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중심을 관통하는 아이

명탐정 이치호

by 은자루

지난 이야기.


치호가 의심스럽게 보이는 창준


“너 뭐냐..?”

내 얼굴은 지금 어떤 표정일까. 어떻길래 이치호는 저렇게 쓸쓸하게 비소하는지.

오후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끝났다.




종 쳤는데 안들어가도 되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대답을 추궁했다. 그러고 보면 그는 나에 대해 알고 있었고,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가지고 있는 듯 보였지만 정작 본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딱히 모르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타입이 아니라 나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미묘하게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인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이치호를 불편해한다. 그저 ‘싸가지 없다’라는 말과는 결이 다르다. 뭐랄까, 지금 와서 보니 일부러 불편하게 유도하고 있달까.

유진과 병원에 갔을 때. 길거리에서 아이들 무리 사이에 있는 그를 발견 했을 때. 방금 전 붕대녀석 앞에서. 그리고 혜경이 오자 내가 마주치지 않도록 구석으로 온 것 까지.

그를 알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볼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시감이 쌓여간다. 그 모든게 별거 아닌 일이라고 넘기기엔 마음에 걸렸다.

대체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있는거지.

후우. 이치호가 내 앞에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혜경 쌤은 모르는게 더 이상하지 않아? 우리학교 선생님인데.”

“담임이야?”

“그건 아니고.”


아. 휘말린다.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선생님이 문제가 아니잖아. 네가 아는 ‘선생님’과 나 사이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는 거야.”

“...”

"내 뒷조사 정도는 했을거라고..알고는 있었지만, 대체 어디까지? 단순히 내가 과거에 도명제약에서 일했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도명과 관련되어있는 것 같다고 추정하는거 말고.. 내 개인정보에 대해 알아야 하는거냐?"


말하다보니 감정이 조금 격양되었다. 스스로도 느끼고는 있었지만 컨트롤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왜. 왜 나는 멍청하게도 이 아이가 나한테 접근한 이유에 대해 표면적으로만 생각했을까.

누군가를 협박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면 내가 아니어도 되지 않았나.


내가 수년전 이루려고 했던 모든 건 무너졌고, 그 이후로 내 인생은 계속해서 내리막길 뿐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조금쯤 나아질 수 있나 했던 시기도 결국 내가 망쳤는데.

그래서 그렇게, 그냥 시간에 풍파되어 지나가기만 바라고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을 나보다 한참 어린 그가 다 목도했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붕대녀석이 씩씩거리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와 지금의 내가 다를 바 없었다.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도 뭔가를 찔린 것이다. 이치호에게.


"뒷조사를 했다는 말은 맞지 않아."


그때 이치호가 말했다. 그 말은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어째서? 설명해봐."

"들어주려고?"


그는 조금 놀란 얼굴로 말한다. 오히려 당황한건 나였다. 내가 붕대녀석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해서, 행동까지 그럴 줄 알았다.

화가 났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궁금했다. 이치호는 물어보면 답을 해줄 것 같았다. 요령을 부리지도, 내 기분을 신경쓰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 점 때문에 딱딱한 말투에서도 이치호의 진심을 봤다고 자만했었다. 지금은 알 수 없어졌지만.


"응. 들을테니까 말해봐."


으름장을 놓는 것처럼 말했다. 그래봤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겠지만.

신기한 건 그 다음에 이어진 이치호의 반응이었다. 그가 나를 보는 시선이 아주 의아했다. 허점을 찔린 사람이 말문이 막혔을 때 보이는 듯한 시선. 댕그래진 눈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


“....하하.”

뭐? 웃어?

“하하하하하하.”


이치호가 웃었다.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나는 당황했는데, 차마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가 너무 밝게 웃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환한 기운을 담고 있는 웃음이었다. 교복을 입고, 햇빛이 어깨까지 드리우는 학교 안에서 그는 눈썹이 무너지며, 입꼬리가 크게 트이며 웃었다. 그건 마치.. 지극히 그 나이대다운 천진무구한 것이었다.

웃음이 사그라들고 나서야 그는 내가 궁금해하던 점에 대답해주었다.


“당신도 내가 소름끼쳐?”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기보단 뭐든 대답하면 또 휘말릴 것 같아서.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가 말을 이었다.


“당신에 대해 알게 된 거는 전혜경 선생님 때문이야. 안그래도 찾고 있었거든.”

“...”

“알아내는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 그리고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몇 가지 상황으로 유추가 가능하지. 솔직히 얼굴만 봐도 알겠더라.”


내 얼굴이 그렇게 불행해보였나. 큼큼, 나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 모습을 본 이치호가 슬쩍 웃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대부분 ‘파악’한거야. 당신 딸 이름이 ‘윤주’라는 것. 병원에 있던 그 선생님이 당신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그건 아마 전혜경 선생님이나 아이와 관련이 있겠다는 것. 그리고..”

“잠깐, 나 지금 네 말을 잘 못따라가겠는데. ‘뒷조사’가 아니라 ‘파악’?”


끄덕.


“어떻게 그게 파악이 돼?”


그렇게 물어볼 줄은 몰랐다는 듯 이치호가 눈을 꿈뻑거렸다.


"..처음 병원에 들어갈 때 그 사람은 당신이 오랜만에 찾아왔다는 식으로 말했지. 그리고 당신은 껄끄러워했고. 그리고 나를 치료하는 내내 그 사람은 당신을 주시했어. 안 본 사이 변한 게 있는지. 그건 변화를 감지하는 눈이야."

"..."

"그리고 '윤주'라는 말. 처음에는 윤주라는 사람이 당신 지인으로 들렸지만, 보아하니 윤주는 아이이고 그 뒤에 나온 혜경이란 사람이 어른이야. 더군다나 혜경쌤을 알고, 신창준씨의 와이프라는 것까지는 내가 알고있으니 확실하지. 어른과 아이가 병원에 온다면 한명은 보호자 일테고, 다른 하나는 아이지. 그런데 왜 아이의 이름을 먼저 말할까? 유치원 정도의 아이가 부모와 함께 왔다. 아이의 이름만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은 혜경이란 이름을 편히 불렀지. 그렇다면 아는 사이라는 얘기가 되는데 보통 그렇게 말하는 경우는 드물고. 그걸로 당신은 '혜경'과 '윤주'를 둘 다 안다는 결과가 돼. 굳이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한건, 당신의 그 당황스런 반응을 예상할 수 있을만한 위치에 있다는게 되고. 일부러 말했으면 왜일까. 그냥 보기엔 당신에게 매우 호의적인 그 사람이."


이치호는 마치 대본에 쓰인 글을 줄줄 읽어내는 것처럼 말하다 나를 잠시 쳐다보았다.

그 뒤의 말은 이미 내가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리고..그냥 짐작했을 뿐이야. 오랜 인연으로 보이고, 당신을 싫어하진 않지만 그 사람이 당신을 원망하는 부분이 있다. 그건 아이와 관련되어있다. 그리고 그게 그녀의 중심이다."

"중심?"


말이 떨렸다. 그때까지 듣고만 있던 내가 되물은 건 그가 선택한 단어가 생경했기 때문이다.


"'중심'이란건 내가 지어낸 말이야. 적어도 소름끼친다거나 열받는다 거나 라는 말을 내 나름대로 포장한 거지만. 그냥, 알게 되더라구. 몇 가지 포인트만 있으면 대충 짐작해서 말한 게 꼭 관통한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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