층을 쓴다는 DM 11호점(예정 건물)의 기본적인 디자인이 굴곡을 테마로 삼았다.

여러 출입문과 공간사이의 경계를 나누는 부분이 둥그스름하게 또는 의도한 방식으로 약간씩 찌그러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게 헐벗은 기운을 채 덮지 못한 삭막한 내부를 부드럽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높은 천장이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또한 그 때문인 듯 했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라면 한 번에 시야에 들어차지 않는 내부 구조였다. 어림짐작으로 전기선을 따라 CCTV를 달아보아도, 또 그 숫자를 가장 늘려보아도 사각지대가 너무 많았다. 말할까? 의도한 건가? 내가 과하게 생각한 건가? 일단 가장 먼저 든 의문부터 풀어보기로 했다.


"제대로 된 작업 전에도 이정도면 진짜 훌륭한것 같아요. 그런데 어쩌다 두 번이나.."


나는 반쯤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담당자를 쳐다보았다. 못들은 척 넘어가면 다른 방식을 써야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도리어 과장스럽게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마치 이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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