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그 어른은 이해할 수가 없는 구석이 있다

by 은자루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한 유저를 발견했다. 유저이름 '날다람쥐1호'. 그가 쓴 글을 보는 내내 한 가지 선명한 이미지를 지우기 힘들었다.

나는 그가 이치호라고 확신했다.




“고마워”


누군가의 중심을 파고들고서, 그런 대답을 들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이 사람이 나를 구원해 줄 거라고,

나를 인도해 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집에 오는 길 내내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제 막 피어오르는 뭉클한 감정의 덩어리가 어딘지 불편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그가 파고드는 진실 이란건 이따금 사람들에게 가혹했다. 얇은 복숭아 껍질 안에 숨어있는 단단한 씨앗이, 그 눈에는 너무나 쉽게 보였다. 끄집어내고자 한 것은 아니었으나 짐짓 건드려보면 어느 누구나 날을 세우고 그를 경계했다.


가장 억울했던 건 그 시절 자신이 어린아이였다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도달하고 싶었다. 그가 이해하기도 전에 모든게 끝나버린 세계에서, 그 혼자만이 남아 자라났다. 왜 그랬어야 했는지. 내가 겪은 일들이 대체 왜 일어났어야 했는지.


어른들의 세계는 미지의 무언가였다. 하지만 치호는 제법 일찍 그 환상이 깨졌다. 그곳은 그냥 어둡고 음습했다. 그들의 중심은 하나같이 단순하고 별볼일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달랐다.

선생님이 속해있던 곳은 선생님의 잔정과 기운과 희망 같은..그런 실날 같은 게 남아있었다. 그는 그것을 찾고 싶었다. 선생님이 싫어서 버리고 떠났을지라도 남아있는 뭔가를 그는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도달한 게 그 남자였다.


공통점이라고는 선생님이랑 마지막으로 일했던 동료직원이라는 것 정도였다. 치호는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의 주인이 그 남자라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선생님한테 어떠한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진을 아냐고 물었을 때부터 이미 어긋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누구한테 대체 무슨 기대를 했던 건가.


치호는 창준을 보며 속으로 후회했다. 어색한 태도와 굳어버린 표정. 어설픈 반응과 머릿속이 투영해보일듯한 단순함. 일말의 기대를 바란 자신이 더 실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처음 보자마자 창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도명제약에서 일했고, 직간접적으로 여기까지 치호를 끌어내린 장본인이기도 했으니 그를 싫어해도 될만한 이유따위, 얼마든지 있었다. 철저히 이용해먹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태도만큼은 의외였다. 굳이 잘 보일 마음이 없기도 했지만 창준은 자신을 향해 비교적 동등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게 매우 이질적이라는 것을 그는 알까.

나이를 기준으로, 세상살이를 기준으로, 혹은 여러 잣대를 기준으로 '아래'라는 판단을 내린 어른의 표정은 익히 봐와서 알고 있었다. 어떠한 논리정연한 말도 통하지 않을 얼굴. 이미 정해진 기준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과 말투. 치호가 말하는 '타협'이라는 것도 그들에겐 어린애의 치기일뿐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예의와 격식에 관해서 그의 집안은 날카롭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익히고 숙지한 바에 따라 행동방식을 정의했다. 성격이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이 더욱 차갑게 비춰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특성을 제대로 인지하는바, 그는 스스로가 어른들에게 감성을 울리는 인상을 심어줄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창준도 그런 어른에 불과해야 했다. 원치 않던 만남인만큼 어른으로 대우해 줄 생각도 없었다.

수던한 얼굴과 다르게 말과 행동이 조금 독특했다. 어른같지 않은데 어른같았고 때로는 무척이나 어리고 철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한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리도 가볍고 한가지 특징으로 정의된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창준은 그가 보기에 조금씩 예측을 벗어나는 특질을 가지고 있었다.


소름끼치다, 가 아니라 그저 건방지다고.

남의 약점을 파고들어 이용해먹은건 자신인데도, 왕따를 당하거나 괴롭힘 당한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하는 점도.

창준은 그의 예상을 빗나가는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예기치 않게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왠지 재밌네.


그는 자신이 역시 삐뚤어졌다고 생각했다.




해가 지면 물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선생님과의 짧았던 인연 이후 그는 줄곧 그래왔다. 우습게도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선생님의 존재를 잊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느낌은, 불편하고 힘들다는 단순한 감각을 넘어선 것이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한때는 남들에게 이해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내 그런 노력이 의미없음을 알았다.


그 부분을 빼고 말해보자면 부족함 없이 자랐다. 오히려 넘치도록 부유한 삶이라 할 수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삶이 심심했다. 뭐든 쉬웠다. 낮의 치호에게 어려운 일이란 없었다.

필요한 건 무엇이든 원하는 순간 얻을 수 있었고, 그것이 당연했다.


타고난 금수저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싸가지 없는 녀석.


그런 틀에 박힌 말로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런 말투로 치호를 공격할 생각이었겠지만 그저 잡음에 불과했다. 당시에도 타인의 중심은 훤히 보였기에 그들의 말투 뒤에 숨은 짙은 질투를 모른척 하는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그가 선생님을 기억해낸건 아주 의외의 상황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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