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그래도 그녀석은 나이에 맞는 얼굴이면 좋을텐데요
지난 이야기
치호는 자신이 남의 '중심'을 관통한다는 말을 한다.
"중심?"
말이 떨렸다. 그때까지 듣고만 있던 내가 되물은 건 그가 선택한 단어가 생경했기 때문이다.
"'중심'이란건 내가 지어낸 말이야. 적어도 소름끼친다거나 열받는다 거나 라는 말을 내 나름대로 포장한 거지만. 그냥, 알게 되더라구. 몇 가지 포인트만 있으면 대충 짐작해서 말한 게 꼭 관통한다더군."
유진에 대한 그의 말은 거의 일치했다. 그녀는 아이를 원했지만 아이를 갖지 못했다. 남자쪽 문제였다. 내가 소개시켜준 대학후배였고, 유진은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이란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기도 하는 법이다.
게다가 유진은 아내와 아이가 있으면서도 그 가정을 충실히 지켜내지 못한 나를 책망하는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이 들때마다 나는 힘이 나긴 커녕 더 작아졌다.
유진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나의 잘못이었다.
관통이란 말은 사격을 떠올리게 했다. 유진도, 붕대녀석도 그랬던 건가. 그들을 통과한 말이 넘어가지 못하고 관통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쾌한 표정을 지은걸까.
"나도 들은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치호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 순간 그는 전혀 고등학생처럼 보이지 않았다.
뭐라 해야 될지 몰라 나는 잠시 서있었다. 흠. 입을 다문채 한숨인지 탄식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고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그거 혹시.. 네 얼굴이 엉망이 된 거랑 관계있어?"
"비슷해. 별 일 아냐.“
관통. 관통. 나는 치호가 커다란 활을 들고 있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과녁에 그 활을 팡팡 날려 관통한다면.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별 일 아니라는 말은 대부분 별 일 일때가 많다. 나랑 닮지도 비슷하지도 않은 이치호를 볼 때마다 나를 대입시키게 된다. 그래서 이 녀석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할 말은 끝났다는 듯 치호는 가만히 서 있다가 눈가로 손을 가져갔다. 이제 제법 얇아진 거즈는 끝부분이 변색되어 있었다. 문질거리는 모양새를 보니 자주 손을 뻗는 것 같았다.
아까 잘못 맞았으면 이번엔 입원신세를 면하지 못했으리라.
“많이 불편해?”
“아니, 뭐..”
내 말에 반응하듯, 그가 자기 얼굴에서 손을 떼어냈다.
고해성사처럼 제 이야기를 하고 난 후라 그런가 애가 고분고분해보였다.
“음..너 정말로 왕따는 아니지? 아까 그 붕대녀석한테 말야.”
“붕대? 아.. 김지훈.. 괜찮아. 그 녀석 ‘중심’은 워낙 뻔해서.”
“역시 약점 잡았구나.”
아까 할머니 어쩌고 한 말이 그 녀석의 ‘중심’인가보다. 사색이 되는 붕대녀석을 볼때는 이치호가 좀 악당같아 보이긴 했었다. 내 말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다행이네.”
“다행이라고?”
“괴롭힘당하는 것 보다야 낫지. 그렇다고 괴롭히라는 뜻은 아니고. 넌 어차피 귀찮아서 괴롭히지도 않을 것 같으니.”
“...”
시계를 보았다. 벌써 오후 수업 종이 울린지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소름 안끼쳐.”
나는 뒤늦은 대답을 했다. 이미 잊었을 수도 있겠지만, 기우일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이치호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눈빛만은 여느때와 같이 진중하지만 거즈에서는 손을 떼고, 입은 좀 바보같이 벌어졌다. 멍청한 표정이라고 하면 저 얼굴은 더 이상 볼 수 없겠지.
그 나이대다운 얼굴이다. 아까보다 저게 이치호한테 어울린다.
“가서 수업이나 들어라.”
나는 최대한 쿨하게 보이길 바라며 이치호의 머리를 꾹 누르고, 돌아섰다. 뒤돌아가는 내 등 뒤로 그가 소리쳤다.
“맞고만 다니는 거 아니야! 김지훈 손가락도 내가 부러뜨렸어!”
어이쿠 자랑이다.
다시 쳐다봤을 때 이미 저멀리 달려가는 이치호의 뒷모습만 보였다.
인테리어 현장에 가기로 한 날은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먹구름 진 하늘에서 주룩 주룩. 후드득 후드득. 산뜻하다기보다는 오물을 씻어 내리려는 듯 새카만 하늘은 하늘 아래 그늘을 드리웠다.
도명제약으로 출범한 ㈜도명그룹은 실상 그 뿌리를 기반으로 완전히 사라진 그룹에서 ㈜DM그룹으로 새로 시장에 진입했다. 자산 10조, 순이익 250억원으로 꽤나 잘나가고 있는 모양이었고, 처음부터 작정한 듯 클럽사업에 주력했다. 왜 클럽사업이었을까.
표면적인 정보만 본다면 DM은 클럽사업 하나를 주력으로 삼아 뚝심으로 일어서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유흥과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네트워크와 사업수완은 겨우 1, 2년 안에 뿌리를 내리기 힘들다. 그게 폐쇄적이고 노골적인 사업일수록 더욱 그랬다. DM은 크게 클럽산업. 국내 서점유통 체인 중 하나인 지학유통 그리고 말할 것 없이 제약회사라인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체인이고 김도명은 다른 산업체가 무시할 수 없을 꽤나 높은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까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다 업체 인테리어 기획안을 넘겨받은 나보다 이치호의 정보가 낫다는 사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집이 아닌 곳이 작업실처럼 보인 공간에 대한 의구심도 해결되지 않았다. 월세를 직접내냐고 물었을 때 치호는 '그걸 네가 알아서 뭐하게'라는 대놓고 불만인 표정으로 나를 봤을 뿐이었다.
역시 구린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고등학생인 그가 뭘 어떻게 하는지까지는 내 상상력 범위를 벗어난 영역이었지만.
USB는 며칠 전 넘겼다. 초소형이어폰도 다시 반납하려 했지만 이치호는 아직 쓸 일이 있지 않겠냐며 받지 않았다. 그 말은, 왜인지 그 뒤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서 괜스레 찜찜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오늘 나가도 되려나?”
범상치 않은 빗줄기를 바라보면 내가 말했을 때, 나와 동행하기로 한 강대리가 이렇게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건 차라리 금방 그친다는, 늦은 밤까지 내린다는 기상청의 의견과는 정반대의 의견을 피력했다.
"원래 기상청 말은 믿을게 못됩니다."
"현철씨 같은 사람이 날씨확인은 더 잘하는 편이더라구요, 경험상."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습니다. 과장님."
그 순간 검지를 치켜세우고 나를 향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던 그의 얼굴에 강한 빛의 여파로 짙은 그늘이 졌다.
그리고 몇 초 뒤 들리는 엄청난 천둥소리. 특정 대상을 향해 내는 소리는 아니겠지만, 하늘에서 울리는 그 소리는 마치 목표점을 두고 호통을 치는 것 같았다.
"아하하..그럼 후딱 갔다 오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