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호의 지인. 내가 아는 그의 지인은 한 명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치호를 적대하고 있는데다, 내게는 나름 호의적이었다.
그게 바로 김지훈이었다.
“아저씨처럼 순순히 용돈 주고, 다시 봤을 때도 안 피한 호구.. 아니,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김지훈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다시 아저씨가 되었고, 호구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병신이 안나온게 어디야. 나는 심심한 자기 위로를 건네며 서두를 어떻게 꺼낼지 생각했다.
“솔직히 다른 애들은 아저씨 보면 더 돈 뜯어내라고 난린데, 저는 그럴 생각 없어요. 병신 아닌 이상 계속 그러는 것도 웃기고, 차라리 사회생활 비법을 물어보는 게 나을 듯?”
생각한지 1초만에 병신 소리도 듣고 말았다. 김지훈은 의외로 평범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졸업을 하고, 대학에 갈 생각.
“너 의외로 성실하네.”
“푸핫, 그딴 소리 처음 들음요.”
김지훈은 짜장면을 입술에 잔뜩 묻히고 웃었다. 귓바퀴가 발개진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이 아이도 결국 어리구나, 깨달았다.
완전한 타인이라 그런건지 김지훈은 편하게 말하다가 가정사도 술술 내뱉기 시작했다. 말하는 김지훈의 표정이 편안해보여서 나는 그냥 들었다.
“할머니랑 행복하게 사는게 내 꿈이예요. 우리 할머니, 아무래도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살아있을 수 있겠죠? 손주도 봐야되는데. 아씨.. 할머니 생각만 하면 존나 슬퍼요.”
어릴 적부터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녀석이었다.
지켜야할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자신을 놓아버리기 힘들다. 이 녀석도 그런 것이겠지.
“할머니 오래오래 사실거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도 별로 없어서 그렇게 말했다. 김지훈은 그런 나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제 얘기 이렇게 진지하게 들어준거, 아저씨가 처음이예요.”
“아 그래? 고맙..다?”
“저한테 뭐 물어보러 온 거죠? 제 얘기 들어줬으니까 알려줄게요.”
서두를 어떻게 꺼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김지훈이 먼저 꺼내줬다.
“그 전에 탕수육 하나만 더 콜?”
그 말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라.”
이치호에 대해 알려줘.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말했을 때, 김지훈의 얼굴엔 실망감이 역력했다. 눈썹이 꿈틀꿈틀거렸다. 뱉은 말이 있으니 차마 뒤엎을 수는 없는데, 화가 나는건 얼굴에서 지우지 못했다.
“왜 그 새끼 얘기예요.”
“그 새끼.. 에 대해 좀 알아야 할 게 있거든.”
소심하게 장단을 맞춰주었으나 별로 통하지 않았다.
“아 씨 밥맛 떨어지잖아요.”
“그러냐. 미안하다.”
“.....”
다행인 점은 김지훈이 단순한 녀석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유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그냥 감정에 충실했다. 내가 선뜻 사과하자 얼굴을 잔뜩 찌푸리더니 아저씨가 사과할 건 아니라고 했다.
타이밍 좋게 탕수육이 나왔다. 김지훈이 하나를 얼른 집어 우물거리더니 입을 뗐다.
“걘.. 그냥 처음부터 마음에 안들었어요. 뭐랄까.. 존나 싸했어요. 사람 쳐다보는게 되게 별론데.. 아 뭐라고 해야하지. 내가 어휘력이 좀 딸려요. 국어 9등급이예요.”
“괜찮아.”
어차피 인내심있게 들을 생각이었다.
“원래도 샌님처럼 생긴 애들 안좋아하거든요. 굳이 친절하려고 애쓰고, 나같은 애들 불쌍하고 안타깝게 보는거. 진짜 토나오거든요. 근데 걔는 그러진 않았어요. 막 친한 애는 없는데 두루두루 잘 지내고, 공부 잘하니까 선생들한테 평판도 좋아서 저도 나름 잘 지내보려고 했거든요?”
“그랬어? 의외네.”
“공부란걸 좀 해보려고요. 아주 밑바닥은 넘어서고 싶은데 그게 안되가지고. 이치호는 남 무시는 안하니까, 좀 비벼보려고 한거죠 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처음엔 몇 개 물어보다가, 나름 잘 지냈어요. 참나, 그러고 보니까 좀 잘 지냈었네? 개열받네.”
갑자기 김지훈은 화를 냈다. 나는 사이다를 하나 더 시키고 그의 앞에 탕수육을 더 밀어주었다.
“그러다가 걔가 우리 할머니랑 친해졌거든요.”
“중간에 너무 많이 생략됐는데?”
“아, 중간에 별거 없고. 별로 말하기 싫어요.”
“그래..”
애들 기분 맞추기 어렵다. 나는 생각했다. 목이 말랐고 맥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안되겠지..?
“처음에 너 할머니 있지? 그랬어요. 진짜 생뚱맞게 말했단 말이예요. 그래서 놀랐는데, 할머니랑 친해진 이후에는 자꾸 참견을 하더라고요.”
“무슨?”
“지금 주변에 있는 애들을 멀리 하라는 둥, 할머니가 아시면 좋아하시겠냐는 둥. 개노답 꼰대같아서 무시하고 싶은데, 어른들이 말하는거랑은 달라요. 뭔가가.. 달랐어요.”
아마도 중심을 콕콕 찌르지 않았을까. 얘기 하면 할수록 김지훈은 원체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할머니랑 행복하게 사는게 꿈이라는 아이는 더더욱. 본인도 인지못한 어떤 불편한 부분을 건드렸겠지. 하지만..
“그러면 되게..”
좋은 친구 아닌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면 김지훈은 입을 다물 것 같았다.
“걘 야자도 안해요.”
“왜?”
“모르겠어요. 그냥 하기 싫은가보죠.”
역시 깊이 생각하지 않아 단순하다.
“그냥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는거야?”
“안되죠. 부모님 동의서랑 학원다닌다고 하면 그것도 제대로 확인해요.”
“학원다니는 것 같진 않던데.”
“그런 것 같더라고요. 뭐하는지 모르겠는데 성적은 좋으니까 선생들도 별 말 안해요.”
치호는 야자를 안한다. 이것까지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궁금했던건 그 이유. 그리고 그 시간에 그가 무엇을 했는지였다. 김지훈에게 알아볼 수 있는 부분도 한계가 명확했다.
“그날은 왜 때렸어?”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
김지훈의 표정이 멍해졌다.
“이치호 얼굴 다치게 한거, 너 아냐?”
“아..”
김지훈이 낭패라는 듯 입술을 짓씹었다.
“뭐라고 하려는거 아냐. 이미 지난 일이고. 나는 그냥 궁금해서.”
“저도 당했어요. 손가락 부러졌거든요.”
그가 새끼 손가락을 흔들었다. 지난번과 달리 붕대는 없었다.
“그랬어?”
“네 존나 아팠어요. 그리고 아저씨 지금 이치호같아서 좀 짜증났어요.”
“그랬냐.”
나도 뜨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