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미행은 안하지만 뒷조사는 합니다

by 은자루


물어보고 싶은건 내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 중 무엇 하나 묻지 못하고 면접장을 나왔다.


면접을 끝내고 나오며 받은 교통비와 작은 USB를 들고 나는 흘러내린 땀을 훔쳤다. 꽉 쥔 손에 피가 통하지 않아 얼얼했다.

그로부터 이주 뒤, 합격 문자를 받았다. 그 안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최훈의 입김이 들어간 건지 끊임없이 신경쓰였지만, 결국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DM클럽이 그 ‘약’을 유포하고, 사람들이 찾는 통로로 쓰려고 한다고 봐.‘


출근하기 전 치호는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 약? 이미 제조법은 소멸됐고, 그 안에 들어가는 몇가지 화학성분은 유해금지물이라 취급도 할 수 없는데?’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치호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알고도 모른척 하는거야 아님 진짜 모르는거야.’

‘....’

‘세상에 한 번 나왔는데 사라지는 건 없어. 사라진 것처럼 보일 뿐이지.’


막상 회사에 나가고 나니 최훈을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꽤나 높은 고위간부였고, 일개 계약직으로 출근한 직원인 내가 쉬이 마주할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최훈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나를 뽑은게 맞는지 의문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나를 불렀다.


“대니스 최 상무님이 찾으십니다.”


일부러 보란 듯이. 왜 저 나이 많은 변변찮은 경력직은 우리 회사로 온걸까. 그런 궁금증어린 눈빛을 보내던 어린 직원들의 머리에 뜬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여간 남 욕보이는데도 일가견이 있다. 일부러 그런거라는게 분명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비서를 통해 그의 사무실이 있는 12층으로 가는 것 뿐이었다.


“오랜만이야. 앉지?”


그는 자리에 앉아 있다가 나를 슬쩍 쳐다보곤 말했다. 멀뚱히 서있기도 뭐했지만 다과와 함께 그와 하하호호 하고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스카웃을 하고 싶었으면 그냥 평범한 방식이 나을 수도 있지 않았나요?”


최훈은 내 말에 모니터에 있던 시선을 잠시 옮겼고 나는 그 즉시 후회했다.


“결국 제 발로 들어온 것 아닌가?”

“....”


여전히 알 수 없는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최훈의 감정을 전혀 잃을 수 없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어떤 형태를 가지고있는지도 전혀.

나로써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더더욱 분노했던 사실을, 잊고 있던 내가 바보였다.


“당신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아니, 전혀. 마음속으로는 강하게 부정했다. 나는 그가 궁금하지 않았다. 그가 잘살기 바라는건 더더욱 아니었다. 수진을 기억한다면, 그 옆에 있던 나라는 사람은 까먹었더라도 너라는 사람은 잘 살아서는 안됐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 했지만 이미 얼굴에 열이 오르고 있었다. 되도 않는 헛소리.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게 한이었다. 주울 수만 있다면 당장 무릎을 꿇든 바닥을 기든 주워 모으리라.


“내가 잘 살고 있기를 바랐어?”

“아뇨. 전혀. 기왕이면 안 살고있어도 됐을 텐데요.”

"그러게. 그런 방법도 있었네."


외견은 많이 바뀌었지만, 풍기는 분위기도 상당히 달라졌지만 그는 최훈이 맞았다. 그가 더욱 비겁해져있기를 바란 내 예상은 훌륭하게 빗나갔다.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도 뻔뻔해 보일 수 있도록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방금전까지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으면서, 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온 건지는 몰랐다. 최훈은 그런 나를 보고 웃었다. 한지를 만들기 위해 닥풀과 닥섬유를 섞는 작업처럼 얼굴이 풀어지는 것 같은 웃는 모습이었다.


“많이 컸네.”


최훈이 웃었다. 어이없게도 그는 지극히 평범하게 기뻐보였다.

능글맞은 놈. 결국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일주일 뒤 이례적인 인사발령이 있었다.


[과장 신창준 소속부서 DM인테리어팀 -> 발령부서 DM클럽오픈팀 TFT]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DM오픈까지는 3개월 남았고 그곳은 임시 팀이어서 팀 내 소속된 계약직은 모두 그때까지만 계약되어 있었다.


“....비열한 새끼.”


육성으로 욕이 나왔지만 아무도 내게 말 걸지 않았다.

‘나 발령났다. 클럽오픈팀.’

치호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혹시 알고 있나? 문자를 남기고 나서야 생각이 들었다. ‘중심’을 파악한다는 그가 이런 것까지 알 수 있는 걸까.

나는 치호의 뒷조사를 하고 있었다.

평범한 일반인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신상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가장 기본적인 방법부터 알아가는 중이었다. 정보와 지식에는 돈이 필요했다.


원한다면 강제로 얻는게 가능하단 의미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중간고사였다고.

중간고사가 끝났으니 밥이라도 사주겠다 했다. 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나 학교에 없으니까 기다리지 마.’


기다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마음을 읽은 것처럼 보낸 글귀에 괜히 찔렸다.


‘왜?’


보통 고등학생은 야자 하는거 아닌가? 가볍게 물었으나 그날 그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형님! 여깁니다..!”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중식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사람들 시선이 차단 된 곳에서 보고 싶은데, 저녁에 미성년자를 데리고는 어디를 가기도 애매했다. 결국 선택한 곳이 오래되어 허름하지만 옛날에는 좀 유명했던 이 중식집이었다.

중간고사는 치호만 끝난 것이 아니다. 나는 다른 이에게 연락을 남겼고 그는 1분도 안되어 답장이 왔다.


“내가 무슨 형님이야. 편하게 해.”


내가 성인이 다 되어 태어난 애가 형님이라고 부르니 우스울 뿐이었다. 아저씨라고 불리고 싶은건 아니지만 양심에 조금, 아니 많이 찔린다.


“에이, 형님 좋지 않아요? 한 번 형님은 영원한 형님!”


녀석, 김지훈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불량학생 특유의 건들거림이 있기는 하지만 악의는 없어 보였다.


“너 지난번엔 아저씨라고 했는데.”

“아 그래요? 기억력도 좋으셔.”


능글맞게 넘어가는 것도 수준급. 역시 이런건 타고나는거지, 배우는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돌고돌아 지인 탐구가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사람을 써서 알아낸건 이치호의 가정사 정도. 살짝 짐작했지만 그의 가정환경은 꽤나 유복했다. 집은 내노라하는 부촌의 단독주택이었고, 등교를 전용기사가 붙어 해주는 모양이었다. 신기하게 하교는 알아서. 등교도 지하철 몇 정거장 앞에서 내린다고. 아마 그렇게 티내고싶지는 않은가보지?


학원을 뺑뺑이 돌린다거나 그래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부잣집 아들내미답지 않게 이치호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적어도 심부름센터에선 그렇게 표현했다.


내가 돈을 들이는 이유도 치호 그 자체보다 그의 뒷배경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여진 것인지, 심부름센터에서는 그의 부모에 대한 행보와 그의 집안에 대한 이야기만 줄줄이 알아왔다.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는데. 내가 알고 싶은 건 치호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었다. 그의 목적이었다. 그가 정보를 얻는 루트였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언제부터 계획된 것인지였다.


그 중 어느것도 알아내지 못한 나는 노선을 틀었다.

가장 정통적인 방법.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치호의 지인. 내가 아는 그의 지인은 한 명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치호를 적대하고 있는데다, 내게는 나름 호의적이었다.


그게 바로 김지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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